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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Jun 04. 2023

(일기) 섦이란 들러붙는 습성이 있으므로, 멀리할 것

2019년 6월 4일

홀로 가만히 있으면 투명하고 끈적거리는 감정이 뼈에 사무칠 때가 있다. 외로움과 닮았으나 외로움은 아니고 슬픔처럼 생겼으나 슬픔도 아니며 울화처럼 치솟지만 딱히 화기는 아닌, 홀로 오롯한 감정이다. 예전에는 그럴 때 화를 냈다. 분노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만술이다. 무엇이든 분노로 덮으면 아니 덮어지는 일이 없다. 그뿐인가, 분노할 때 고양되는 정신과 몸의 에너지는 달콤하기까지 하다. 물론 제때 해결되지 못하고 덮인 것은 고여 있다가 상하고 썩는다. 그 독이 얼마나 깊고 아픈지 깨닫게 되면 더는 기만에 분노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분노를 사용할 수 없게 되고서 사방이 어두워졌다. 나의 가장 큰 적이 나인데, 어떻게 맞서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가지 명확한 사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의미 없는 사실은 그러므로 마음의 모양을 빚어낼 시기의 어린아이에게 분노를 먼저 가르쳐선 안 된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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