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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esa Oct 22. 2021

캣콜링 서비스

"SEX! LOVE!”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고 나는 얼떨떨했다. 뭐든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전두엽의 회로가 끊겨버리는 바람에 적당한 리액션을 취하지 못했다. 코흘리개 사춘기 청년의 말을 흘려듣지 못한 나는 눈썹을 팔자로 일그러뜨리며 질색했다. 2008년 9월 25일. 여행 보름 차가 되자 심신이 지친 것에 더해 차츰 정신적 한계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특히 시도 때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인도인들의 캣콜링은 내 흔한 스트레스 유발 요인 중 하나였다.


세상 어디든 어두운 뒷골목이 있고, 누구든 그곳에 발을 잘못 들이면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여행지의 위험은 어두운 뒷골목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의 충돌에서 오는 경우도 많았다. 상식적인 선에서 안전하게 다니더라도,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가 여행객을 충분히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인도는 엄격한 신분제와 강한 종교적 신념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바닥을 치는 여성의 인권을 드러내듯 거리에서조차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략 90% 정도의 비율로 남성들이 훨씬 많았다.


하물며 외국인 여행객은 남녀불문 카스트 제도에 포함되지 않은 완전한 열외였다. 그러니까, 죽거나 어디로 사라지거나 크게 다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목숨이 희생제물로 바쳐진다 해도 “그럴 운명이었군요.”하고 말일이었다. 되려 “여긴 인도에요. 예상 못했어요?" 하며 죽은 이에게 슬쩍 책임을 돌리는 말도 가능할 것이다. 인도인들이 모두 나빠서가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베풀고자 하며 친절에 야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화와 관습은 우리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그들에겐 죽음조차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 가난과 고통은 그저 ‘신의 은총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도에서의 캣콜링은 여행에 이미 포함된 옵션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거리에서든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할까.


남성보다는 여성이 그 대상이 되기 쉬웠다. 인도의 캣콜링은 여타 국가와 비교해 보더라도 수위가 높을 것이다.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서 들었던 노골적인 'SEX LOVE' 말고도 아찔했던 순간은 꽤 있었다. 다만 당시의 나는 그것이 위험인지 몰랐고 위험에 저항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인도 배낭여행이 겨우 첫 번째 싱글 트립이었음에도, 열악한 조건 속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건 결코 인도 여행이 안전해서가 아니다. 그건 천운이었다. 소문과는 달리 안전하길 바랐지만, 소문보다 훨씬 불안전한 나라였다.


인도인들에게 캣콜링은 흔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SEX LOVE는 어쩌면 Y를 덧붙여 SEXY LOVE정도의 수위로 해석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희롱이 희열이 되는 건 아니지만. 캣콜링으로 악명 높은 델리에서 경험했던 건 되려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유독 피부가 하얀 백인과 동양인을 훑어보는 시선들이 많았고, 슬쩍 불쾌한 말을 던지거나 작정하고 들이대는 경우도 허다했다. 거리에서는 물론이고 버스 안, 기차역, 식당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제한 캣콜링 서비스를 누려야 했다. “껼혼해주쎄요” 혹은  “Will you marry me?”같은 청혼은 그나마 양반이고.


가장 황당했던 건 다르질링에서다. 당시 나는 정차해 있는 시내 관광용 기차에 타고 있었다. 객석엔 나를 포함 서너 명의 승객들 뿐이었다. 그때 플랫폼에 한 사내가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더니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올 것이 왔구나. 재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는 이리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전형적인 수법의 캣콜링 서비스를 제공했다. 안녕? 어디에서 왔어? 한국인이구나! 반가워! 정말 예뻐! 이런 식으로 서서히 시작된다. 나는 대꾸를 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내 오토바이 타고 옆 마을에 가보자. 어때?” 그의 말에 싫어, 하고 짧게 답했다. ”거기 우리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함께 가서 놀자.”그가 어설프게 나를 안심시켰다.


 “아름다운 곳이야. 밤엔 축제가 열려!”와 같은 감성적인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싫다며 정색할 뿐이었다. 그는 주변 승객들의 눈치를 살살 살피더니 내 일기장과 펜을 뺏어 [ 비자(Visa)를 부탁해도 될까? 0000@yahoo.com]과 같이 노골적인 메모를 남기고 가버렸다. 황당한 일이었다. 주홍글씨처럼 여행 일기장의 뒷페이지에 여전히 그날의 일화가 남겨져 있다. 처음부터 한국 비자가 목적이었던 것일까. 으슥한 뒷골목에서 만났더라면 여권부터 뺏겼을 일이다.


캣콜링 보다 위험한 건 역시 더 위험한 목적을 품은 사람들이다. 늦은 밤 타르 사막에서 고열과 힘겹게 싸우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불청객들이 저 멀리서 베이스캠프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꺼진 장작불 둘레에 솜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멀리 모래 언덕 너머로부터 누군가 소리치듯 우리를 향해 말을 건네 왔다. 낙타꾼은 잽싸게 그 말을 수신했다. 나는 뜻 모를 그들의 대화만 열심히 엿듣고 있었다. "절대 고개를 들지 마. 계속 누워 있어.” 낙타꾼은 손짓을 섞어가며 일행들에게 다급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불안감에 슬쩍 고개를 들었고, 모래 언덕 너머의 '원정대'를 확인하자마자 바닥에 철퍼덕 엎드려버렸다. 무리를 지은 청년들이 낙타를 타고 이리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쪽은 여자만 넷이었다. 일본인 일행 둘, 나와 내 대학 동기. 낙타꾼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다. 드디어 죽는 건가?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다행히 그들은 베이스캠프까지 진격하진 못했다. 낙타꾼의 방어는 성공적이었다. 청년 원정대는 늦은 밤 사막에 무얼 하러 왔던 걸까? 가까이에 마을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 타르 사막은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동네 뒷산일 뿐이었다. 위험은 이벤트처럼 뜻하지 않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여자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걸 부정적으로 볼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곳이 인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 역시 실제로 경험한 아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볼 때 다시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30일 씩이나 다녀온 주제에 이런 얘기 뭣하지만, 여러모로 신중히 고려해야 할 여행지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던져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이 될 수밖엔 없다. 모험의 환상만으로 떠나기에 인도는 결코 만만한 땅이 아니었다. 출발과 동시에 캣콜링 서비스 정도는 각오해 두는 편이 좋다. 무제한으로 제공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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