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실: 성실함에 대해

성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이야기

by 이프로

#1. 성실은 학력이다.


특목고 입시 설명회에 가서 들었다. 입학하려면 전 과목이 A 여야 한단다. 사춘기 중2 아이 성적이 모두 A 여야 한다니 참 힘들겠다 싶었다. 과학고 입시담당 선생님 강의였는데 그분 말씀은 그거다. 성실! 그러한 성적이 아이의 성실함에 대한 지표란다. 능력이 되는 아이들. 성실하다면 성적이 그쯤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도 오고, 친구 때문에 걱정하느라 우울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시험보다 긴장해서 시험을 망치기도 하고 그러던데, 우리 아이만 그런 건가? 나도 중학교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느라 성실했음에도 성적이 완벽하지는 못했는데 말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우리의 모습이 성실이라는 단어와 괴리가 있다는 설명에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분들 세계에선 성적이 성실의 지표구나.


우리는 학력과잉 사회에서 산다. 누구나 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대학을 나오면 더 인정을 해주는 사회. 거기에다 오래 공부하여 가방끈이 긴 분들이 더 많아지는 사회에 산다. 과한 표현으로 누군가의 학력이 그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는 사회.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 아닐까? 그래도 고학력을 가진 사람의 성실함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평가는 모르겠지만 10년 이상을 한 분야에 묵묵히 연구 해왔다면 그는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한 분야를 10년 이상 매달린다는 것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게 학력을 키우기 위해선 성실함이 필요조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성실의 미덕을 갖추었기에 우리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해 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2. 성실은 신뢰이자 예측가능성이다.

회사에서 근무하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서 흐릿했던 성향이 근무를 함께 하다 보면 다 드러난다. 나는 유독 성실한 사람에 대한 편애가 있다. 물론 성실한 사람과 함께 하면,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노력이 함께 하기에 그로 인한 신뢰와 감사함이 생겨서 더욱 그러하다. 물론, 유독 업무능력이 뛰어나거나 다른 인간적인 매력으로 업무를 잘 헤쳐나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타고난 재능이 서로 다르기에 각자의 방법으로 업무를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한 나는 성실한 사람을 선호한다. 그 이유를 '예측가능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나 일을 잘 해결하더라도 기이한 행동과 자신만의 스타일로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일을 처리한다면, 함께 하는 동료인 나는 불안할 것이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공공기관에 근무하다 보니 생긴 고리타분한 주장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성실은 예측가능성이다. 어제 함께 회식에 늦도록 술을 마시더라도 그다음 날 출근을 할 것이라는 믿음, 출장 갔다 늦거나 회의를 다녀오느라 늦더라도 오늘 마무리해야 할 목표가 있는 일은 그날 마무리할 거라는 믿음, 상사가 일주일 자리를 비워도 늘 한결같이 본인의 업무과 목표를 처리할 것이라는 그런 믿음, 이 동료에 대한 믿음이자 예측가능성. 그는 분명 그렇게 처리할 거야, 해낼 거야, 올 거야, 그러한 예측가능성.


그래서 난 성실한 동료와 후배를 좋아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꾸준히 성실하게,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해내는 사람, 조금 늦더라도 상관없다. 자꾸 귀찮게 물어봐도 괜찮다. 그런 스스로의 노력과 책임감이 있지 않고서 성실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업무성과는 천천히 올려나가도 된다. 성실하게 업무를 하다 보면 분명 신뢰할 만한 직원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나에게 성실은 예측가능성을 지닌 신뢰의 단어다.


#3. 성실함으로 포장된 프로필에 대해서


몇 해전 김주원 씨 인문학 콘서트 발레 공연에 사회를 보셨던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연주가 참 좋았더랬다. 문화예술분야에 문외한이었던 탓에, 피아노 선율에 감동받아 찾아본다는 것이 피아니스트의 프로필이었다. 그분의 연주로만 그분을 평가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 프로필을 찾아본 것이다. 과연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그분의 화려한 프로필을 보며, 역시! 하게 되는 날 본다. 지금까지 피아니스트로서 성장하기 위해 애쓴 삶의 성실함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급 속물이다 싶다.


책을 살 때도 작가의 이력이 중요하다. 물론 출판량이 과다한 시장에서 옥석을 가리고자 함이지만, 나도 모르게 보는 기준이 작가의 프로필이다. 학력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전문성을 본다. 혹은 진심을 본다. 어떻게? 이 분야에 얼마나 연구해 왔는지, 고민해 왔는지, 그 시간과 진정성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그 이면의 성실함을 본다. 가끔은 내 꾀에 내가 속기도 하지만 말이다.


성실이라는 단어 안에 사회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다. 성실이 꼭 긍정의 단어인 건 아닐 것이다. 진부함이나 고지식함, 보수적인 부정적인 단면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단어는 긍정과 부정, 동전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다. 시비의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어떤 이에게 성실은 학력의 중요한 요소이고, 나에겐 선호하는 동료의 성향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는 긴 프로필을 가진 이를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도 있다. 경우에 따라 아닐 수도 있다. 가끔 프로필을 확인하는 내가 너무 속물적이다 생각하다가도 이것이 삶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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