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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28. 2020

취준생으로 살며 깨달은 몇 가지

나의 공공기관 입사 이야기를 마치며

최종 합격의 순간을 마주하기까지 꼬박 2년 가까이 취업준비생으로 살았다. 그 시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걷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막막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본격적으로 취업준비생이 되기 전부터 취업이 어렵다는 말은 늘 들었지만 그렇게 힘든 일일까 싶었다. 나 역시 직접 해보니 취업의 어려움이 비로소 체감되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취업준비생이라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 시간을 보낼지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공공기관 취업 이야기를 마치면서 내가 취준생 시절을 보내며 깨닫게 된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


학생 때는 노력하면 된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중간, 기말고사처럼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각종 시험은 단기간에 조금 더 공부하면 성적이 나왔다. 나는 이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취업은 벼락치기가 먹힐 리가 없었다. 그 막연함은 실전에 부딪힐 때까지 이어졌다. 취업 시장에서 다른 지원자들을 만날수록, 합격자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부단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한 실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종면접에서 낙방한 그 회사가 선택한 신입사원은 실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국내 내로라하는 교력(!) 출신이 많았고 외국 대학 출신도 있었다. 물론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역량을 표출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미 회계사인 사람들도 있었고 대학 시절 내가 엄두도 못 낸 어려운 자격증을 가진 이들은 자격증이 없는 사람보다 많았다. 대외 활동 경험이 많은 사람도, 분명 신입인데 다른 회사에서 관련 경험을 보유한 이들도 많았다. 인턴 출신 중에는 입사 준비에 전념한다고 일찌감치 퇴사했던 사람이 합격했다.



단지 반년 동안 필기시험을 준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관에 합격하기에는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객관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학벌로 밀렸다고 핑계 댈 수도 없었다. 합격자들의 노력은 나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간절하고 더 노력했기에, 그들은 나보다 더 오래전부터 더 많은 피와 땀으로 일궈놓은 업적이 이어지고 있었고 삶의 과정 중에 그해 신입사원이 되었던 것이다. 얼마나 준비했다고 내가 원했던 기관에서 최종 탈락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취업준비생 초반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같은 곳을 지원한 친구는 붙고 나는 탈락할 때였다. 같은 기업에 입사 지원을 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면접 유형이나 후기 같은 고급 취업 정보를 공유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경쟁자가 되는 의미도 포함한다. 경쟁률 100:1중에 내가 1이 되려면 친구도 이겨야 내가 승리하는 게임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탈락하고 친구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은 열등감에 불을 붙였다. 그가 나보다 나은 스펙이라면 그 자체가 패배 요인이었고 그가 나보다 모자란 스펙이라는 생각이 들면 알 수 없는 채용 방식에 화가 절로 났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커다란 착각이었다. 취업을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는 일이다. 즉, 업무에 적합한 준비된 사람을 뽑는 일이다. 친구가 떨어진다고 내가 붙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합격한 사람은 그 일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하는 기업이 단 한 사람을 채용한다 해도 그 기업을 위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합격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그 해에 많은 인원을 채용한다 해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붙는다는 보장이 없다.



대학 때 취업한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취업은 1대 몇백의 확률이 아닌 내가 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다.”


지원자가 많다면 그 속에 허수도 많다. 나 역시 그 허수에 속해 뻔한 탈락에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돌아보니 나의 취준생 시절은 업무와 사회생활에 있어 가장 필요한 역량을 만드는 나만의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취업 준비 후반부로 갈수록, 함께 지원한 이들에 대한 경쟁심이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취업 준비 초반의 시기는 사라지고 내 노력의 결실이 보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그랬듯 다른 지원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걷는 셈이다.



세상이 몰라줘도 나 자신은 믿어야 한다.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마주한 세상은 냉혹 그 자체였다. 세상은 나를 모른다. 70억 인구 중 하나인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멋진 외모와 화려한 모습에 빛을 비추고 모든 조명은 1등 만을 위해 모든 걸 내주는 느낌이었다. 면접에 참여하면서 면접관들에게 내가 눈에 띄지 않아 들러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참함이 몰려왔다. 그 쓸쓸한 귀갓길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를 만났다.


‘세상은 왜 이렇게 나를 몰라줄까.’


내가 눈에 띄려고 아무리 아등바등 몸부림쳐도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문제는 이런 현실에서 딱히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더러운 세상이지만, 살아가려면 돈은 벌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취업 준비를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래, 나를 알아봐 줄 단 한 곳만 있으면 된다고. 분명 내가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작아진 나를 내가 일으켜 세웠다.



