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인 Jun 08. 2023

(일기) 창작의 위대함

한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는 한 개의 세계가 오롯이 필요하다

감정이 사무치는 날이면 옛날 습작들을 꺼내놓고 조금씩 고친다. 창작은 위대하다. 그 무엇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외로움이 새로운 세계를 빚어내는 일에 몰두할 때만은 충만함으로 바뀐다. 모두가 이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창작에도 훌륭함과 뒤떨어짐이 있어 누군가는 자신이 빚은 세계로 다른 이의 영혼을 감동시키고, 누군가는 허술하기 그지없어 우스운 세계를 만들어내겠지만 타인의 취향을 운운하기 이전에 나 자신에게 나 자신의 창조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 전체가 내곁에 머무르는 시간과 다름없다. 깊이를 따지지 않는다면 가장 손쉬운 건 역시 글자인데 그림도 음악도 영상도 조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보다 신에 가깝다는 예술들이니 더 깊을 수도 있을 터다.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 만드는 동안만큼은 그 세계의 모든 생명과 서사와 무기물이 온전히 내 곁에 있어준다. 나는 인간과 다른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여기 있다고 생각해왔다. 인간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하나의 세계 전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2018.06.08)

작가의 이전글 (일기) 섦이란 들러붙는 습성이 있으므로, 멀리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