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의 민주주의 발인식을 바라보며
마지노선(Maginot Line)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벌어질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독불 접경 지역에 건설한 대규모 요새 지대다. 프랑스는 참호전을 중심으로 전개된 앞선 전쟁을 통해 방어선의 중요성을 배웠고, 막대한 돈을 들여 독일군도 난공불락이라 인정하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런데 막상 전쟁 중 요새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지나 아르덴 지역으로 밀고 들어오며 마지노선을 우회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는 의미로 '마지노선이 뚫렸다'고 말하는 건 엄밀히 말해 잘못됐다.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도 아닌, 영토를 보호하는 최전선이었다. 현 관용구의 쓰임에서 틀리지 않은 건, 오로지 그 중요성에 대한 함의뿐이다.
영리한 건 독일군만이 아니었다. 한국 최초 대학신문이자 102년 역사를 자랑하는 숭대시보가 얼마 전 숭실대로부터 일방적인 발행 중단을 통보받고 조기 종간했다. 숭실대 측은 예산이 부족해 발행을 중단하게 됐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밝혔다. 그들의 말이 어설픈 변명처럼 들린 건, 그들이 한 달 전 숭대시보의 기사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학생기자들을 전원 해임했다가 언론의 조명을 받자 철회한 전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면돌파가 안 되니 우회하는 전략을 택했다. 예산 문제는 대학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학생들이 알아내고 대처할 방법이 없다. 학생단체의 약점, 아르덴이다. 서울권 학보사들은 결의서를 채택하는 등 반발했으나, 이미 대부분의 학보사가 올해 일정을 마친 뒤라 힘이 떨어졌다. 그들은 영리했다.
숭실대 총장과 그 직원들이 숭대시보를 대하는 방식에서 대학 언론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들은 숭대시보가 대학의 홍보지가 되길 바랐다. 학보사의 주간은 편집국장을 압박해 1면 사진을 숭실대 탄압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피켓 시위에서 논술을 보고 구름처럼 나오는 학생들의 사진으로 바꾸게 했다. 앞서 학생기자들을 모두 해임한 이유도 학교의 명예와 위신을 망쳤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그들은 학내언론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통제 대상으로만 바라봤다. 총장은 숭대시보를 엉터리라 매도하고, '(한때 학보사 편집국장이었던) 조주빈을 악마로 키운 건 대학이 그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학생기자들을 싸잡아 폄하했다. 사태의 전말을 듣는데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그러한 인식은 학보사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었다.
대학 언론은 많은 대학에게 '눈엣가시'인 존재다. 그럼에도 어느 대학에서도 학보를 폐간하지 않는 건 대학 언론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처럼, 언론은 그 자체만으로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방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숭실 민주주의 발인식'이 숭대시보 발행 중단 직후 진행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학생들은 휴대폰 라이트를 들어 사라진 민주주의를 추모했다. 학생회관 앞에는 학생자치를 기리는 임시분향소가 세워졌다. 그 모습을 보다 문득 애초에 대학 내 민주주의는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다수는 무관심하고 나머지 의견은 묵살되는 이곳에 민주주의가 있긴 했을까. 프랑스는 어리석게도 마지노선을 지키는 데만 열중하다가 본토를 잃었다. 대학 언론도 정작 중요한 명분은 잃고 의미 없는 전투만 해온 건 아닐까.
숭대시보 사태는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지면 발행을 멈춘 학보사가 늘고 있다. 전면 온라인 전환을 결단한 학보사가 다섯 군데가 넘었다는 풍문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생존 전략을 꾀하는 모습으로 볼 여지도 있으나, 내 생각은 반대다. 물성을 포기하는 순간 언론사의 지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면의 비가역성에 반해, 온라인 기사는 언제든 수정 또는 삭제할 수 있다. 대학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인력난도 심각한 상황이다. 얼마 전 편집국장들과의 술자리에서, 사람이 부족해 수습기자 생활을 마치고 곧장 국장을 맡았다는 마냥 웃지 못할 푸념도 들었다. 이렇게 대학 언론은 명분과 위상, 능력을 모두 잃고 있다. 이에 학생자치는 더 완전한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 많은 발인식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