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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텐투플레이 May 08. 2020

2020 GOTY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의 미학




무지막지한 거위 한 마리가 순진하고 멍청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제목 없는 거위 게임(Untitled Goose Game)”이 2020 올해의 게임 2관왕(D.I.C.E.와 GDC)을 차지했다. 언뜻 보기에 지나치게 단순해 보이는 게임이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해외 전문가 리뷰를 뒤져 보았다.




△ 닌텐도 트레일러 영상





우선 제목 없는 거위 게임에서는 게임의 맥락과 표현이 살짝 괴리되는데, 여기서 특유의 매력과 신선함이 생기는 듯 했다. 



코믹한 애니메이션 vs 아름다운 그래픽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은 기본적으로 코미디다. 그리고 그 코미디의 핵심은 메카닉과 애니메이션에 있다.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더라도 그냥 거위가 통통한 엉덩이를 뒤뚱거리거나, 꽥꽥 울거나, 날개를 파닥 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반면에 배경인 영국 시골마을의 모습은 아웃라인도 없이 평면적이어서 매우 단순한 느낌을 주는데 따뜻한 색채로 채워져 아름답고 평화롭다.




답 없는 말썽꾸러기 거위 vs. 우아한 음악 


그렇지만 거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효과음과 음악이다. 플레이 시간의 대부분은 음악이 없이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파닥파닥 거리는 거위의 (앞에서 말한 뒤뚱거리는 엉덩이 탓인지) 사랑스러운 발소리를 가만히 듣거나 사정없이 거위를 꽥꽥 거리게 할 수 있다. 거위가 입에 빈 병이나 라바콘, 하모니카 등을 물고 있을 때 꽥꽥 소리가 달라지는 것도 재밌는 디테일이다. 음악은 드비쉬의 잔잔한 피아노 음악 프렐류드를 차용했는데, 거위의 움직임이나 상황에 맞춰 연주됐다 사라졌다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목표물(마을사람)에 막 다가가려고 하면 귀신같이 적절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온다. 음악은 사람을 놀래키는 상황은 더욱 강조해주고 추격장면에는 활기를 더해준다. 어떠한 대사도 없이 고상한 피아노 음악만이 거위의 행동을 설명해주는 게 마치 무성영화의 향취가 느껴진다는 리뷰도 있었다.




큰 자유, 큰 성취감


거위게임에서 필요한 아이템은 정해져있고 찾기도 쉽게 되어있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알려주지 않고 거의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재량에 달려있다. 어떤 미션은 뻔하고 간단하기도 하지만 많은 미션들이 플레이어의 융통성과 임기응변, 창의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미션을 클리어 했을 때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 




병맛과 일탈의 즐거움


거위게임에서 주어지는 괴롭힘 미션은 병맛스럽다. “Rake in the Lake(호수에 갈퀴 던지기)”처럼 순전히 말장난을 위한 미션도 재밌지만 온갖 정성을 다해 남을 괴롭히는 게임의 컨셉 자체부터 매력적이다. 소풍에서 움식 훔치기, 정원사한테서 열쇠 훔치기 같은 평범한 미션도 있지만 남자아이 신발끈을 풀고, 겁줘서 넘어 뜨리고, 그때 재빠르게 안경을 훔치고, 아이가 바닥에 주저 앉아 안경을 찾으면 일부러 다른 안경을 갖다주라고 지시하는, 아주 여러 단계로 사악한 미션도 있다.


한 리뷰어는 많은 게임에서 신, 수퍼히어로,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어봤지만 거위게임에서만큼 큰 권력을 느끼진 못했다고 했다. 말썽꾸러기였던, 또는 말썽꾸러기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되살리는 것 같았다는 후기도 있었다.




인간에 대한 복수(?)를 통한 카타르시스


※스포일러 주의※


게임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위는 마을의 시계탑을 공격한다. 거위가 종을 훔치자 마을 사람들이 떼로 거위를 추격한다. 마을 사람들을 피해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데 얼마전까지 평화로웠던 거리는 아주 좁고 막다른 길처럼 느껴진다. 거위가 종을 훔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단순히 종소리가 낮잠을 방해하는 게 짜증난 것일 수도 있고, 한 리뷰어는 항상 무언가를 뺏어가는 인간에 대한 반발 또는 복수라고 보았다. 단순히 귀여운 거위 캐릭터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 재미를 넘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잠시나마 동물인 척하며 세상을 망치는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기존 관념이 흔들릴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비슷하게 뉴요커도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무력함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이 게임을 통해 인간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고 평했다.




많은 리뷰에서 이 게임의 유일한 단점으로 짧은 플레이시간을 꼽았다.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로 실제로 짧은 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게임이 재미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심플해보이는 그래픽과 음악의 재치있는 활용과 깨알같이 짓궂은 미션들, 그리고 마지막의 추격전까지 ‘제목 없는 거위 게임’은 독특한 미학을 가진, 정말 인디 다운 인디 게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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