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ing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몇 년 전, 먼저 결혼을 한 언니가 말했다.
"평범하게 잘 살아.."
'그게 뭐야'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평범한 게 가장 어려운 건 알고 있지?"
세월이 지나..
그 말의 깊이를 진하게 느끼게 된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
평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학창 시절부터 '왠지 나는 특별하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특별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평범' 그 자체인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정체성을 박아놨으니 스스로 만든 늪에 빠진 셈이었다. 그 늪은 무서웠다. 착시현상처럼, 한동안 시야를 가렸다.
특별한 삶을 갈구하는 만큼 이룰 수 없는 괴로움은 날로 커졌다. 현실이 뚜렷해질 때도 외면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서'라며. 인정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의 노력과 방황의 시간들을 부정해야 가능했다.
철없이 결혼을 앞두고도 여전히 그 현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대부분의 커플이 그렇듯, '우린 특별하다'라고 믿었다. 남들과 다르게 흘러갈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언니의 말을 비웃었고, 곱씹지 않았다.
'평범하게 살라니. 그리고 평범한 게 제일 어렵다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언니가 결혼생활이 힘드니 동생인 내게 얄미운 심술을 부리는 것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언니와 나는 달라'
지금 생각해 보면, 미지의 세계가 두려워 더 모른 척했는지 모르겠다. 이미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시했다고 생각한 그 말이 20년이 다 되도록 잊어버리지 않을 리가 없다.
삶이 평범하다는 인정도 쉽지 않았는데,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마저 평범의 굴레로 끌고 가지 않을 거라는 한 줄기 의지였을지도.
평범은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무난하게? 다소 심심하게? 평탄하게?
어떤 의미에 더 가까울까?
그 의미는 상황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날카로운 공격이 되기도 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이 싫은 사람도 있다.
함부로 상대의 삶을 '평범'이라는 기준으로 재단할 수도 없다. 그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이란 말인가?
요즘처럼 다양한 삶이 공존하고, 더 이상 길이 정해지지 않은 시대에 '평범'의 의미와 해석은 더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더 이상 '평범의 유무'는 삶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평범한 삶'을 '큰 사건 없이 평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존재하는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평범'이라 쓰고 '판타지'라 읽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은 정작 '평범한 삶'이 지닌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 나의 무지였다. 인생의 절반에 다다른 중년의 나이에 서니, 곧 닥칠 삶의 풍파가 벌써 두렵다. 이젠 그저 평범하게, 조용하게 흘러가기만을 바라는 내가 있다.
어릴 때 '평범하게 살기 싫다'는 외침도,
지금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외침도 결국
삶이 조금 더 수월해지기를 바라는 나의 판타지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