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낙서
옛날옛날에 동굴 속에서 살던 아이가 있었어.
아이는 동굴 안에서 동굴 밖을 보는 게 전부였어.
동굴 밖은 나가고 싶단 생각조차 없었어.
동굴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했고, 밖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거든.
어느 날, 동굴 안으로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들어왔어.
놀란 아이는 개구리를 잡으려고 뛰다가
자기도 모르게 동굴 밖으로 한 발 나가게 됐어.
개구리를 놓치고 아이는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왔지.
그런데 이상하지? 그전에 없던 현실감이 느껴지고,
왠지 이전에 보던 동굴 밖과 다른 느낌이 드는 거야.
동굴 속 아이는 고민에 빠졌어.
'다시 나가보고 싶은 마음'과 '굳이 뭐 하러 나가' 하는 마음이 공존했지.
몇 날 며칠을 동굴 안을 왔다 갔다 배회하며 고민하다가 결심했지.
동굴 밖을 나가보자!
아이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어.
들뜬 건지, 긴장한 건지 알 수 없었지.
짐 가방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했어.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아이는 동굴 입구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결심한 듯 오른발을 한 발 내디뎠어.
1초 2초 3초..
다시 용기를 내서 왼 발을 내디뎠어.
1초 2초 3초..
두 발 모두 동굴 밖 땅에 딛고 눈을 뜨고 풍경을 바라봤지. 그리고 아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어.
생각보다 동굴 밖은 흥미로웠거든.
동굴 안에서 바라보던 동굴 밖 풍경은
지름 1m가 넘지 않는 동그라미 안에 들어오는 게 다였어. 막상 나와서 보니 그건 아주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던 거야. 그저 몇 발 나왔을 뿐인데 이미 다른 세상이었지. 어느새 주저앉아 풍경에 넋을 잃고 봤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는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동굴 안이 보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동굴 밖이 보여.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해.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는 가방 없이, 가벼운 옷차림에 마실 것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왔어.
성큼성큼, 한 발 한 발
아까와 다르게 가벼운 발걸음이야.
몇 발자국 나온 자리에 아이는 자리를 잡고 누웠어
아이는 드러누운 채 따스한 풍경과 선선한 바람, 바깥 냄새 등을 아주 아주 오래도록 즐겼어.
조금 있다 지쳐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
그땐 동굴이 포근하게 감싸줄 거야.
익숙한 공간도,
새로운 공간도 모두 소중하니까.
호기심은 많지만 그래도 늘 익숙한 것을 택했다.
내게 새로운 시도란, 완전히 낯설지 않은 분야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나와 어차피 맞지 않을 거야.'라는 자기 합리화도 강했다. 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책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삶엔 의외성이 필요하다."
의외성이 꼭 클 필요는 없다.
아무리 사소해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건 많으니까.
평생 포기했던 수학에 눈을 돌려 초등학교 3학년 문제집을 샀고, 유일하게 자신 있던 국어 문제집도 사서 풀었다. 전시관람은 잘 아는 사람이 즐기는 문화라고 외면했지만, 다양한 전시장을 방문하는 행위 자체도 즐거웠다.
이젠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사이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한다. 새로움을 즐기다 익숙한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편안함이 지루해질 때쯤 새로움을 즐긴다.
나의 영역은 조금씩 확장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