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입맞춤>과 내성적인 인간에 대해
몇 년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면서 생각을 '내 안'에서 '내 밖'으로 확장시켜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 주인공 '코이치'의 소원 때문이다. 창밖에 멀리 보이는 화산이 폭발하기를 바라는 코이치.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창틀에 화산재가 얼마나 쌓여있나 확인하곤 한다. 화산이 폭발하면 그곳을 떠나 아빠와 류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고 그러면 별거 중인 부모님이 다시 함께 살 것 같아서다. 그러나 기적을 바라며 친구들과 떠났던 짧은 여행에서 돌아온 코이치는 이제 그런 발칙한 소원을 빌지 않는다. 기차가 교차하는 곳에서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차지점까지 찾아가지만 소원을 빌지는 않는다. 소원 원정대와 '그룹 스터디'를 마친 코이치는 이제 "가족보다는 세계를 선택"한 어엿한 어른이다. 가루칸 떡의 담백한 맛을 아는 어른. 집으로 돌아와 창밖의 화산을 보며 "오늘은 재가 쌓이지 않겠어"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좋아한다.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 같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하나다. 빼놓을 장면이 하나도 없다. 이 좋은 영화를 보고 그 당시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왜 나는 아직도 '화산이나 폭발해라'라는 소원 빌고 있는 것일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때는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집착하고 남들은 쉽게 넘겨버리는 것들을 속에 안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지 말이다. 영화를 어떻게 읽느냐는 관객의 자유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그 영화를 잘못 읽고 있던 것 같다. 영화가 차근히 보여주는 메시지는 그런 게 아니다. 어떤 것은 억지로 바꾸려 해도 그럴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폭발' 같은 것이 있어야만 바뀔 수 있는 것들을 이제는 내려놓을 줄 아는 것. 코이치가 깨달은 바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왜 나는 나를 '고쳐야만 한다'라고 생각했던 걸까.
단지 친구들과 달리 내가 내성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던 때였을 뿐이다. 그땐 내가 그저 모자라고 부족해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생채기도 내지 않을 일들도 내게는 커다란 상처로 다가온 적이 꽤 있었더랬다. 그때마다 나는 내 탓을 했다. 내색하지 마, 괜찮은 척 해, 밝고 당당한 척을 해, 사교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해, 그때의 나는 나에게 매우 혹독하게 굴었다. 왼손잡이 아이에게 억지로 오른손을 쓰게 하는 것처럼.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입맞춤>은 내성적이고 섬세한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입맞춤 사건으로 '라보비치'의 인생은 이전과 달라진다. 라보비치의 부대는 한 마을에 들르게 되고 마을의 귀족은 라보비치를 비롯한 장교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라보비치는 파티 자리를 잠시 피해 불 꺼진 빈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한 여인과 키스하게 된다. 라보비치를 밀회 상대인 줄로 착각한 한 여인이 잘못 입을 맞춘 것이다. 라보비치는 여인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저택을 떠나게 된다. 입맞춤 사건 이후 라보비치는 무미건조하던 일상마저 다채로워 보이고 거기서 가득한 생명력을 느낀다.
라보비치는 달뜬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동료들에게 입맞춤 사건을 설명하는데 막상 말을 하자니 1분도 안 되어 끝나버린다. "내가 폰 라베끄의 집에서 어두운 방을 지나쳐 갈 때 어떤 여자가 내게 입을 맞췄어." 동료들은 각자 겪은 유사한 사건을 술안주처럼 저속하고 기름지게 묘사하면서 라보비치가 입맞춤 이후 오감으로 그리고 느꼈던 상상들을 모두 망쳐버린다. 라보비치는 다시는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다시 폰 라베끄의 저택에서 묘령의 여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접어 버린다.
감정이 섬세하고 신경이 예민한 인간, 내성적인 인간은 다루기 힘들다.
' (좋은 의미로) 다룰', '관심 가져줄' 생각도 안 한 사람이 더 많겠지만.
사춘기 무렵부터 소설과 영화에 빠져 지냈기 때문인지 몰라도 (사실 이것들을 탓하고 있다) 나는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편이다. 감정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다. 그래서 행동을 할 때나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나 나는 몸짓, 말투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말에 '라보비치'처럼 내가 상처받은 일이 많기 때문에 상대방은 그런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섬세하고 예민한 영역을 조금 털어놓고 이야기하려고 해도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라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고 짧게 후려쳐 버릴 텐데.
인간성을 다룬 이야기를 영상과 텍스트로 그렇게나 많이 봐왔으면서
그럼에도 나는 인간에 회의적이다. 믿을 수가 없고 믿고 싶지도 않다.
사회적 공동체에 속해 성장하면서 받은 교육과 의식적으로 그 교육을 '잘 해내야겠다'는 강박 때문에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교성 같은 외향적인 면이 주목받고 우대받는 세상에서 나도 그런 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맺은 이후 그것을 견고히 한다거나 처음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버거웠다. 혼자 처리하는 것이 편하고 도움을 거절하지 못하는 편이나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신세를 지면 부담스럽고 관계를 더 돈독히 해야 할까 봐 겁이 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오래도록 허물없이 왁자지껄 지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부럽다기보다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럽달까.
