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샘달 엿새 Jun 23. 2020

스물셋 겨울, 나의 첫 Paris

당신에게 보여주지 못한 내 마음

파리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이틀간 쉴 틈 없는 일정으로 인해 육신은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조금 더 누워 있고 싶던 마음이 허공으로 사라지며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파리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작은 이층 침대에서 내려와 아직 자는 친구들을 깨웠다. 씻으러 가는 길, 문득 스치는 작은 창문이 새하얗다. 앗! 눈이 내린다. 정확히는 비와 눈 사이의 애매함이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조급함이 밀고 들어와 지금부터 1초라도 아껴야 할 것 같았다. 어제는 몹시 추워도 맑아서 괜찮았는데 눈이라니, 걱정이 커졌다. 빠르게 준비해서 짐까지 꾸려놓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마지막 조식을 위해 자리에 다 같이 앉았다.



시리얼과 우유, 토스트와 잼, 과일 따위를 앞에 두고 나지막이 이야기가 흘렀다. 우리가 파리에 도착한 그저께. 전철을 타면서부터 공포가 밀려왔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였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낙후된 지하 공간, 그보다 더 어둡고 칙칙한 공기가 이어지니 모든 감각기관을 날카롭게 세울 수밖에 없었다. 전혀 알아들 수 없는 프랑스어와 낯설고 탁한 분위기는 파리에 대한 기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들어갔는데, 주인 남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은 반갑다던데, 투덜대는 말투와 귀찮다는 행동은 우리가 복수를 꾀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끼니마다 그의 식량을 거덜 내버렸다. 그와 마주하기 싫어 밤에 무작정 나갔다.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 갑자기 그림의 주인공이 되더니 별안간 거금 50유로를 내놓으랬다.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건 이를 두고 한 말일까. 불과 이틀 전 일이 마치 오래된 추억처럼 이어졌다.



이번 여행은 망한 것인가. 파리 도착 몇 시간 만에 20대 청년들은 점차 시들어갔다. 시커먼 전철을 빠져나와 지도를 살피고 길모퉁이를 도니 'She'가 나타났다. 에펠탑을 처음 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마침 금색 옷을 입고 화려한 빛을 파리 시내에 고루 나눠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말로만 들었던 파리의 정수에 도착하니 우리를 실망시켰던 거무스름한 불친절도 모두 용서할 것 같았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전경은 귀가 떨어질 것 같은 2월의 추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첫째 일요일이라 무료로 개방한 루브르에서 인파에 휩싸여 흘러가도 좋았다. 파리의 중심, 콩코르드 광장을 걷는데 ‘짠’ 하고 파리 시내의 가로등이 동시에 켜졌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어떤 남자가 있었다면, 분명 운명이었을 것이다. 파리의 미모는 듣던 대로 아찔했다.



지난 이틀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조식을 마쳤다. 저녁 비행 전, 파리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아야 했다. 바닥에는 눈이 제법 쌓였다. 설마, 이 정도 눈에 결항이 될까. 걱정은 접어두고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눈 내리는 모습을 눈으로 사진기로 열심히 담았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파리도 우아했다. 어느새 우리는 노트르담 성당 앞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눈을 맞고 있는 순결한 자태에 압도당했다. 인파가 많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것이 거룩한 감동인 건가. 주머니에 유로가 얼마 없어도, 빅맥만 먹는다 해도 이곳, 이 순간을 내가 맞이하려고 살아왔던가. 진정 운명이었던가.


영원히 못 잊겠노라고, 부디 잘 있으라고 인사하며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했다. 사흘 만에 익숙해진 공기를 아쉬워하며 훗날 다시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공항 카트를 끌고 출발 편을 확인하려 했다.



Canceled



이 새빨간 글자는 뭔가? 지연도 아니고 취소라고? 토익 LC에서 그렇게 들었던 비행기 취소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건가? 몇 달 전부터 철저하게 파리 여행 계획을 세운 우리는, 그래서 유로를 몽땅 털어 써버린 우리는, 당장 내일 런던에서 있을 수업에 참석해야만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우리는, 샤를 드골 공항에 발이 묶였다. 런던에 7년 만에 많은 눈이 내려 비행이 불가하단다. 당장 어디서 자고 24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나. 이역만리에서 다 같이 굶어 죽는 건가. 공항 노숙이 확정되는 찰나, 항공사에서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인파가 몰린 곳에 가보니 내일 저녁 비행기, 공항버스와 호텔, 세 끼까지 차고 넘치도록 파리는 마지막 선물을 줬다. 눈물이 흐르도록 우리에게 감동을 줬다. 무엇보다, 파리에서의 하루가 더 주어졌다. 학점 날리면 뭐 어쩌랴. 다시는,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HkdCr9HlRE0

매거진의 이전글 휴강하려면 곱게 하시든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