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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17. 2021

소설<알쏭당>

지난여름


한낮에는 미칠 듯이 무덥다가 밤이 되면 작은 바람에도 시원해지는 여름을 좋아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왔다고 계절이 바뀌지는 않을 텐데 여름밤의 공기는 신기하게도 한낮의 열기를 금세 식혀주고 시원한 느낌마저 준다. 밤공기가 살갗을 살랑살랑 스치고 지나가면 미세한 촉감의 변화가 일어나고 강렬한 태양 아래 하루 종일 눈을 찡그리다 밤이 찾아오면 잔뜩 힘주고 있던 미간에 힘이 풀려 편안해지기 때문이겠지.

조용한 여름밤을 메우는 규칙적인 매미 울음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너무도 규칙적인 매미 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앓고 있는 이명처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원래 계속 울려 퍼졌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귓가에 맴돈다. 밤이 내려와  여기저기서 "맴", "맴"소리가 들리면 , 한낮에 뭐 그리 특별하게 한 일도 없으면서, 갑자기 차분해지며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듯하다. 그야말로 유유자적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단 말이지. 생각을 했었다. 아니 의심을 해보았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여름밤의 평안함은 한낮의 전쟁 같은 더위와 함께 상대적으로 따라오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 말이다. 그렇다고 여름의 무더위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지 무더운 한낮의 끈적끈적한 습기와 열기를 좋아한다. 여름에 태어난 이유가 어떤 과학적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항상 여름이라는 계절을 기다리고, 지나가면  아쉬워했다.

그래도 여름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다 수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도시에서의 실내수영과 바다수영은 엄연한 차이가 있지 않은가.  도시에 사는 사람은 , 수영 그 자체에 집중하면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바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론가 떠나야 하기 때문 일거다. 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짧은 여정일 수도 있겠지만 바다 수영을 하기 위해선 무조건 바다를 끼고 있는 백사장을 만나야 한다. 백사장의 뜨거움과 바닷물의 차가움은 한 여름의 극단적인 부분을 닮았다. 뜨거운 백사장에 누워 있다가 시원한 바닷물로 뛰어들면 마치 여름밤 공기가 그랬듯 더위를 잊을 수 있었고 때론 물놀이에 지쳐 백사장 한가운데 드러누워 잠시 눈을 감으면 거짓말처럼 피로가 사라졌다. 그렇게 한동안 차가워진 몸을 뜨거운 백사장 모래들이 다시 달구어 놓으면 진정 여름을 즐기고 있다는 만족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작년, 제주도에서 바다 수영을 한 이후로 더 이상 다른 지역에서 수영을 할 수 없었다. 에메랄드 빛을 뛴 바닷물 자체가 깨끗하고 아름답기도 했지만 바다 특유의 짠맛이 기분 좋게 적당해서 어쩌다 마시는 바닷물을 도로 내뱉지 않아도 됐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믿기 어렵겠지만 제주 바다는 여타 다른 바다들과 다르게 포근한 느낌이 있다. 군데군데 어디에나 자리 잡고 있는 검은 현무암들이 제주바다의 따뜻함을 만드는데 한몫하기도 하고, 그에 대비되는 바다 색깔 때문이겠지만, 제주 바다 한가운데 동동 떠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꼈다. 무엇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히 해방된 자유로움. 아마도 그런 감정은 작년 제주로 여행을 가게 된 이유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항암치료가 끝나자마자 제주로 떠났으니 제주가 아니었어도 어디에서든 그런 해방감을 느꼈을 거다. 돌아보면 병치레라는 것은 체념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 순간의 연속이었다. 뱃속에서 커져버린, 그것이 단순한 혹이길 바랬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 요즘 같은 최첨단 시대에, 간단하게 로봇수술을 해서 빠른 회복을 원했지만 이조차도 여의치 않아 배 한가운데를 갈라야 했으며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는 내심 피하고 싶었지만 반년 동안, 한 달에 두 번 꼬박 3박 4일, 을 가슴 한 편에 항암제를 꽂아야 했다. 단 한 번도 내 희망을 따라간 적이 없어서 하늘을 원망한 적도 있지만 , 그것은 잠시뿐, 조금 전까지 서로 농담을 주고받던 중년의 환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마치 정육점에서 돼지비계 살을 뒤집듯이 간호조무사들에 의해 들리고 있을 때는 살아있는 현실에 감사해야 했다. 마흔이 체 안 되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다는 사실, 손가락을 쭉 뻗어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닿을 정도의 거리만큼 배를 갈라야 한다는 사실과 손가락 한 뼘이 딱 20센티가 된다는 사실도, 그리고 생명 같은 아니 내 몸안의 생명인 장기가 무참히 잘려나간다는 사실, 그러나 그 어떤 무엇보다 병실 창문을 통해 내리쬐는 여름날의 강렬한 태양빛을 받으며 이렇게 찬란한 여름을 병원 배드에 누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비참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여름 날을 이렇게 초라한 환자복을 입고 보내는 게 암담해서였을까, 항암제를 꼽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면 항상 꿈자리를 채우는 건 영실과의 황홀한 잠자리와 어느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싣고 팔을 저어 나아가는 내 모습이었다. 꿈은 신기하게도 지금 내가 갖지 못하는 것과 갖고 싶은 것을 번갈아 보여 주었다. 어쩌면 갖지 못해서 더 간절하게 원하는 것 일 수 있었다.  영실이 꿈에 나타나면 염치없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한테 잘못해서 암에 걸린 거 같아.."