수백 번 넘어져도 다시 걸으면 길은 생겼다. 언젠가는 나의 노력이 배신하지 않을 거라며 취업을 위한 실력을 쌓았다. 그사이 나를 선택하는 곳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내가 가진 이점을 갈고닦으며 계속 지원하다 보니 전보다는 나은 실력을 갖춘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를 믿고 믿음의 주문을 끊임없이 외운 결과라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는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두 달간 모 은행에서 인턴 경험이 있다. 지점에서 온종일 서서 고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면서 금융인이 되겠다는 소양을 갖추는 시간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해보고 싶던 일이라 그저 즐거웠다. 인턴 환영 명목의 회식 자리였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이야기하던 중 모 차장 앞에 앉게 되었다.


“넌 정식 직원이 아니니까 건배는 하지 않을게.”


그 차장이 회식 자리에서 싸늘한 면박을 줬다. ‘넌 정식 직원이 아니니까. 넌 정식 직원이 아니니까.’ 한동안 이 말이 뇌리를 떠나지를 않았다. 정식 직원이 아니면 회식도 따로 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직장 사회를 몇 가지 계급으로 나누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지점 청소와 식사를 담당하는 여사님과 청원 경찰, 인턴, 계약직, 정규직, 지점장처럼 말이다. 그 사람이 없으면 한 마디씩 띄워보는 그에 대한 험담은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정규직원이 아니기에 발생하는 일일까. 하청 업체에 대한 무시의 태도, 특정 인물에 대한 험담은 사회초년생의 눈에는 커다란 모순 같았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여겼는데, 그렇지도 않겠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물론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서로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정식 직원이 아닌’ 제삼자로 지켜본 나로서는 이런 사실이 영 편치 않았다. 비단 이 모습은 내가 열 달간 근무했던 공공기관 인턴 경험에서도, 그리고 신입사원이 되어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귀천은 없다. 일일이 말 못 할 나의 사연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는 그 일을 하게 된 그들만의 사연이 있을 뿐이다. 일로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 일을 하는 그 사람을 무시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니 사람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사회, 직장에서는 직급에 대한 상하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최소한의 예의가 바로 그 존중이다.



홀로 이겨내는 과정이지만 내게는 나의 사람이 있다.


대학 때 타향살이를 시작해 6년을 지내면서 나는 나대로 잘살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세상에 나오면서 혼자 사는 일은 비로소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목표한 곳에 낙방해 목적을 잃은 나는 자연스레 가족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곳은 별말이 없어도 편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깨끗한 이불에서 잠을 자면서 온전한 휴식을 취했다.



이 모든 것은 가족의 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 홀로 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홀로서기에 어려움이 느껴질 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 우리 집이 있음에 감사했다. 오히려 내 도전을 응원받으니 잊고 살던 가족의 포근함을 느꼈다. 이러한 생각에 닿으니 나는 이 지겨운 취업 준비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해내면 조금이라도 보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힘들 때 격려를 아끼지 않은 지인도 있었다. 주로 대학 선배들과 멘토 선배가 나를 위로해줬다. 그들은 이 청년 실업자에게 맛있는 밥을 사줬다. 매번 얻어먹는 밥이라 미안함이 담겼지만 그 한 끼에서 무언의 용기를 얻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내가 나를 믿게 해 준 이들은 가족과 지인, 즉 나의 사람들이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그 고마움을 가장 크게 느꼈고, 무엇보다 그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았다.




갈망하던 취업이 확정되면서 나는 하루아침 만에 백수에서 신입사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 뼈를 묻을 각오도 했다. 어떤 일이든 다 해낼 것이라고,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감상에 휩싸였다. 하지만, 왜 잊고 살았을까. 취업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직장인의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왜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을까. 일 외에도 내 삶을 가꾸는 방법이 있을 텐데, 일과 사람에 찌든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오롯이 받았으니 말이다. 내가 신입사원의 옷을 벗을수록 첫 마음을 잊는 날이 많아지며 그렇게 나는 점차 사회인이 되었다.



내가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했을 때 그간의 준비 과정을 꼭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그 바람은 몇 년이 지나서야 이루게 되었다. 멈춘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으니 잊고 살던 나의 과거가 하나씩 떠올랐다. 그 시절을 마주하며 가장 큰 기쁨은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진심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때의 간절함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학생과 사회인, 그 사이에 취준생이란 신분으로 살면서 나는 ‘어른 아이’ 같았다. 분명 어른이지만 아직 아이의 마음이 컸기에 처음 마주한 세상이 차갑고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준생 시절 만났던 주변 분들의 도움 덕분에 공공기관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당신들에게 이어 줄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가 ‘나의 공공기관 취업 이야기’를 쓰게 된 까닭이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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