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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25. 2020

공공기관 신입사원의 출근길

그리고 업무 이야기

최종 합격 당시, 인사팀으로부터 내가 최종합격자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받았지만 믿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왜 합격을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동안 얼떨떨한 상태로 있다가 현실을 믿고 일주일 후 시작할 회사생활을 준비했다. 그 사이에도 여러 군데로부터 다음 전형에 참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필기 안내, 면접 안내, 최종 면접 안내 등등 이제는 이 모든 것에 응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가장 통쾌했다. 필기시험과 면접 참여는 에너지가 정말 많이 고갈되는 일정이었다. 밤늦게까지 외롭게 작성하던 입사 원서도, 매일같이 드나들던 공준모 카페도 안녕이었다.



첫 출근날이었다. 합숙 연수를 위한 짐을 꾸린 가방을 끌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건물에 도착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내가 일할 회사구나. 매번 지나친 건물이지만 첫 출근만큼은 감정이 남달랐다. 바쁜 아침 다른 직장인들 틈에 섞여 입사식 장소에 도착했다. 네 명의 신입 동기와 입사식을 마치고 곧바로 연수 장소로 향했다. 교육만 들어도 월급이 나온다는 꿀 같은 연수 시기를 보내면서 빨리 일을 하고 싶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들떠 있었다. 갓 백수를 벗어난 스물여섯 살 청년은 2년여의 취준생 시절을 까맣게 잊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합숙 연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매일 한강철교를 건너며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회사가 있던 여의도가 저 멀리 잃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내 몸은 광화문 방향으로 향하는, 내 꿈과 현실의 간극이 커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를 알아봐 준 회사에 감사하며 앞으로 숱하게 맛볼 인생의 아린 맛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회색빛 전철 속에서 홀로 풋풋한 출근길을 만들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해 자랑스러운 사원증을 목에 걸고 배지를 깃에 달아 누가 봐도 애송이 티를 팍팍 냈다. 나는 어떤 업무를 맡게 될까? 내가 입사한 기관의 모든 업무를 다 해보고 싶었다. 청년들에게 경제적인 도움과 멘토링 사업을 하는 곳이라 어떤 일이든 보람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핑크빛 기대는 분주하고 냉철한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기 일쑤였다.


민원


첫 부서 발령을 받고 내 업무는 전화를 받는 일이었다. 무슨 전화가 그렇게 많이 오는지 전화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내가 속한 부서는 일정 요건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데 용건의 대부분은 본인이 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전화를 받아도 바로 대답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지급 규정을 확인해야 하기에 다시 전화하겠다는 식으로 반복하다가 사건이 터져 버렸다.


내가 일정 금액 지원이 불가한 고객에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답변을 했다. 며칠 지나자 본인이 수혜 대상자가 아니라는 내용을 들은 고객은 나의 오 안내에 대해 분노했다.

"OOO가 된다고 했는데 왜 안된다는 거야!"  

고객은 당장이라도 나를 찾아온다고 난리가 났다. 일이 점차 커져서 부서는 물론, 고객 응대를 전담하는 타 부서까지 전염되어 불같은 민원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잘못된 안내가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내가 직접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서야 모든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민원 업무를 다룰 때였다. 내가 경험한 업무 자체가 모든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지는 않기에 수혜를 받지 못하는 고객들의 불만이 종종 들어왔다. 보통 콜센터를 통해 해결되지 않은 민원은 해당 업무 부서로 이관되기 마련이었다. 민원 고객 실무 담당자의 논리적인 설명을 원했다. 무조건  된다는 답변보다는 어떤 근거로  되는지 설명하고 대안을 찾는 방식이 중요하다. 결국, 민원 해결도 설득의 영역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업무에 대한 정확한 숙지, 고객 맞춤형 설명 능력이 필요하다.



