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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22. 2021

나는 우다이푸르의 개

짧은 우화:  우다이푸르의 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개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개의 인생 또한 인간의 관심 밖의 일이지요. 저처럼 기이한 개에 대해서는 들어  적도 없을 것입니다. 형색이 초라한 들개라고 해서 우습게 보시면 곤란합니다. 저로 말할  같으면, 이곳 우다이푸르에서 1500년을 넘게 떠돌았던 라지푸트 혈통의 개입니다. 물론 동물이 인간의 혈통을 이어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아주 오래전 호수에 빠져 죽어버렸던 제가 무슨 이유에선지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마침 라지푸트족의 영혼이 함께 섞여 들어온 덕분에 애타게 마하라자() 찾는 인간의 곡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것입니다. 얼떨결에 영원을 누리는 팔자 좋은 신세가 되었지만, 라지푸트족 영혼을 떠안고 산다는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지요. 완전히 살아 있는 것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몸으로 무려  년을 넘게 우다이푸르의 개로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미라요?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존재와는 다릅니다. 도깨비. 저는 어쩌면 도깨비 일지도 모르겠군요.


인간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 벌써 300년 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저를 흔한 떠돌이 개로만 생각하지 뭡니까. 발에 치이거나 놀림을 받는 일은 이제 익숙합니다. 그 또한 들개의 팔자니까요. 동쪽지방에서 오셨습니까? 동쪽 사람 특유의 피부와 옷차림을 하고 있군요. 동양의 여행객은 좀처럼 흔하지 않지요. 킁킁, 신발에서 모래 냄새가 납니다. 타르 사막을 건너오셨나요? 사막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죠. 저는 피촐라 호수(Lake Pichola)에 영혼이 묶여버린 신세니까요. 그렇지만 우다이푸르의 개로 산다는 것은 분명 행운입니다. 메마른 사막과는 달리 이곳은 물이 아주 풍부하니까요. 떠도는 신세에 말라죽을 일은 없으니 다행입니다. 아무렴, 모래 위에서 굶어 죽느니 물이라도 마시고 죽는 편이 나을 테지요.


라자스탄의 뜻은 알고 있습니까? '라지푸트의 나라' 이자 '왕들의 땅’을 뜻하지요. 라자스탄은 수천 년에 걸쳐 끝도 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만, 누구도 왕궁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왕조에 거쳐 지켜낸 우다이푸르 역시 라지푸트족의 자부심입니다. 아마 이곳보다 더 찬란한 도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자, 어서 다리를 건너오세요. 바로 이 호수의 다리만 건너면 구시가지입니다. 신시가지의 북적북적한 열기도 흥미롭지만, 구시가지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도 못지않지요. 저희 들개들은 대체로 이곳 호수의 가트(Ghat)에서 오후를 보내곤 합니다. 가트 주변에서 빨래를 하는 인간들을 병풍 삼아 낮잠을 자곤 한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다이푸르도 엄격한 카스트 아래에 있다는 것을요. 여기서는 대개가 힌두교라는 종교를 따릅니다. 매일 가트에서 뿌자 의식(힌두교의 예배)을 볼 수 있지요. 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계급, 종교, 예술 같은 것 말입니다. 어째서 인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모시는 것입니까? 신은 무엇입니까, 당신도 그것을 믿습니까?


또한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들은 빨래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 가트에서는 빨래가 흔한 풍경입니다. 라지푸트족 영혼은 그것을 일컬어 ‘계급’이라 말해주더군요. 이건 마치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두 개의 삶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평생 빨래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평생 빨래만 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빨래마저 할 수 없는 지경의 인간들은 저희 들개보다 못한 팔자지요. 전부 제가 가트에서 본 것 들입니다. 무려 1500년 넘게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는 계급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까?


우다이푸르에서 그림은 매우 흔하고 또 귀하며 이것으로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돈이 무엇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림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거울 타일과 유리세공품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세밀화는요? 예술이란 엉뚱합니다. 종이 위에 색깔이 있는 물을 바른다한들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전쟁이요? 전쟁과 종교가 예술로 이어지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점점 더 미궁이로군요.


옷을 입는 것, 심지어 그 옷을 빨아서 입는다는 것 역시 개로서는 황당할 따름입니다. 인간들은 벌거벗은 몸을 부끄럽게 생각하더군요. 개들이 벌거벗은 것이나 개들의 교미는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허나 인간들은 교미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꽁꽁 숨깁니다. 심지어 입 밖으로 그 단어를 내뱉는 것조차 조심하지요. 하지만 전쟁은 어떻습니까? 피가 쏟아지고 머리가 잘려 땅바닥에 굴러다닙니다. 전쟁을 치를 때는 큰 소리로 알립니다. 이긴다는 것을 명예로 여기죠. 죽는 것 또한 명예가 아니겠습니까? 지켜낸 것은 자부심이죠. 그러나 전쟁이야말로 인간의 언어에 의하면 ‘부끄러운’ 것이 아닐지요. 하지만 라지푸트족 영혼은 이를 인간의 본성이라 말하더군요. 본성이 부끄러울 것 없다면 교미도 숨기지는 마십시오. 교미는 은밀하게, 전쟁은 거하게 치러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시 개로서는 알 길이 없군요. 인간들이란 뭐랄까요, 제멋대로에 까다롭고 복잡하달까요. 차라리 개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들개로 산다는 것은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습니다. 저희는 주어진 삶에 딱히 불만도 없습니다. 누구에게 발길질을 받거나 놀림을 받더라도 그저 그렇게 살다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들처럼 복잡한 규칙이 없습니다.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죠. 그러나 함부로 상상하시거나 개로 살기를 바라지는 마십시오. 개로 산다는  복종과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일이며 삶의 절반은 식욕의 지배를 받는 일입니다. 저는 라지푸트족 영혼을 품은  1500년을 살았습니다만, 여전히 깨닫거나 느낄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몸뚱이만 죽지 않은 것이지요. 복잡하고 어려운 규칙 안에서 전쟁을 치르며 산다는  어쩌면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일지도 모릅니다.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제 가셔야 하는군요. 즐거웠습니다. 언젠가 그곳 동양에도 가볼 수 있다면 좋겠군요. 물론 저는 이곳 우다이푸르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신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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