삶의 큰 고비를 넘고 있는 두 아이와 삶의 마지막을 버티고 계시는 엄마. 그리고 나. 문득문득 쪼그라든 마음에게 묻는다. 자꾸만 묻게 된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들 성장에 있어 하루볕이 다르다 했더랬다. 어른들도 그렇더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를 만나면, 자신의 경험 안에서만 추측하고 치부해 버린다. 자신 세계의 렌즈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선, 옳다고 생각한다. 한데 막상 그 세계로 들어가 보면 생각과 다르다. 그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배운다. 편협함을 반성하게 된다.
그렇게 끊임없이 어른이도 성장하나 보다. 김혜남 선생님은 죽을 때까지 익어가는 게 인간이고, 이제 알겠다 싶을 때 죽음이 찾아온다 했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극단적으로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라고 했다.죽음 앞에서 후회 없이 당당한 인생을 살았노라 말하려면, 자신에게 잘 살고 있는 건지 물어야 되지 않을까?
어느 젊은 친구에게 물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무얼 하고 싶느냐고. 머뭇거림 없이 코인을 사서 부자가 될 거라고 했다. 그렇지. 그런가 보다.
인생의 가치가 자본화되어 버려, 이런 질문 자체가 고루하고,고민하는 이들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남지 않을지... 그런 고민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시간여행자가 된다면, 영화 어바웃 타임 속 아버지처럼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읽는데, 시간을 쓰고 싶다.잠들기 전, 시간을 멈춰 책을 읽고, 아침에 남겨둔 책의 마지막을 읽기 위해 시간을 멈춰 책을 읽고, 나머지 공부가 필요할 때도 무한한 시간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현실로 돌아오고 싶다. 디킨스의 책을 세 번씩 읽었다는 아버지의 대사가 이제야 와닿는다.
진정, 삶에서 중요한 것은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즉, 수많은 삶의 거친 파도에도 다시 이곳, 평정심 돌아올 수 있는 단단함과 지혜로움을 키우는 것. 그 방법이 독서다.
어느 지친 하루, 쪼그라든 가슴을 달래려 시간을 정지시키고 책을 편다. 마음속 주름살이 펴질 때까지.그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병원에서, 대다수 주름진 얼굴의 환자들을 마주치며 또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늘 출렁거리는 마음을 바라보며,
그래도 같은 생각이 든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아니까. 자신은 속일 수 없으니까. 매일매일 나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느리고 언제 닿을지 모르지만, 인간 루시가 되겠다는 나의 꿈을 향해.풋.
생의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가져갈 수 있는 이번 생에서 남긴 것은 물질이 아니다. 오직 영혼의 성숙뿐이다. 윤회의 과정 속에 잊히더라도,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든, 융의 집단 무의식이든, 인간의 의식 저 밑바닥에 켜켜이 쌓여간다. 내재되어 숨 쉬고 있다.지혜로움, 자상함, 여유, 배려, 평정심, 충만함...등등 성숙한 의식들로.
오늘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는 게 못내 아쉬워,그 하루를 붙잡는다. 하루를 곱씹으며,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본다.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