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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Apr 12. 2019

나는 여전히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어디에도 미래가 없다면 차라리 자기 나라에서 사는 게 낫지 않아? 이방인으로 평생 사는 건 외로운 일이야. 내 말에 짧은 침묵을 두고, 그가 말한다.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백수린, '여름의 정오', <2015 제6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자기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운 일은 없어.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던 문장이다.


요즘은 예전만큼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만큼 나에게 당당하지 못해서다. 글 쓰는 일을 가장 좋아하지만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벌을 주고 있다. 쓰지 않으면서 시간이 좀 흐르니 익숙해졌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나에겐 어떤 흥미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인간은 여전히 싫고 말없이 순수한 생명들만 찾게 된다. 그늘에서도 때를 알고 피어난 들꽃이나, 걱정없이 신나게 달려가는 개들만이 내게 위안을 준다.


호기롭게 퇴사하고 글만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도 어느새 2년 전 이야기.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도 나는 단 하나의 생각만 했다. 나는 이 곳, 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시끌벅적한 식당에 단체로 몰려가 왁자지껄 술을 마시며 건배를 외치는 문화가, 나는 싫다. 어렸을 땐 어떻게든 버텼지만 이제는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고 내 밥그릇만 보고 먹을 만큼만 먹고 자리를 뜬다. 요즘은 다른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에 너무 예민해서 밥도 함께 먹기가 괴롭다. 대화도 하기 싫어서 주말이면 고요함 속에 잠수하며 하루를 보낸다. 일은 해야 하니까 회사에서는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것이 가장 괴롭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스스로가 지겹고 끔찍하다. 길거리 상점 스피커들이 쏟아내는 시끄럽고 천박한 가요는 늘 나를 괴롭힌다. 거리를 걸으며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떠드는 사람들이 경멸스럽다.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내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걸까.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선 예민한 상태로 일을 하고 귀가하면 무기력에 빠진다. 고요함으로 내면의 힘을 충전하는데 그러면 새벽 세시가 훌쩍 넘는다. 피곤함과 무기력함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상. 


이 사회에 문제가 없다면, 내가 이상한 거겠지.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여전히 그렇다. 지금까지 그랬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장 환경을 바꾸고 싶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가 않다. 내 곁에 남아 줄 유일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죽음만 앞둔 노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성격도 신경도 둥글둥글해진다던데 그게 내게도 해당될까. 그렇다고 해도 그때까지 버틸 자신이 없다. 지금의 나로서는 나의 예민함을 버티기가 버겁다.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어렵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아니면 내가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 


그동안은 이런 예민함이나 이질감이 단순히 내향적이고 예민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정도가 심해져서 생활이 불편하다. 신경이 쓰여서 없애고 싶은 것은 많지만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글 쓰는 일이 나의 최후의 보루였는데 이제는 글마저 쓰지 않는다. 글을 써서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니. 이제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매 순간 사는 것이 끔찍하지만 아직,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책 속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산다. 

내가 어울릴 수 있고 더 이상 이방인일 필요가 없는 곳은 

안타깝게도 종이 속에 있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있는데 아직 더 읽고 싶다.

그러니, 

주말에는 병원에 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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