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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17. 2021

소설<알쏭당>

지난여름


그때부터였을까, 제주도를 좋아 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이유가, 솔직히 말하면 영실이 신이 나서 말한 제주도 여행기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론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면 느꼈던 설렘, 이태원역에서 카페까지 찾아갔던 경로, 약간 물이 빠진 듯 푸른 계열의 청바지와 붉은색 로고가 있었던 흰색 면티를 입고 헐레벌떡 카페로 들어왔던 영실의 모습은 아주 뚜렷이(선명히) 기억이 난다. 난 영실의 얇고 다부지게 다문 입술이 열리는 동안 제주도가 아니라 영실의 눈빛에 빠져 들었다. 유난히 검은 동공과 곧고 탄탄한 숱 많은 속눈썹 때문인지 몰라도 영실의 눈동자를 계속 바라보며 속으로 경탄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모든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 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다, 아 여기는 들어가 줘야 해~라고 생각이 들어서

바이크를 세우고 옷을 벗고 들어갔죠"

갑자기 카페에서 영실이 들려준 제주 여행기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영실이가 제주 여행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몸을 담갔던 곳, 바이크를 내팽개치고 뛰어들었던 바다가 궁금해졌다.

"평대 해변이야~근데 몸은 좀 어때?"

아, 맞다, 평대 해변. 영실은 언제나처럼 문자를 보낸 사실을 잊을 때쯤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도 답장을 보내주고 안부를 궁금해주는 게 어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제주여행 때는 그녀의 제주 여행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만나는 동안에도 자세히 묻지 않았으니깐. 눈빛을 반짝거리며 신이 나서 말하던 영실의 손짓과 행복해하던 표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녀를 진정 사랑했을까. 아니 적어도 좋아하긴 한 걸까? 

공교롭게도 사귈때 보다 병원 배드에 누워 더 많이 그녈 생각하고 있었다.



사귄 지 막 일 년이 지나고 영실이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한다고 했을 때  내심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영실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불편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 기대와 달리 영실은 고양이를 입양했고 진짜 자식처럼 양육한다고 할 정도로 사랑을 듬뿍 줬다. 여자들의 모성본능이란, 타고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가족, 몽이를 받아들여야 했다. 몽이, 영실의 고양이, 난 왜 아직도 녀석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녀석과 처음 같이 잤던 그 밤이 떠올랐다. 아니 녀석과 처음 밤을 지새운 그날 말이다. 처음 녀석을 봤을 때 그러니깐 고양이라는 동물을 그렇게 가깝게 본적이 처음이었으니깐, 이건 뭐 강아지처럼 안기는 면도 없고 몸집만 작았지, 사파리의 푸마 마냥 그래, 가까이서 보니 매서운 눈빛과 두툼하게 내려오는 콧날은 꼭 사자 같았다.

"괜찮아~어서 자, 안 잡아먹어"

영실은 눕자마자 곯아떨어졌고  침대 바로 옆 창가 선반 위에 몽이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말이 예의 주시지, 어두운 방안에서도 빛날 만큼 날카로운 눈빛을 내리 쏘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스르륵 눈을 감으면 녀석이 의도치 않게 단번에 점프해 침대로 뛰어내리면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굴을 할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 성기! 내 성기, 아까 영실과의 섹스를 냉장고 위에서 지켜보던 녀석은 내심 나에게 질투를 느끼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몽이가 침대에서 우리의 몸이 섞이는 광경을 보고 성교라는 걸 눈치챘을까.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잠을 쉽게 못 이루고 있었고 녀석의 눈이 나의 성기 방향으로 쓰윽하고 움직이는 걸 눈치챘다. 밤새 성기를 손으로 막고 잘들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었다. 양 손으로 성기를 감싼 체,


선반을 박차고 뛰어올라 나를 잡아먹을 듯 하강하는 검은 그림자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몽이는 다행스럽게도 사뿐히 내 가슴에 착지했고 깜짝 놀란 나는 폴더폰이 반으로 접히듯 상체를 튕겨 일어났다. 영실은 그런 일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놀란 내 상체를 눕히고 잠들었다.