요즘은 얕게 맺은 인간관계에서 권태기를 느끼는 '관태기'라는 말이 있던데 이제야 명명된 것이라 생각한다. 내성적이고 내향성이 짙은 사람들은 항상 느껴왔을 그것, 그것에 사회가 이제사 주목하는 것일 뿐이다.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내성적인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외향적인 사람들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관계가 지나치게 넓어졌기 때문에 '관태기'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내성적인 사람은 그 폭이 본래 좁게 마련이니 지금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 시대가 아니더라도 이미 관태기를 겪어왔을는지 모른다.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은 '관태기'라는 말이 생긴 것이 감사할 정도다.
(내성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을 내 기준으로 일반화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다 나 같다는 것은 아니고 그 성향에 속한 인간 중 나 같은 면을 가진 사람도 있다고 봐주면 좋겠다.)
외향적인 사람 앞에 있으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런 사람 앞에 서면 나는 재미없는 인간, 게으름뱅이, 집에만 처박혀 있는 사람, 인맥관리도 못하는 사람, 비효율 적인 사람, 하는 일도 없이 시간만 축내는 머저리 같은 기분이 든다.
"왜 그렇게 사람들과 맺은 인연을 쉽게 생각해?"
가장 상처 입었던 말.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 눈에는 쉽게 져버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김이 샜고 다시 마음을 닫아 버렸다. 내가 노력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혔다. 어차피 영원한 인연이란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 내 삶에서 영원한 것은 어쨌든 남이 아니고 나뿐이라는 생각만. 어차피 지나가는 인연들. 정을 주면 안 되고 줘봤자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
상처는 언제나 예민한 사람들의 몫이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촘촘히 반응하는 내 감정들이 미울 때가 많다. 가늘고 미세한 촉수들이 촘촘히 돋쳐 있어서 작은 바람에도 거대하게 일렁이는 것들.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이해해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와 문학만 믿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처럼 민감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건을 겪으며 삶의 작은 균열을 느끼는 일련의 이야기들 말이다. 거기에서만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을 보며 인간성을 배웠고 느꼈고 체험했고 그리고 거기서 닫았다.
얼마 전에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얘기를 했다.
"아는 언니가 자기소개서 봐달라고 해서 도와줬었는데."
겉으로 티 내지 않았지만 속으론 뜨악했다. 자기소개서를 아는 사람에게 봐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고? 그런 것이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단 말이야?
중학교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그랬다. 친구들이 숙제며 과제며 선생님이나 선배들과 알음알음 도움을 주고받으며 해결해 나갈 때 나는 묵묵히 혼자서 하는 편을 택했다.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학교 때는 전공 때문에 조별과제가 특히 많았는데 그때 '함께 과제하는 법'을 억지로 체험했던 것 같다. (대부분 혼자 할 때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히기도 했다. 생각보다 책임감과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 흔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 자랐던 것 같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에,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었다. 나한테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관심을 받으려고 했던 것인지 관심을 받지 않는 게 익숙해서였는지 나는 '알아서 잘'했다. 친척들이나 동네 어른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속 썩이지 않고 알아서 잘 하는 애'였다. 그게 마치 주문처럼 작용할 줄 몰랐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니까 학교 다닐 때는 '알아서 잘' 하고 다녔다. 친구는 많았지만 자매 같은 친구는 없었다. 사회생활을 한다면 성격이 좀 달라질까 싶었는데 글쎄,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회생활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척을 하는 처세술을 가르쳐주었을 뿐이다. 가면 쓰는 법, 가면을 쓰고도 쓰지 않은 척하는 법 같은 것들. 두꺼운 낯짝과 거뭇한 얼굴빛을 한 '사회인'들이 나를 그 무리에 끼워주었을 때 왠지 축하를 받았다. 거기서 받은 상처들은 이제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조차도 나는 '혼자 둬도 알아서 잘 하는 애'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깊이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말과 행동 하나에도 많은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러나 그 사소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상처는 언제나 예민한 사람의 몫이다. 이제는 그 상처에 익숙해져야 할 때지만 새로 맺은 관계는 언제나 새로운 상처를 주어서 또 나를 놀라게 한다. 새로운 상처에 적응하는 것도 역시 예민한 자의 몫.
* 표지 이미지, 영화 <아비정전> 스틸컷
* 영화 <그녀>와 영화 <아비정전>은 다소 내성적인 등장인물이 타인과 연을 맺는 관계에 놓였을 때 외로움과 고독을 다루는 작품들이기에 작성한 글의 분위기와 어울려 이미지로 활용하였습니다.
* 본 글의 모든 이미지는 각 영화 제작사에 있으며 출처는 '다음 영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