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1. 나 홀로 외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부터 분주했다. 예약을 한 시간 남기고 부랴부랴 출발했다. 홀로 다녀올 길이라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저 멀리 버스가 다가오는 모습에 마음이 더 급해졌다. 무사히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는데 5월이 다 지나도록 요금 누적액, 숫자 ‘1200’이 생소했고 그 안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쓴 모습에 잊었던 현실을 자각했다. 평소 걷던 동네 길을 버스 안에서 빠르게 달렸고 그 틈에 사람과 계절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이런, 방금 출발했나 보다. 여기서 시간 10분을 날리게 되었다. 예약시간을 맞추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플랫폼 주변을 서성이며 지하철 노선도도 한번 보고 환승을 위한 최적의 코스를 생각하다 말다 그러다 보니 전철이 도착했다. 이 라인의 시작점, 그래서 아무도 없던 지하철 문이 열리자 너도나도 멀리 떨어져 자리를 차지했다. 나도 앉아서 지하철 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조용하면서도 무척 시끄럽기도, 문이 열리고 닫히기도, 익숙한 안내 방송 목소리를 몇 번 듣다 보니 환승역에 도착했다.
그곳의 환승 여정은 참으로 길다. 핑크에서 초록으로 바뀌는 지하 통로를 나도 열심히 통과하고 있었다. 점차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번에는 금세 전철이 왔고 적당히 자리를 잡은 결과 앉아 갈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2호선에서 십 수번의 문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가 있는 익숙한 역에 도착했다. 재빨리 카드를 찍고 밖으로 나와 약속한 검진을 진행했다.
미룬 숙제를 끝낸 것 같아 홀가분한 마음에 그냥 가기는 아쉬웠다. 그리하여 근처 중고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차분한 분위기였던 그 속에서 무작정 헤매고 싶었다. 들어갈 때만 해도 어떤 책을 사고자 할 마음은 없었는데, 헤매다 보니 마음에 담겨 있던 책이 연달아 보여서 세 권이나 고르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필요했던 책도 두 권 추가하고 아기를 위한 음악 CD도 하나 고르니 묵직한 종이 가방을 들고 나오게 되었다.
다시 집으로 갈 시간이다. 1시간은 더 걸릴 텐데, 아까와는 달리 짐도 무거운데. 이런 기우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 나 홀로 외출에 있어 시간과 짐은 문제 되지 않는다. 유한한 자유 시간을 즐기다 보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지난겨울 이후 오랜만에 만끽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자못 아쉽기도 했다.
2. 자전거 타기
초인종을 누르면 나 홀로 외출은 종료된다. 환하게 웃는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해서 식사했다. 설거지, 빨래, 방 청소, 욕실 청소에 집중하니 3시가 훌쩍 넘었다. 잠시 쉬려는데 공원에서 만나자는, 예정에 없던 제의가 들어왔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자는 얘기는 내게 망설임을 없앴고 우리를 바로 공원으로 향하게 했다. 도착한 그곳에는 보기만 해도 평화로운 공원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나무가 이어지고 가지각색의 자전거와 킥보드 같은 탈 것들이 지나다니며 웃음소리가 곳곳을 떠다녔다. 날씨는 온화했고 바람도 살짝 불어 반소매가 어울리는 5월의 한가운데, 따릉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기억할까? 넘어지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 저변에는 자전거를 몹시 열망한 내 마음이 있었다. 본질을 덮은 채 쓸데없이 떠오르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한 번에 터뜨리며 나는 페달을 밟아보려 했다. 어어어어! 순간 핸들은 마구 흔들렸고 뒤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발을 땅에 닿아 바퀴를 멈추었다. 진정 다 잊은 것인가. 다시 시작한 자아의 다툼을 가라앉히며 앞을 바라보니, 탁 트인 공원에 꼬마며 어른이며 자전거를 즐기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럴 새가 없다. 다리에 기억을 맡겨보도록 하자. 불쑥 솟은 의지에 좀 전까지 심하게 흔들리던 자전거는 안정을 찾았고 순간 나도 모르게 페달을 힘차게 밟고 있었다. 자전거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 바람은 내 이마를 들추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섬세하게 스치며 쓰다듬는다. 운전할 때 멀리 보라는 기억이 떠올라 그렇게 해보았다. 저 멀리 지하철역 넘어 자동차가 움직이고 반대편에는 왠지 도전해야 할 것 같은 작은 언덕이 보였다.
몇 바퀴를 도는 동안 고민만 하다 에잇 모르겠다, 그 언덕을 넘어봤다. 평지와는 달리 힘이 많이 들어갔지만 꼭대기에 올라오니 언덕 너머 세계가 보였다. 페달을 멈추고 스스로 내려가는 자전거에 몸을 맡긴 채 체조 경기장과 핸드볼 경기장의 존재를 확인했다. 체인이 풀리는 것 같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데 이따금 스치는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이곳이 현실임을 알게 했다. 언제 들어도 정겹고 맑은 ‘따르릉’ 소리를 일부러 내보며 자전거가 전해주는 모든 감각을 즐겼다. 다리가 아파져 유한한 이 시간도 오랜만에 만끽하니 행복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