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ing
추운 겨울..
따듯한 내 방 침대 이불속에서 꼼지락 거릴 때,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딱 있을 때
두둑한 현금과 든든한 마음으로, 길거리 음식을 구경할 때,
비가 쏟아지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방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며 창 밖을 내다볼 때..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 행복한 순간에..
당신이 내 옆에 있다면..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텐데..
"참 좋겠어."
"왜?"
"먹는 거 하나로도 그렇게 행복해하니 말이야."
"....?...."
족발 한 쌈을 크게 입에 넣은 채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친구는 신기한 듯 말했다.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란 질문에 한 치의 고민 없이 '먹기 위해 산다'라고 대답하는 나다.
그런 내가, 그것도 배가 많이 고픈 상황에서 야들야들 족발 얹은 쌈이 한입 들어가는 순간
행복이 입안 가득 맴도는 건 당연했다.
삶에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만 행복을 느낀다는 친구는
'족발이 맛있다'는 사소한 이유로 행복을 느끼는 내가 이해가 안 가는 한편 부럽다고 했다.
내겐 그저 일상인지라 새삼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
행복은 존재하지 않고, 일부로 찾거나 만들 수 있는 게아니다.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쫒으며 살면 평생 행복할 수 없다. '나도 행복하고 싶다!!'라고 아등바등했던 적이 있다. '왜 행복하지 않을까?' 답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마음 한 편엔 행복필요조건이 늘 있었다.
'이러면 행복할 텐데, 저러면 행복할 텐데..'
그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 한 행복할 수 없었다.
절대 행복할 수 없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불행하다며 헤엄친 꼴이었다.
힘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나를 위한 보상이 필요해' 라며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고, 태블릿 PC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었다. 극락이 따로 없었다. 몸을 담그고 편히 누워 예능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아 행복해' 란 말이 절로 나와 놀랐다.
새삼스러운 경험도 아닌데 희한하게 그 순간
행복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어차피 금방 사그라드는 감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깨달음은 생각지 못한 때 얻는다. 그래서 귀한 걸지도...
'아,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을 이젠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이 행복이 5분 뒤에 끝나든, 하루 지나고 끝나든 그건 잘 모르겠고, 일단 그 순간에 흠뻑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짧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쌓아가는 건,
내가 언제 즐거운지를 알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주로 먹을 때가 행복한..)
누군가 "네가 행복한 순간은 언제야?"라고 물으면
잠깐 고민하다가 주저리주저리 뱉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연히 들른 곳이 맛집일 때,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 눈 떴을 때,
잠을 푹 자서 컨디션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의욕이 뿜뿜 할 때,
스포츠 경기가 짜릿하게 승리할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브런치 작가 승인 메일이 왔을 때..
따뜻한 물로 목욕할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풍경 좋은 곳을 걸을 때,
현금을 두둑이 챙겨 시장이나 명동에서 길거리 음식을고르며 놀 때,
쇼핑하다가 득템 했을 때,
처음 시도한 요리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을 때,
한적하게 소파에 누워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기대 없이 글을 쓰는데 그분이 오신 듯 술술 잘 써질 때...
쓰다 보니 나 행복한 사람이 맞네.
너무 뻔해서 늘 흘려버렸던 그 순간을 이제 놓치지 않는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