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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20. 2021

소설<알쏭당>

냄새

아버지가 거실에 쭈그려 앉아 발톱을 깎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올라 시계추는 열두시를 가리켰지만 그는 출근을 할 생각이 없는 듯 엉덩이가 무거워 보였다. 방에서 차마 거실로 나가지 못한 건 아버지의 등 뒤로 느껴지던 어떤 기운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쭈그려 앉아 발톱을 깎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실직은 당시 온 나라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충격에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공평한 불행은 아니었다. 방문을 열고 화장실을 가려 거실로 나오면 아버지는 뒤돌아 나를 봤다. 그 눈빛은 체념의 눈빛도 상실의 눈빛도 아니었다. 지난 20여 년의 지난했던 직장생활을 하루아침에 끝내고 찾아온 여유로운 아침이라는 일상과 달콤한 휴식을 조금이라도 느낄만한데 그의 표정은 오히려 화가 나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이미 일에 익숙할 때로 익숙해져 늦은 퇴근이 일상이 되어버린 남자였다. 일은 그의 전부였고 삶의 이유였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슬퍼하고 상실감을 몸으로 드러낼 여유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는 성실한 전후 세대의 한 사람이었다. 발톱을 깎는 건지 제 살을 깎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날이 선 그의 눈빛을 피하려 집을 나와 호중의 집으로 나섰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눈은 말을 하고 있었다. " 대학도 못 간 형편없는 놈" 그가 국가적 재앙으로 실직을 하지 않았어도 날 그렇게 경멸스럽게 쳐다보았을까, 하지만 어떤 명확한 근거 없이 그의 눈빛에서 그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몸과 열정을 바쳐 제 몸같이 소중히 생각했던 회사로부터 버림받은 것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탓하고 있는 거라고. 

언제부터인가 집안 분위기가 살벌해지면 호중의 집으로 피신을 갔다. 다툼이 싫은 게 아니라 다툴 때 나는 금속의 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무척이나 괴로웠다.  어떤 조짐이라도 오고 난 후의 몰락은 마음의 준비라도 할 시간이라도 주어줬을 텐데 지금의 난리는 등 뒤에서 칼을 내리 꼽을 만큼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친 범죄였다.

엄마는 나와 친하지도 않은 동급생의 엄마와 더 가깝게 지낼 만큼 사교성이 좋았다. 그리고 볼링, 노래, 수영 등 무엇이든 하기 시작하면 금방 배우고 금세 적응을 했던 그녀는 여러 모임에 참여했고 , 전화통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어느 모임이든 변두리에 앉아 상황을 관조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한동안 그녀는 남편에게 들을 수 없는 모진 질문과 변하지 않을 상황을 탓하며 괴로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 의사, 변호사, 회계사, 사업가.. 등등 지들이 아무리 잘 나가는 남편이랑 산다고 한들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내 눈에는 다 똑같어~ 너도 절대 어디 가서 잘난 놈 앞에서 꿀리지 마라~ 너 정석이 엄마가 날 왜 좋아하는지 아니? 당당해서 좋데~" 프레스토~! 악보에서 매우 빠르게라고 말하지만, 그와는 상반된 너무도 느린 성격의 아버지는 동네에서는 아무도 타지 않는 철 지난 프레스토를 고집스럽게 유지했고 너무도 오래돼서 그래서 눈에 잘 띄는 프레스토가 나타나면 의심할 여지없이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는 신호였다. 그녀는 골동품 같은 차를 타고 모임에 가서 중심을 차지할 만큼의 높은 자존감의 소유자였다. 자존감, 그런데 당시에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이 단어는 어쩌면 새로운 세월 속에 깜짝 등장한 새로운 단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생소한, 그녀는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 사람은 자존심이 있어야 해,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그래, 그녀는 그것을 자존심이라고 표현했더랬다.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 한때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굳이 자존심을 시험하는 그런 모임에 굳이 나가려고 하는지 말이다. 이런 말을 간혹 하면 그녀는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패배주의에 젖어 있냐고, 어쩌면 나는 그녀가 원하는 아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막 화려한 축제를 두 번이나 거하게 치르고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욕망을 소비할 수 있는 80년대를 겪은 그녀는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나아갈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깐, 그리고 희망은 축제를 밝히며 잠실 종합운동장 상공으로 날아갔던 비둘기처럼 송두리째 날아갔다. 누구의 탓도 아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국가적 재앙이었다. 규호와 내가 상주 버스 터미널에서 보았던 기업이 무너지는 광경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뉴스에서는 단지 부도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기업들의 몰락은 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로 이룩한 것일 텐데 뉴스 앵커는 단 몇 분 안에 그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뒷모습을 자세히 전하는 뉴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호중의 집은 늘 어두웠다. 예전보다 유독 어두워진 우리 집의 분위기를 감내할 순 없었지만 호중의 집은 좀 더 편했다. 늘 어두웠기 때문이다. 어둠은 구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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