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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Jun 12. 2024

산책길에 만난 잡초

일상 속 짧은 파편

휴일. 아침을 먹고 이른 산책을 나갔다.

이제 여름이라 조금만 머뭇거리면 산책은 고행길로 변한다. 오랜만에 집 근처 둘레길을 걸었다.

역시 나는 화려한 꽃밭보다 푸릇푸릇한 산길이 좋다.

아파트 입구에서 나와 산책길까지 긴 인도를 걷는다.

잡초를 좋아해  종종 사진을 찍는 편이다.

평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한여름 오후 햇살을 받으면 존재감을 드러내듯, 입체적이 된다. 그 순박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지 꽤 오래됐다.  


산책할 때마다 인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고, 한동안 카톡 프로필 포함해서 전부 잡초였고, 이름을 알고 싶어 책을 뒤져본 적도 있었다.  

문득 굳이 이름을 알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모르니 더 신비롭고, 이름을 모르니 더 반가웠는데..   이상한 고집이었다.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열심히 스마트렌즈를 찍어댔다.  


'오~  이런 이름이었어?'

'너도 이름이 있었구나..'

'아.. 네가 그거구나...'  


탄성과 묘한 실망감이 교차했다. 밀어둔 호기심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동안 내 산책길은 스마트렌즈를 찍느라 바쁠지 모르겠다.  


                                   <참으아리>

                              이름이 있어서 놀란 아이..


                                      <감초>

                           내가 아는 그 감초 맞니??

                   왠지 어두운 곳에선 조금 초라해 보인다.  


                                    <닥터구리>

                                이름 알고 웃어서 미안...  


                                   <윤노리나무>

                 아주아주 귀여운 아기 보듯 바라봤던 너..  


                                 <금잔화>

                              제일 자주 마주쳤던 너..  

                         근데 넌 왜 여기서 자라고 있니?


                                 <주걱개망초>


                                      <초롱꽃>

   오랜만에 간 둘레길에 새로운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이름을 알고 '참 이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 너..   


길거리에서 마주친 이 식물들이 전부 잡초는 아니다.

어쩌다 보니 씨앗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잡초처럼 자라나는 것뿐. 그냥 나는 다 '잡초'라고 부른다.  


나한테 '잡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살짝 피어

관심을 한 몸에 받지 않지만,

오히려 편하고 행복한 존재.  


묵묵히 자신만의 매력을 뿜어내고

그 의미를 아는 사람만 그 매력을 알 수 있는 존재.  


가로수 나무 밑, 인도 틈 사이 또는 구석 한 귀퉁이에 있다 보니 일부러 관심을 갖고 봐야 하는 존재들이다.

 

보도블록 틈사이에서 핀 금잔화 한송이는 내 발길을 잡는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 피었어도 본인의 매력을 잃지 않는, 선명한 푸르름에서 느낀 강한 생명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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