보고서


간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였다. 빠르게 돌아가는 업무를 이해해야 내 신변과 정서가 편안할 것 같았다. 하필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 선배들은 내게 업무를 알려줄 틈이 없었다. 신입사원 연수 때 부서의 문서를 확인하라는 조언이 떠올라 전자문서함에 담긴 각종 보고서를 찾았다. 그 문서는 지금 나의 부서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었다. 보고서를 기웃거리다가 온종일 보고서 작성만 하는 선배가 눈에 띄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 그래프인데 선배는 그래프를 위해 하루를 보냈다. 뭐가 문제인지 부서장 보고 때마다 까이거나 통과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곧 보고서의 중요성을 곧 알게 되었다. 통계와 부수 자료로 작성한 보고서가 주무 부처(교육부나 기획재정부)에 보고되고 이는 곧 국민에게 알려지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그러므로 보고서는 정확해야 했고, 누가 봐도 이해하기 쉬워야 했다. 보고에는 어떤 양식과 절차가 있는 것 같았다. 보고 양식에 맞게끔 주임이 작성하면 팀장이 몇 번 검토하고 부서장은 그 내용을 이해하고 오탈자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몇 차례의 보고가 끝나면 비로소 기관 내, 외로 공유되었다.


훗날에는 내가 보고서를 작성했고 보고의 벽을 넘을 때마다 초조해졌다. 부서장 앞에서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설명하면 곧이어 이 문장은 무슨 뜻이냐, 단어 선택이 맞는 거냐, 수치는 정확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했다. 이렇게 문서 작업을 하다 보니 문득, 공공기관에 입사하기 위해 논술과 자료해석 시험을 왜 치르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공기관에 입사한 대부분의 직원은 매일 보고서를 마주해야 했고 제대로 읽고 작성해야 하는 업무가 기본이었다.

 

회의


신입사원 시절부터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회의에 참여해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름 업무와 관련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합격과 동시에 내 머리가 포맷된 느낌이었다. 일의 영역에서도 책과 현실의 차이는 컸다. 신입사원 나에게 회사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일하면서 흔히 쓰는 단어도 생소했다. 별수 없었다. 열심히 받아 적고 하나씩 물어봤다.


선배들의 회의에 참여해보니 면접과 유사한 것 같았다. 특히, 토론 면접 때가 많이 떠올랐다. 새로운 업무를 두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떤 부서가 얼마만큼의 일을 해야 할지.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되, 우리 부서가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문제 해결력과 팀워크도 중요했고 타 부서에 부탁할 때 필요한 넉살? 또는 마당발 선수도 필요한 느낌이었다. 회의는 그냥 잡담이 아니었다. 업무와 관련되기에 중요한 일과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타 부서, 타 기관과 회의를 하는 날들이 익숙해졌다. 내가 회의를 주관하고 내용을 정리해 언제까지 업무를 해달라고 하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여러 민원 고객도 만나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공공기관 입사 때 준비한 필기와 면접은 결국 ‘설득’을 힘을 얻기 위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때 다져진 정보는 회사 생활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민원 응대나 보고서 작성, 회의 같은 업무 일부에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신입사원으로 어설프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도중 이사장님과 신입사원의 점심 식사 자리가 생겼다. 이사장님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태도로 일을 하겠냐는 각오를 물으셨다. 샤부샤부 전골을 앞에 두고 또다시 임원 면접에 임하는 느낌이었지만 생각을 가다듬고 평소 생각하던 기관의 이미지를 떠올려 진솔하게 답변해보았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겠습니다. 저도 과거 우리 기관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많은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 보람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답변을 마치니 이사장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OO 씨 왜 뽑힌 줄 알아요? 그 마음 때문에 붙은 거예요.”



순간, 내가 왜 이 기관에 채용되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마음 하나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공공기관 신입사원이 된 나에게 매일 아침 출근길에는 희망이 있었다. 미래가 있었고 그래서 풋풋한, 나의 연두색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일개 직장인이기도 한 나에게는 임무가 있었고 회사는 학교가 아니었다. 감성적인 반성이 아닌 빠르고 정확한 일머리를 갖추어야 했다. 그 시절은 첫 마음과 부끄러움이 뒤섞여 애증의 감정으로 남았다. 그래도 처음의 그 설렘은 잊지 않고 싶은지 봄으로 가는 겨울 끝자락 아침마다 그때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마지막 이야기 : 취준생으로 살며 깨달은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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