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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주 Jul 13. 2021

모두의 아르바이트

부지런히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정자동 인근 레스토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보통 방학을 맞은 대학생은 별달리 하는 일이 없어 글감 난에 시달리기 마련인데, 아르바이트를 한 덕에 글 몇 편을 써낼 수 있게 되어 감지덕지다.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풀어내고픈 이야기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일이 역동적인 만큼 하루에도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글이 될 만한 건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좋은 건 하루의 패턴이 생긴다는 점과 월말에 일한 만큼 돈이 정직하게 찍힌다는 점뿐이니.


대여섯 번의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이토록 고용주에게 이쁨 받은 적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최고의 피고용인이 돼 보자는 다짐이 먹혀든 셈이다. (낮은 학점으로 잃은 자존감을 일 잘한다는 소리로 메꿔보려는 욕심이었다) 점장님께 이쁨 받기 위해 한 일은 이렇다. 우선 정해진 시각보다 일찍 출근했다. 왜 벌써 왔냐는 물음엔 버스가 일찍 왔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다. 내 할 일을 먼저 끝내고 다른 일을 도왔다. 메인 업무인 홀서빙을 할 땐 늘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했다. 나이프와 포크를 하나 갖다 주려고 동선을 이렇게 낭비해야 할까, 손님이 주문하는 메뉴를 효율적으로 적는 방법은 없을까, 전화 예약 시스템을 인터넷 예약으로 돌리면 좋을 텐데, 등등. 손님이 뜸해진 시간엔 알아서 할 일을 찾았다.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일머리가 없어(일이 처음인지라) 다행히 일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알아주지 않아 아쉬운 일은 넘쳤다. 열정! 열정! 열정!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고, 이곳의 정체(?)를 알수록 실망만 늘어갔다. 우선 매일 일찍 출근하니 당연하다는 듯 업무가 늘었다. 업무가 늘어난 탓에 어쩌다 준비가 늦어 제시간에 맞춰 출근할 때면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월급을 처음 받은 날에는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로시간을 분명 4시간으로 통보받았는데 중간에 30분이 휴게시간으로 잡혀 3시간 30분어치의 시급밖에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분명 쉬는 시간을 주긴 했지만 온전히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예약 전화를 받아야 했으며, 주방 잡일을 도와야 했다. 밀려드는 손님을 밀어내는 일도 내 몫이었다. 배신은 멈추지 않았다. 일주일 근로 시간을 고려했을 때 단 하루만 빠져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2주 연속 화요일마다 매장을 닫은 건 인건비를 아끼려는 치졸한 전략이 분명했다. 대표라는 사람의 인성도 큰 실망 거리 중 하나였는데, 한 여자 손님을 두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다가 지금이 정말 2021년이 맞는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겼다. 무거운 식기를 들고 1층과 2층을 바쁘게 뛰어다니다 생긴  틀림없었다. 꾀병으로 비칠 각오를 하고 점장님께 말씀드려 하루 일을 뺐다. 몸이 아프니 무얼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나 회의가 들었다. 그동안 해온 대로 요령껏 몸을 사리고, 부지런히 꾀를 부렸어야 했나. 어쩌면 최저시급은 최소노동을 전제로 책정한 값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모든 열정은 손해가 된다. 그렇다면 마치 군대에서 그랬듯, 욕을 먹더라도   지켜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 된다. 이미 내가 일하는 동안 3명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명은 뜨거운 물을 다리에 쏟아 화상을 입었는데, 정해진 근무 시간을 채우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 입원까지 해야 했다. 그날 하루를 위해 평생의 흉터를 남긴  투철한 직업 정신이 아닌 어리석음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만약 주방에 개인주의자가  명이라도 있었다면 사고가 참사로 번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일해본 , 요식업계는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기계 같았다. 모양과 크기는 다르지만, 하나를 빼면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부지런한 자기 방어가 요구되는 모두의 아르바이트다.

 

반년 정도 일을 하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은 방학 동안만 할 생각이다. 원래 일이 그런 거지. 막상 하면 쉬고 싶고, 그만두면 다시 하고 싶고. 그런데 이젠 나이도 많이 먹었다. 다음번 물욕이 솟을 때쯤엔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있을 테다. 그땐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엇에 실망하고, 무엇에 괴로워할까. 부딪혀보면 알겠지. 다만 내년이 가기 전에 '모두의 직장생활'이라는 글을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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