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ing
40대의 사춘기가 왜 10대 때보다 힘든 줄 알아?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하지만..
누구보다 투정받아 줄 사람이 필요한 나이인데..
40대가 되고 지인들과 대화할 때 항상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사는 거 참 힘드네"
육아, 결혼 생활, 돈, 가족, 직장, 인간관계 등등 힘든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고민 종류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가끔 친구와 '우리가 어느새 이런 고민을 하게 됐구나'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종종 한탄 섞인 대화와 한숨을 내뱉었다. 이해하기 어렵던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이젠 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부모님들은 이미 겪고 있었다. 그 힘든 시절을 온몸으로 버텨낸 부모님이 안쓰럽고 새삼 대단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간은 지나가고, 고민의 영역은 나의 한계를 시험한다. 삶에 치이며 살아가는 나이에 진입했다는 실감이 난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예, <달러구트 백화점> 중
40대 현실은 예상보다 잔혹하고 냉담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지 '나'가 없어진 상실감. 삶에 지치고 찌든 초라한 '나'만 덩그러니 서있는 공허함. 감내하기 힘든 현실 앞에 그저 쪼그려 앉아 소리 없이 울어야 하는 외로움. 시간이 흘러도 지금과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절망감 모두 너무 무겁기만 하다. 자유보다 책임과 의무감이 난무한 세상에서 과연 내가 잘 견디고 살아낼 수 있을지 겁이 나고, 나와 다른 삶을 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위축된다. 밤늦은 시각, 이런 생각이 몰아치면 쉬이 잠들지 못한다.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나는 또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그런 감정에 취해 있을 여유는 없다.
40대 지인들에게 허무함, 공허함, 상실감, 외로움, 지침 중 가장 자신과 가까운 감정을 선택하라고 하니 80%가 지침이었다. 그 단어를 마주하는 순간 절실히 와닿는다. '24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였다. 혼자, 아무것도 안 하거나 자고 싶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40대 사춘기를 앓고 있다'하면, 철없다는 시선이 냉큼 돌아온다. 사춘기를 앓는다는 건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쓸데없고 여유로운 감정 소모'에 불과하다. 40대 사춘기는 위로받기 어렵고, 그래서 더 외롭다. 그 감정에 퐁당 빠질 수 있는 여유도 없지만 말이다. 눈앞에 고지서가 쌓여있고, 이달 챙겨야 할 가족 행사가 있고, 집안일은 끊이지 않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상황에서 사춘기는 사치가 된다.
먹고살기 바쁜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 앞에서도 가면을 쓴 채 웃는다. 늙고 쇠약해진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칠 수 없는 일이다. 배우자 역시 나 못지않게 힘든 상태니 여의치 않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는 반응이 안 나오면 다행이다.
"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수분만큼이나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
-김승,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결국 40대 사춘기는 혼자 버티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잘'알아야 한다. 이 시기를 맞춰주겠다는 시선은 어디에도 없다. '진짜 힘든 건 이제 시작'이라는 경고 문구처럼, 나는 오늘도 혼자 견디는 근육을 근근이 키운다. 아는 맛이 참기 어렵듯, 아는 아픔이 더 무섭다. 준비 없이 맨 몸으로 받아내는 건 40대로 족하다. 더 단단하고, 더욱 견고하고 앞으로 20년은 거뜬히 버텨줄 나만의 근육이 필요하다. 아직은 보잘것없고, 약하지만, 그 근육만이 나를 지켜주는 나만의 보호막이 돼 줄 거다.
다행인 건, 사춘기를 겪으며 고민한 만큼 몰랐던 '나'를 알게 됐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나를 위로하는 법을 하나 둘 터득하기 시작했다. 소소한 쾌감이다.
그렇지! 잘하고 있어!
나의 40대 사춘기는 풍랑을 헤치면서 조금씩 순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