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감사함: 화재가 난 순간에

타인에 대한 감사를 느낀 날의 소회

by 이프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던 날이었다. 갑자기 상가 방향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이상하다? 사고가 났나? 꾸역꾸역 대기하다가 도로에 진입을 하고 나니 편도 2차선 도로 양쪽에 소방차가 줄지어 얼추 십여 대가 서 있다. 그래서 막혔나 보다 싶다. '어, 집 근처에서 불난 거야?'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파트 단지 쪽을 봤는데, 그쪽은 아닌 듯하다. 집 근처 병원 옆 건물인 주차장 빌딩에서 불이 났다. 출동한 소방차 규모를 보니 큰 불이었나 보다.


불이 난 것을 가까이서 직접 보게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 많은 소방차와 소방관을 직접 목격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소방관 아저씨들, 소방차로 인해 막히는 도로를 통제하고 우회시키는 경찰관 아저씨들, 갑자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가 안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런 많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었지.' 불이 나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이 있었고, 차량이 엉켜 있을 때는 그 차량들 속에 뛰어들어 상황을 통제하시는 경찰관도 있었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았던 분들을 직접 목격하니, 그분들에 대한 노고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함께.


며칠 전, KT 통신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디지털 사회에 산다. 모든 세상이 0과 1로 표현되는 디지털 세상, 이 wireless 한 세상의 단면은 통신 관련 오류 하나에 세상의 활동이 잠시 멈춤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나 취약하지만 그 이면에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시설을 관리하며 에러를 체크하는 분들의 노고가 있다. 길을 지날 때도 신호등을 교체하거나 전력 케이블 선을 수리하시는 분들을 본다. 그분들이 점유한 도로 때문에 길이 막힐 때면(특히, 출근시간인 경우) 거친 말이 먼저 나오지만, 그분들이 계시기에 우린 편안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잊고 살았던 그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화재를 진압하는 멋진 소방관 아저씨를 보다가 생각났다.


갑자기 우리 아파트 단지 경비아저씨께도 감사하다. 매일 저녁이면 지하주차장 내 불법주차 차량 위에 노란 딱지를 올려놓으시는 수고로움, 늦은 아침 출근차량으로 밀리는 아파트 주출입구에 서서 과감히 차량을 통제하시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고 단지를 돌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시기도 하고, 넘쳐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청소하시는 것도 경비아저씨들이다. 지상주차장이 없는 우리 아파트에 진입하려는 여러 차량을 통제하느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시고, 가끔은 낙엽과 쌓인 눈을 쓸어내시기도 한다. 이 많은 업무를 하시고 계신다. 누군가는 그만큼의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 아니냐고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대가를 떠나 아저씨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노동과 임금의 지급이라 주장하며, 타인의 노고를 당연하게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내게 그 돈을 줄 테니 불에 뛰어들 소방관이 되라고 하거나 무법의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관이 되라고 한다면, 난한다. 전기와 통신을 다루는 일도, 아파트를 관리하는 일도. 나름의 소명의식이 필요한 일이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게 아닐까? 감히 두려워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기에, 이렇게 안전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


감사하다. 나의 일상을 유지시켜 주시는 모든 분들께. 잊힐 마음이지만, 이번 기회로 그 마음을 기록하고 읽어봄으로써 잊지 않고 다시 되새기며 살아가야겠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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