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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목 Dec 21. 2021

소설<알쏭당>

냄새

조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친구 집을 가도 입주할 때의 전등을 그대로 걸어 놓은 경우는 없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또는 실속 있고 모던한 형광등으로, 베란다라고 불리는 잉여 공간 또한 쓸데없다고, 거실로 확장하는 공사는 빈번했다. 호중의 집은 완전히 안 꾸미지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손이 탄 아름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칙칙하고 어두운 계열의 가구 때문일 수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아들의 친구라고 호중의 집을  우연히 방문한 엄마는 어둡고 칙칙한 집을 한번 둘러보고는, 나중에 한 말이지만, 아연실색했다고 했다. 집을 예쁘게 꾸미기를 좋아하고 비싼 가구도 요령 있게 제 값보다 싸게 구입하는 엄마의 손 때문인지 우리 집은 나름의 격조가 있었다. 매우 효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녀만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호중의 집을 둘러보고 놀란 이유는 경제력과 지위에 맞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름 아닌 대화 도중 소파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햄스터 때문이었다. 미리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워낙 작은 녀석이라, 발을 헛 딛어 소파에서 미끄러져 엄마의 뒷덜미로 떨어지자 그녀는 찻잔을 떨어뜨리며 기겁을 했다. 비명소리가 어찌나 큰지 햄스터도 깜짝 놀라 더 이상 우리 근처로 다가오지 못했다. 호중의 집에는 애완용 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막 갓난아이 티를 벗은 작고 귀여운 000이었다. 이름은 엄지였다. 무슨 연유로 이름을 엄지로 지었는지 호중에게 물었을 때 그제야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는 골똘한 표정으로 엄지를 길게 쭉 빼며 "어, 이거, 엄지!"라고 말했다. 유달리 개를 무서워하는 엄마를 위해 엄지는 호중의 방안에 잠시 감금되어 있었다. 불과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을 어머니들은 차를 마셨을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영 대화의 결이 중첩되지 않고 겉도는 걸 느낄 정도였다.

"네가 호중이랑 친해진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난 개네 집에 가서 좀 놀랐다, 집은 사람 따라가고, 사람은 집 분위기 따라가는 거야~너무 어두운 애랑은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그녀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호중은 긍정적이고 밝은 친구는 아니었다. 그의 방은 항상 스탠드 불 하나에 의지하고 있었고 가끔씩 내가 형광등을 켜면 어두운 게 좋다고 스위치를 끌 정도였으니깐. 아마도 사람이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여러 가지의 이유를 떠나, 그 시절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빛과 어둠, 가진 것과 못 가진 것, 욕망하는 것과 피하고 싶은 욕망의 실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깜쪽같이 숨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 같았다. 내가 처음 호중을 만났을 때는 어둠을 드러내기엔 너무도 순백의 어린 시절이었다. 13살이 채 되기도 전에 낯빛이 어둡다면 심각하게 조숙한 아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호중은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호중이 어두운 우울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중은 후천적으로 우울이 생겼다고 보기에는 성격이 단순했고 우울을 더욱 부채질하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라기보다 예민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공격성 정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호중의 집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닥쳤을 것 같은 IMF 한파의 추위도 덜 했다. 명절 때마다 온갖 종류의 선물세트가 집 앞 한가득했고 기술직에서 최고의 자격증을 갖고 있던 호중의 아버지는 경제 위기 이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S.O.C정책으로 더 바빠진 것 같았다. 집에서 피신을 하면 호중의 어두운 방구석에서 비디오를 보거나 음악을 들었다. 호중은 당시 내가 숨고 싶던 더할 나위 없는 어둠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고 가끔은 호사스러운 야식도 마음껏 먹었다. 호중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느새 자신보다 훌쩍 큰 날 올려다 보며 "너의 키의 지분이 나에게도 있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당시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호중의 아버지도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는데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날 집에서 마주칠 때면 규호의 아버지에게서 어떤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업가는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떤 두려움도 떨쳐내야 하는 전사라면, 기술자로서 임원의 지위까지 오른 그는 정교하고 철두철미한 작업으로 세계에서 살아남아 결국 전사의 자리에 오른 남자였다. 가끔 뉴스를 보다 "어~어~ 저거 아빠가 설계한 거야~"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내심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 

강 사이로 떨어져 있는 땅과 땅을 잇는 거대한 다리, 끊어져 있는 도로 위로 새로운 길을 내는 고가도로, 버려진 땅을 새로 간척하는 대규모 토목공사, 호중의 아버지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말 그대로 창조자였다. 쉽사리 남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했던 호중이지만 아버지가 이룩한 것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그것도 지방 대학에서 수석으로 졸업하고 당시에는 내로라하는 서울의 명문대생들도 감히 따기 힘든 기술사 자격증을 가장 이른 나이에...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가져다 놓고 퇴근하면 밤새 공부하셨대.."

어디선가 익히 들었던 서사였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여의시고 가난한 초가집에서 7형제가 한방에서 자란 어린 시절, 형제들이 갖고 있지 않은 학구열과 성실함으로 유일하게 야간 대학교에 진학, 낮에는 우체국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면 학교로, 어느덧 학교에서 코피를 흘리는 일이...

정말로 어디서 들 모여서 짠 듯 너무도 비슷한 서사구조는 거슬러 올라가면 몸통이 하나일 수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묘하게 비슷했다. 

렌즈가 두꺼운 안경을 걸친 그가 집으로 돌아오면 조금 전까지 작지만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던 희미한 밝음 하나도 이내 사라졌다. 호중도 갑자기 차분해지고 자세가 달라졌다. 눈치가 빠른 나는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직감하고 어김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단번에 공기를 바꿀 만큼 그의 분위기는 남달랐다. 규호의 아버지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이었다. 그는 단지 아들의 친구가 집을 나선다고 인사를 해서 바라봤을 뿐인데 오장육부를 관통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두꺼운 렌즈를 뚫고 나올 기세 등등하지만 피곤에 찌든 눈빛이었다. 어두운 밤을 홀로 밝히는 달빛이 매섭지 않으면 세상은 어둠 천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호중은 인정하기 싫어했지만 밤의 달빛을 좋아했다. 아마도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내가 호중의 어둠에 익숙해지듯 호중도 아비의 달빛에 자신도 모르게 스며 들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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