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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Dec 11. 2023

감정(感情)의 날(鋒)

기억에 남는 한 마디   

기안 84는 좋아하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성공한 연예인이자 웹툰 작가이지만, 그는 늘 변함이 없다.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인간미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답게 행동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나 혼자 산다>에서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항상 감정이 무뎌지는 게 무섭다 생각했는데,

바이크를 타면 무딘 게 없어요. 날이 조금씩 서더라고. 감정의 날이.”

<나 혼자 산다, 기안 84 say>


이 말을 들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


감정의 날’



나이를 먹을수록 감정은 무뎌진다.

기쁨, 슬픔, 분노를 그저 큰 덩어리로 느낄 뿐, 세밀한 감정은 옅어졌다.

무언가 격하게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사라진다.

삶은 점점 팍팍하고 지루한데, 애써 돌파구를 찾는 노력 조차 하지 않는 아이러니.


‘이런 게 나이 먹는 건가’


왠지 허무하고 쓸쓸했다. 신체적 노화로도 부족해서 정서적 노화까지 따라올 줄이야.

‘세월이 야속하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 가사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무뎌지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대도, 바람도, 욕심도 그만큼 적어지니 실망도, 상처도 자연히 줄어든다.

예전처럼 감정이 요동치거나, 격변하는 일 없이 잔잔하고 평온한 날들이 꽤 많다.

+가 줄어들면, -도 줄어드니 나름 공평하다고 해야 하나.

딱 그만큼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늘 하던 일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늘 익숙한 것만 보고 있지 않은가?

실패하기 싫어 늘 먹는 음식만 먹고, 가던 곳만 가지는 않는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인가?


쳇바퀴 도는 일상에 갇혀 있다고 하지만,


그 쳇바퀴를 만든 건 정작 내가 아닌가?


“서점에 가서 늘 가던 카테고리 말고,

전혀 관심이 없던 카테고리로 가서 책을 한 권 집어 보라.” 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겁은 많아지고, 실패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새로운 시도는 점점 멀어진다.

실패해도 상관없는 영역 안에서, 리스크가 전혀 없는 소소한 시도 정도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일상의 사소한 새로움의 시도는 '감정의 날'이 조금은 날카로울 수 있게,

잊고 있던 욕구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좋은 도구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의 날은 무뎌져, 종이 한 장도 자르지 못할 정도가 돼 있었다.

비록 낡고 무뎌졌지만, 조금씩 갈다 보면 예전만큼은 못하더라도 빛은 나겠지.


나름 손 때 묻은 내 '감정의 날'이니 정감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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