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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Oct 18. 2021

소설<알쏭당>

산책


실개천 위를 이리저리 유영하는 청둥오리 가족의 뒤를 밟다 보면 풀어헤쳐진 갈대와 쓰러지고 휘어진 나무들을 품어 안은 서남쪽 한강 자락을 만나게 된다. 차로 10분 거리에 한강을 화려하게 가르는 올림픽 대교가 나오지만 남쪽 한강 자락의 전경은 그보다 자연적이고 강 건너편에는 아파트 건물 대신 옹기종기 작은 상점들과 카페의 간판 네온사인 정도가 들어 올 정도로 소박하다. 그리고 한강을 가르는 딱 2차선 정도의 예스러운 다리가 머릴 위를 지나는데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고 시골에 온 거 같은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긴 한숨으로 한강 전경을 눈에 담은 후 강자 락을 따라 서울방향으로 난 산책코스를 거닐다 힘이 들면 다시 왔던 방향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조용한 야밤에 빛나는 물결들의 수다를 들으며 걷는 산책길은 너무나 큰 호사였다. 오후에 일과가 없으면 점심을 먹고 산책 겸, 오후에 건너뛰면 매일 밤 나가 산책을 했다. 이 동네에 이사 온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는데 이렇게 좋은 산책 코스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개천을 따라 열심히 걷는 동네 어른들을 창가에서 보게 되면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었다.

 '나도 언젠가는 살기 위해 운동하는 날이 오겠지'

사람의 입장이 바뀌는 건 하루아침이었다.


그런 날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걸까, 항암 치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이틀 정도 꼼짝없이 누워 있다 걸을 정도의 힘이 생기면 신발 끈을 고쳐 메고 나갔다. 공원의 시작은 철봉과 각종 운동기구들이 즐비한 작은 광장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면 추운 가을 날씨에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몸 자랑을 하는 노년의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작은 정자 안에서 커피잔을 기울이는 중년의 여성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세 갈래로 나눠지는 산책길의 시작점일 뿐이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한강을 볼 수 있는 기다랗게 이어진 왕복 차선의 자전거 길과 강 사이에는 무성한 나무 숲과 수풀들이 야생을 방불케 할 정도로 험해 보였다. 길을 걷다 벤치에 앉아 빈틈없이 난 수풀들 위로 마음대로 뻗은 거친 나무들을 보며 항암 치료의 고됨을 잊을 수 있었다. 힘차게 물아래 다리를 뻗고 있는 팔당대교를 따라 올라가면 예봉산의 자태도 함께 볼 수 있어 좋았다. 밤이 되면 다리 위로 촛불 같은 등불이 수놓았고 강의 흐름을 따라 도착한 댐은 머리 위로 붉은 노을을 덮고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나무들의 이름은 제각각이었고 모양도 표정도 다 달랐다. 앞머리를 얼굴까지 덮은 버드나무는 항상 무언가 숨기는 내 모습 같았고 뾰족한 나뭇잎을 가진 화살나무는 상처 받기 싫은 내 마음 같았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길은 강에서 제일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도심의 도로와는 맞닿아 있었다. 그 길에 들어서서 줄지어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바라보면 오랫동안 끊질기게 살아남은 그들의 생명력에 남몰래 경탄하곤 했다.  

그리고 브이 자를 그리며 하늘을 매일 수놓는 새떼는 치료가 끝나는 대로 어디든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산책은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외롭지 않았다. 자연은 그대로인 듯하여도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였고 언제든지 걸어 나가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무어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다.


주황색 오리발로 뒤뚱뒤뚱 걷다가 물에 다가서자 어떠한 마찰도 없이 물에 휩쓸리듯 안착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쭉 물을 치고 나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바람에 따라 출렁이고 흔들려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강물의 모양은 마치 여러 산맥들이 둥둥 떠 있는 듯 아름다웠으며 예봉산 자락을 가끔씩 뒤덮는 정체 모를 그림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여름이면 푸르고 울창한 숲과 수풀이 강과 도심의 경계를 만들었고 가을이면 갈대와 억새풀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겨울이 되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듯 내리면, 어린 시절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뛰쳐나와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무작정 공원으로 향했고 걷다 뒤돌아 보면 텅 빈  공원에 내 발자국만 덩그러니 남았다. 병치레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남는 건 시간이었고 산책을 하다 힘들면 중간엔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자연을 바라볼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부지런히 페달을 돌리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쌩한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워낙 빨라 마주할 시간도 없이 휑하고 지나갔다.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자전거의 페달처럼 계속 분주하게 돌고 있었겠지. 한가로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것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흐릿하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문제들이 새의 날갯짓처럼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 건 산책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것이 정답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뿌연 안개가 뒤덮여 바로 앞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도로에서 너무도 당연한 듯 태연한 척 운전을 한 지난날이었다. 무언가 길을 잘못 들어 선 줄 알면서도 차선을 이미 넘어 위험천만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운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몸이 건강하지 않고 힘이 없으니 예전의 정욕이 일어나지 않아서 아닐까.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고 정신은 오히려 예전보다 또렷해졌다.

사람을 힘들게 하고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사는 이유는 그놈의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왜 아프고 나서야 지난날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지는 어쩌면 당연했다. 육체가 건강하면 그것을 소비하기 빠쁘기 때문 일 거다. 다양하고 수많은 온갖 소비재로 채워진 세상이니깐.

청둥오리 떼가 강물을 나아가면 만드는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걷다 돌아본 발자국을 보며 앞으로의 미래보다 지나왔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러면 암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의 나의 미래보다 지나왔던 과거가 궁금해졌다. 그러면 암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흐릿하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문제들이 새의 날갯짓처럼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한 건 산책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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