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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Nov 19. 2023

(칼럼) '아래 계신 분'이 전화 싫어하세요

2023.11.12 한국경제

“아래 계신 분이 통화를 너무 싫어하셔서 그냥 사장한테 전화했어.” 얼마 전 리테일업계 영업사원들이 모이는 자리에 갔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들었다. ‘위에 계신 분’이라는 말은 관용적으로 자주 사용해 왔지만 ‘아래 계신 분’이라는 표현은 그날 처음이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연차가 쌓인 영업맨들이었다. MZ세대 사원들이 자꾸 전화를 피한다며 불평하는 것이 잡담의 주요 내용이었다. 영업팀 일은 소비자나 대리점 사장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고객서비스(CS) 업무가 많은데 현장에서 급히 전화하면 받지 않거나, 받아도 “카톡으로 마저 말씀 나눌까요?” 하면서 확실한 결론을 내지 않은 채 끊으려 든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영업맨들은 “굳이 불편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팀장이나 사장한테 전화하자”고 결론지었다. 일을 가르쳐주려고 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라는 한탄이 따라붙었다.


정말 그럴까 싶어 주변 MZ들에게 전화를 거는 게 진짜 불편하냐고 물어봤다. 불편하면 왜 불편한지 설명해달라고 했다. 불편하지 않다고 답한 MZ는 한 명도 없었다. 불편해하는 이유는 대체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통화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모든 업무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거니와 조금이라도 틀리기는 너무 싫다고 했다. 또 질문을 해야 할 때도 텍스트가 훨씬 확실하고, 생각하면서 작성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각종 협업 툴이 얼마나 잘돼 있는데 ‘위에 계신 분’들은 상황마다 활용할 수 있는 각종 툴을 너무 몰라서 통화와 대면에 집착하는 것 같다는 툴툴거림도 나왔다.


사실 ‘위에 계신 분’과 ‘아래 계신 분’의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윗놈’ ‘아랫놈’이 아니라 ‘윗분’ ‘아랫분’이라는 점에서 어떻게든 상대방을 너무 비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좋아 보이기도 했다. 서로 더 친해지면 해결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랫분들이 통화를 싫어하는 까닭은 실수를 줄이고 불확실함에 따르는 감정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실제로도 꽤 편리한 텍스트 기반 협업 툴이 많이 나왔다. 텍스트는 느리지만 확실하고 분명하다. 윗분들이 통화를 선호하는 까닭은 업무 속도가 빠르고 현장 분위기와 감정, 맥락까지 생생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비언어적 요소들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다. 


장단점이 명확하니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할지 미리 터놓고 이야기해 원칙을 세워두기를 제안한다. 다만 그러려면 서로의 선의를 믿어야 하겠다. 윗분도 아랫분도 결국에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 각자 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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