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짧은 파편
2024년 건강검진을 받았다.
평소 평일에 받는 데 무슨 용기인지 8일 토요일 오전 예약.
연휴처럼 쉬는 사람도 많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말이다.
8시에 검진센터 도착하자마자 얕은 기대는 깨졌다.
대기 52명. 내 접수번호는 130번.
접수받는 곳은 바글바글 그 자체였다.
순간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날 굶은 게 아깝고 다시 예약할 수 없으니 바로 접었다.
접수만 30분 넘게 기다리고 검진이 시작됐다.
평소 2시간이면 끝날 것을 3시간 가까이 걸려 끝났다.
소변검사도 있고, 소변을 참고 봐야 하는 초음파 검사도 있어서 기상 후 화장실을 참아야 하지만 무시하고 화장실을 갔다.
당연히 초음파검사를 받지 못하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해서 물로 배를 채웠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차례가 됐다. 배를 꾹꾹 눌러대는 걸 참고 나서야
소변검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소변검사를 끝으로 모든 검진이 끝났다.
그제야 배고픔이 밀려왔다.
'뭐 먹지?' 고민하다 뼈해장국을 선택했다.
해장국이 나오기 전,
맨 밥에 깍두기를 집어먹는데 왜 이리 맛있는지.
해장국은 오늘따라 또 왜 그리 맛있는지.
남편과 말도 없이 허겁지겁 흡입했다.
(배고파서 정신없었는지 사진은 찍지도 않았다.... )
화장실도 가고, 배도 차니 행복했다.
"화장실 가고 싶을 때 가고, 배고플 때 먹고. 행복 별 거 아냐. 그렇지?"
단순하디 단순한 내 말에 남편은 웃었다.
그날 저녁. 낮에 못 마신 술 한잔이 생각났다.
날도 덥고, 밥을 해 먹을 기운도 없어 메뉴를 고민하다가 비빔면과 고기를 좀 구워 맥주와 먹기로 결정.
새콤달콤 비빔면과
소금을 찍어 짭조름한 소고기가 어우러지고,
시원하게 맥주 한잔 마시면서 야구를 시청했다.
"나 너무 행복한데?"
이 날 '행복하다'는 말을 남발했다.
숙제 같은 건강검진을 끝냈고,
점심 저녁을 맛있게 먹고,
더운 여름, 맥주 한잔과 함께 즐겁게 야구를 보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행복은 없고, 행복한 순간만 존재하는데,
그 순간을 자주 느끼는 게 결국 행복이라 했다.
한 때 유행했던 소확행도 있지만,
단순 그 자체인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
하루에 1번 이상은 '행복한 순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배고픔을 느끼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은
결핍만큼 행복 크기는 배가 된다.
이 날 특별할 것 없지만,
내가 느낀 행복 크기는 특별했다.
(정말 또 한 번 느끼지만 참 단순하다.)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난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큰 행복이 오려나보다'하고 버티면 조금 수월했다.
불행이 연속으로 오면,
'얼마나 큰 행복으로 갚으려고 이러나' 하며 정신승리를 한다.
비록 합리화라 할지라도,
비록 자기 최면에 불과할지 몰라도,
삶이 힘들긴 하지만, 불행하진 않다고 믿는 원동력인 것 같다.
이제 건강검진 결과만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