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임신, 또다시 유산

2장 - 1화

by 곤즈르

첫 번째 유산 후, 우리는 부부 상담을 받았다. 성향이 정반대인 우리는 자주 부딪혔고, 상실감 속에서 더 많이 다퉜다. 2024년 7월부터 11월까지, 다섯 달간의 상담 끝에 조금씩 마음이 정리되었고

2025년 1월, 나는 다시 두 줄을 보았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배란기였기에 우리는 이 아이를 '크리스마스 베이비'라고 불렀다.

하지만 기쁨과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첫 번째 유산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이번에는 정말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 임신이 어쩌면 운명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갈색의 새끼 오리 꿈을 꾸었다. 태몽이라고 확신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오리는 이제 막 태어난 듯, 혹은 아픈 듯 눈을 뜨지 못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살짝 어루만져 주었더니 움찔하기만 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첫 유산 후, 얼마나 많이 후회하고 아파했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이번에는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내 몸이, 내 마음이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기집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토록 보고 싶고,

기다렸던 아기집이었다. 첫 번째 유산 때 보지 못했던 아기집이었다. 0.25cm, 아주 작았지만 존재했다.

의사는 아직 초기라며, 일주일 후 다시 오자고 했다. 나는 다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아직 몰랐다.


나는 지난 첫 번째 유산 직후 습유 검사를 받았다. 이 검사는 보통 세 번 이상 유산해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우리 부부는 상관없었다. 내 돈을 지불해서라도 유산원인을 알고 싶었다.

검사 결과, 나는 항인지질증후군 약양성이었다. 이로 인해 임신이 확인되는 순간 바로 난임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적극적인 처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래서 유산 방지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악명 높은 크녹산 주사 그리고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했다. 크녹산은 항응고제 주사로, 혈전으로 인해 태아에게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걸 막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매일 저녁 8시, 남편이 내 배에 주사를 놔주었다. 짜증도 나고, 아프기도 했다. 배에는 점점 피멍이 들어갔고, 그럴수록 간절히 바랐다.


부디, 이번에는 괜찮기를.


하지만 일주일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초음파 화면을 보자마자 모든 감각이 얼어붙었다. 난황과 배아가 보여야 할 시기였지만, 비정상적인 난황만 보였고 배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피고임이 상당했다. 프롤루텍스 주사를 추가했다.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주사제다.


설 연휴 내내 피고임이 심해 거의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결국 할머니댁에도 가지 못했다. 움직이면 더 위험할까 봐, 혹시라도 이 아이가 버텨주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기적처럼 보였던 아기집은, 결국 침묵하고 있었다.


“이건 고사난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의사의 말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두 번째 유산... 또다시 같은 결말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결말을 맞이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다시 이 아픔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갔다.


나는 또다시 이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두 번째 유산은 첫 번째보다 더 가혹하게 느껴졌다. 유산이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이 현실이 되었고, 내 몸이 아이를 품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설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하기도 전에 유산 휴가를 일주일 썼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아기 고양이였다. 내 곁에서 정말 행복하게 뛰어노는 작은 고양이. 나는 이번만큼은 지켜낼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또다시 잃었다. 아기 고양이 꿈을 꾸고 나니, 마음에 결심이 섰다. 결국, 나는 비정상 임신임을 받아들였고, 다음 날 소파술을 받았다.


그때 회사에서는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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