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ing
아마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으리라.
어이없게 내 눈물이 핑 돈건 왠지 아등바등 사는 삶이 순간적으로 서러웠기 때문이다.
친구 A는 참 바지런했다. 놀 때도, 배울 때도, 일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다.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도 적극적이었다. 직장인이 된 A는 출근하기 전 영어학원을 갔다가 출근을 하고, 퇴근해서 다시 영어학원을 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하루에 영어학원을 2번 간다고?"
"어! 요즘 별 보고 나왔다가 별 보면서 들어간다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재밌어"
그 친구는 늘 바빴다. 어느 날은 문득 바이올린을 배워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혼자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 쓰는 일도 즐겼다.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친구라 배울 점도 많았다. 그 친구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살던 곳을 벗어나 낯선 지역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이제 아이 2명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그녀는 육아도 살림도, 일도 최선을 다했다. 친정도 시댁도 멀어서 친구는 육아와 살림을 혼자 주로 맡았다. 돌도 안 된 첫째 때, 육아휴직 기간이었지만 냉장고 위에 먼지 하나 없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던 적도 있었다. 내 성격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열심히 하는 걸 뭐라 할 순 없지만 너무무리를 하다가 스트레스가 목구멍을 밀고 나와서 헐 떡 헐 떡 할 때까지 하는 게 문제였다.
A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아이들이 조금 크면서 전보다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반가운 말이었다.
"이제 쉴 수 있을 때라도 좀 쉬어. 그러다 병난다."
"그래야지"
"말만 하지 말고! 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
공부나 살림, 육아.. 아무것도 안 하고 한 시간이라도 쉬라는 거야."
"........ 근데.."
"왜?"
"요즘에 어쩌다 짬이 나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뭐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그냥 멍 해."
"...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니? 그냥 쉬라니까."
"그러니까. 그 쉬는 시간에 뭘 하면서 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수화기너머 씁쓸한, 다소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들렸다순간 울컥했다.
"TV를 보든, 멍 때리든, 잠을 자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 뭐야.. 너 울어? 왜 네가 울어.."
우린 전화기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 생각해 보면 참 별거 아닌데.. 울 일은 아닌데..
누구보다 삶을 열심히, 즐겁게 사는 법을 알던 그 친구가.. 한두 시간이라는 여유시간에 살림과 육아, 회사일을 빼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하기 싫어 죽겠다던 그 일들이 그녀의 전부가 돼버린 것 같았다.
지금 그녀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특별할 것도 없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아마 다른 친구였으면 그렇게까지 반응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친구 답지 않은 낯선 그 말이..
난생처음 듣는 그 친구의 그 말이..
나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 가깝게 살던 그 친구는 종종 전화를 해서 날 불러냈다.
"나 지금 0000인데 너 시간 되면 올래? 잠깐 커피나 한 잔 할까?"
예전 그 연락이 그리운 건 아직 내가 철이 없어서다.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