몽이는 십 평도 체 안 되는 좁은 원룸을 운동장 삼아 잘도 놀았다. 작은 그림자에도 무섭도록 집중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사라져  눈을 씻고 쥐 잡듯이 사방팔방을 찾아다니면 예상치도 못한 공간에서 우아하게 걸어 나왔다. 요놈 봐라, 자꾸 볼수록 묘하다고 해야 하나. 개처럼 크게 짖지도 않고 사람을 잘 따르진 않지만 이상하게 빨려 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방문 이후로  어느 날 몽이는 내 종아리에  스윽하고 자신의  적색 털을 비비고 지나갔다.

"드디어 간택당하셨네요~"

영실은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실로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어찌 보면 연애 초반 영실에게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할 만큼 말이다. 하. 그때부터 몽이는 수시로 자신의 몸을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윽하고 비비고 지나갔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관문은 침대에서의 몽이 잠자리 위치였다. 우리가 잠이 들 때는 항상 캣타워나 어디 구석에 숨어 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영실의 머리맡에 몸을 한없이 구부린 체 잠들어 있었다.

" 아무리 친해졌다 해도 절대 오빠 옆에서 잠들지 않을 거야"     

아침마다 머리맡에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몽이를 확인하다, 고양이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정말로 여기서 잠이나 제대로 잤을까 싶은 내 베개 옆 아주 작은 공간에서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몽이를 확인하는 하는 날이 왔을 때쯤 영실과 이별했다. 일방적인 통보라고 하는 말이 맞겠다. 그녀는 애썼으니깐.

"오빠, 우리 얘기 좀 해"

이 놈의 눈치, 이런 싸한 느낌은 단 한 번도 예상을 빗나간 적이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영실에게 궁금한 것도 설레는 것도 없다는 걸, 하지만 영실은 참 오래도 버텨주었다. 그녀의 각진 턱은 결기라기 보단 인내심이었다. "그래, 섹스라도 실컷 하자"라고 모든 걸 단념한듯 말했을 때도  "너 나 안 좋아하지?"

라고 버럭 화를 냈을 때도 애써 우리 둘의 문제를 외면했었다. 아니 엄연한 내 문제였다.

만약 누군가  아프기 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꼽으라고 묻는 다면 영실과의 마지막 날일 것이다.

"진심으로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더 좋아하고 싶은데 오빠는 항상.."

영실은 침대 한편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는 것조차 괴로운 나머지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을 한없이 쳐다봤다. 영실은 아직도 나를 많이 좋아했고 정서적으로 더 깊은 교감을 원했다.

다만 나의 온도만 식은 것뿐이었다.

"사랑을 뭐라고 생각해?"

언젠가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영실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구원이야,"

라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었다. 마지막 "나에게는.."는 말하지 않았지만, 영실에게 사랑은 구원이라는 조금은 추상적이고 무거운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 영혼은 행위라고 했건만 난 그런 그녀를 감싸주지 못하고 회피했었다. 그게 편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 헤어질 때가 왔군'

영실의 울먹이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구구절절 맞는 말이어서 무어라 대꾸할 말도 없었다. 정말 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어서 이 불편한 상황을, 어색한 침묵만이 감도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담에 얘기하자, 낼 전화할게, 라는 말로 마무리 짓기엔 너무 많이 돌아온 게 사실이었다. 오늘은 내가 끝내야 했다.

"이제 그만 만나자"

헤어지자는 말보다 어려운 건 그동안 갖다 두었던 짐을 챙겨 나오는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을 어서 벗어나고 싶다고 짐 몇 개를 두고 간다면 이별 끝의 과정이 순탄치 못할 테니깐. 좀 더 집중을 해서 빠진 게 없는지 찬찬히 돌아봐야 했다.

참 웃기는 일인데, 이별을 통보하고 그녀의 집을 나서는데, 문앞에서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내린 눈은 몽이의 눈과 마주쳤는데.. 와.. 거기서 눈물이 날뻔했다. 몽이의 눈을 쳐다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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