역사에 기록될 만한 2018년 여름의 폭염이 한창 인 8월에 만난 영실은 다행히도 계절 중에 여름을 제일 좋아했고 찢어진 핫팬츠가 너무도 잘 어울렸으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싫어할 정도로 여름과 잘 어울렸다. 그녀 역시 여름을 좋아했고 그중에도 여름밤을 사랑해서 밤이 늦도록 명동거리를 싸돌아 다녔고 종로 낙원상가의 허름한 골목길을 거닐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손을 잡고 모텔로 들어갔다. 그동안 만났던 이성들과 여름에 주로 다퉜던 이유가 에어컨 바람 때문인걸 상기하면 우린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다. 열대야로 모두가 덥다고 아우성치는 한 여름밤에 우리는 좁은 모텔방에서 창문만 열어둔 체 서로의 몸을 탐닉했다. 핫팬츠와 끈 나시티는 여름이라서 더 매력적이고 더 효율적이었다. 벗는다는 행위조차 무색할 만큼 헐벗은 우리는 전희 따위는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달아 올라 있었고 사정을 해야 할 여러 번의 순간들을 끝끝내 참아내고 비로소 그녀의 입에 외마디 탄식을 품고 뱉어냈다. 그녀의 몸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만큼, 사정을 하면 떨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참고 참아내야 했다. 사정의 순간보다, 그녀와 몸을 섞는 그 자체가 좋은, 그래서 더 오래 하고 싶은 궁극의 관계였다. 그동안 수많은 인연이 스쳐 갔지만 그녀만큼 궁극적인 관계는 없었다. 그건 섹스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그녀도 나처럼 재즈를 좋아했고 여름을 사랑했고 상대에게 원하던 성적인 판타지를 각자 가지고 있었다. 아, 결론적으로 섹스였구나, 그놈의 섹스.

그녀를 처음 봤을 때를, 굳이 말로 설명하자면, 우연히 들른 카페의 구석 책장에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친구들은 병원 생활이 지겨울 거라고 병문안을 올 때마다 몇 권의 책들을 갖다 주었으나 결국  끝까지 빠져 읽을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이었다.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지루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치료가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걸까. 만나는 사람이 있냐는 유도 질문에 영실은 즉답을 피하고 차도를 물으며 에둘러 피해 갔다.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시간이란 병을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이었다. 바깥의 시간은 관심도 없고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지만 영실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을 거라는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시간을 계산하게 만들었다. 그녀와 헤어지고도 벌써 1년이 다되어가고 있으니 새 남자 친구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암제를 새로 꼽는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난여름에 무얼 하고 있었나요?"

영실과 나는 이태원 역에서 한참을 내려와 이태원동과 보광동의 사이 언저리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땀으로 흠뻑 젖은 서로의 옷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었다. 첫 만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는 것과 같은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영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늘어놓았다.

"혼자 바이크를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어요~"

문득, 홀로 바이크를 타고 해안도로 위를 달리는 영실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세어 나왔다. 보통의 여성보다 아담하고 가녀린 몸, 짙는 눈썹과 크고 검은 동공을 유난히 돋보이게 하는 하얀 피부는 안아 주고 싶을 만큼 보호본능을 일으켰지만 각진 턱에서 풍기는 묘한 결기는 홀로 바이크를 타고 제주를 한 바퀴 돌고 도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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