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양성: 발레리나를 보다가

삶의 다양성에 대해

by 이프로

인문학 콘서트를 다녀왔다. '발레리나 김주원, 도전하는 삶!' 김주원 씨를 잘 몰랐고, 인문학 콘서트에 대한 관심이 더 컸던 날이었다. 인문학 콘서트에는 피아니스트이자 토크쇼 진행을 맡아주신 분이 계셨고,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발레는 하는 김주원 씨가 계셨다. 마치 중간중간 토크쇼가 이어지는 발레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조그만 앙상블홀에서 펼쳐진 발레 무대에서, 갑자기 삶의 다양성이 느껴졌다. 발레 무대가 너무 가까워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육체의 선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들의 숨소리, 표정이 그대로 전해져 왠지 내가 공연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그분들을 보면서 왜 발레를 선택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생방송 무대에 엄청난 긴장과 압박감에 눌리는 공연, 다소 발가벗은 느낌의 발레복 상태로 온몸으로 소통하는 발레. 말보다 몸짓, 손짓, 발짓 하나에 더 많은 감정과 생각을 전하는 발레. 무엇이 이들을 발레로 이끌었을까? 공연을 지켜보는 내내 혹여 실수할까 봐 그들을 바라보는 내가 더 긴장되었다. 항상 생방송 일수밖에 없는 발레라는 장르를 선택 아니 이끌게 된 동력이 무엇일까? 이들이 가진 달란트는 무엇이었을까?


특히 김주원 씨는 공연 내내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언어가 더 많은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말이 아니라 저 발레 이리라. 다른 무용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녀만의 아름다운 비율과 안정감, 그리고 표현력. 너무 압도적이었다. 토슈즈를 벗는 동작 하나도 우아한 백조의 매력이 담겨있어, 그 손동작 하나하나가 예술처럼 보였다. 콘서트 중에 김주원 씨는 발레를 잘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오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발레 하는 게 그저 좋았다고, 그래서 발레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온몸이 종합병원이 되었을지라도, 발레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콘서트 진행을 맡았던 피아니스트도 대단한 분이셨다. 토크를 할 때는 몰랐던 매력이 피아노를 치시니 드러난다. 그 열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분은 어쩌다 피아니스트가 되셨을까?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아서? 행복해서? 모르겠다. 다들 무엇에 이끌려 시작했을까? 아니 무엇에 이끌려 자신의 삶을 선택했을까? 삶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군가는 발레를 하고 그 옆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있다. 또 어떤 이는 그림을 그려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어떤 이는 기술로써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한다. 스포츠 선수도 있고, 멋진 글로 마음을 위로하는 작가도 있고, 심지어 사회복지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느 분야 건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다양한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원어민 영어수업 중이었다. 영어수업 중 10가지 토픽 중 하나를 골라 이를 조사해 보는 수업을 했는데, 멤버 7명이 모두 다른 질문을 선택해서 깜짝 놀랐었다. 멤버 모두 우리 회사 직원들이었고, 다들 비슷한 연령대의 직원이었기에 동일한 질문을 선호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이렇게나 다른데, 우린 같다고 생각한다. 그 틀 안에서 재단하고 판단한다. 인간의 삶의 기승전결 구조는 다 비슷하더라도, 그 디테일은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 재능에 따라.


갑자기 삶의 다양함이 내 마음속에 훅 들어온 느낌이다. 어쩜 그렇게 서로 다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인류의 미래는 정말 예측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리의 선택이 이렇게나 다양한데, 개인이 가진 확률변수가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복잡한데, 어떻게 컴퓨터로 계산하듯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인류라는 큰 틀에서 보면 다 비슷비슷한 인생이지만, 멀리가 아닌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명 한 명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나태주 님의 시 풀꽃에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와 같이 말이다. 이 시가 주는 인류적 깨달음이 이렇게 위대했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keyword
이전 10화10. 성실: 성실함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