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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Apr 24. 2024

나중에...

일상 속 짧은 파편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와 대화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힘들었던 이야기'가 오간다.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와 대화내용이지만, 반가운 마음에 투정을 마음껏 부리고 싶지만,  

서로 힘든 시기에 일방적 투정은 안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낸 결과물일지 모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친구의 현재 상태를 알았다.


"야, 너 그거 번아웃인데?"

"그지? 나 많이 힘들었어. 번아웃 같아."

웃으면서 대답하는 친구가 안쓰럽다.


"같아가 아니라, 너 지금 상태가 딱 그러는구먼."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명상만 간신히 한다.

그나마 도움이 돼."

"넌 지금 명상보다 그냥 휴가가 필요한 것 같은데?"

"알지.. 안되니 문제지.."

"아직도 많이 바빠?"

"응... "


아휴.. 하는 한숨소리가 오간다. 잠시 침묵.

친구가 힘주어 말한다.

"나 진짜 나중에 그거 할 거야. 시골에 집 지어서..."

"나도!!! 나도 그러고 싶어. 자연과 가까이에서...

흙냄새도 맡고, 뭔가를 키우는 성취감도 있는.. 텃밭 가꾸면서 그렇게.."

"야야.. 나는 텃밭도 싫고, 그냥 시골집에서 하루종일 멍 때리고 싶다."

"너는 대청마루에서 멍 때려라. 내가 상추랑 토마토랑 텃밭에서 따서 먹여줄 테니.."

"아하하하.. 진짜 그럴까? 맛있겠다."

"나중에라도 꼭 하자."

"그래.. 나중에 꼭 그러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요즘 부쩍 '시골'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주변 친구들이 생겼다. 시골의 삶을 만만히 봐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거다. 도시에 지쳤으니까. 도시의 대칭점에 시골과 자연이 있으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시골을 꿈꾼다.


매일 다른 풀냄새와 흙냄새

좁은 아파트에서 키우기 어려운 큰 개

대청마루에 앉아 간식을 노나 먹고

자급자족이 목적인 자그마한 텃밭엔 내 애정이 듬뿍 담긴 채소들이 자라고,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그런 삶.


많은 것도, 좋은 것도 필요 없이,  

오로지 바라는 것은 하루 먹을 식량과

한적하게 나만의 시간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삶. 나만의 파라다이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와 희망이 만들어낸 꿈.


문득 드는 생각은,

왜 전부 '나중'일까.


나중에 해외여행 갈 거야.

순례길 갈 거야.

시골에 집 짓고 살 거야.


나중에...

나중에....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역설.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인지.

정말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건, 지금까지 내 삶을 모두 부정해야 가능할 것 같은 두려움..


이쪽도 저쪽도 선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중'은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된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엔 가능할 거야'라는 꿈과 희망이 된다.


그것이 비록 희망고문일지라도, 지금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인 셈이다.


어쩌면 '나중에'라고 생각하는 일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보다 덜 힘들지 모른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두 손 불끈 쥐고 '나중엔 꼭'이라고 다짐을 해야 하는지.. 가끔은 '나중에'라고 하는 말에 스스로 비웃을 때도 있다.


'그때 또 '나중'으로 미룰 거면서'

'지금도 못하면서 나중은 무슨...'


자조적인 비웃음이 이어지다가 생각은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나중'으로 미룬 일이 과연 파랑새일까?

막상 도달했을 때, '생각보다 별로네..' 하면

더 이상 희망조차 없을까 봐 정답을 열어보기 두려워서 계속 미루는 거면 어떡하지?


꽤 일리 있는 생각이다.

상상은 끝이 없고, 미화는 점점 부풀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나중에' 목록을 만들어보는 거야.

 

'나중에 시골에서 집 짓고 텃밭 가꾸기'라면,

주말농장부터 해보는 거야.

내가 진짜 흙과 자연과 텃밭이 맞는지 점검은 해봐야 할 거 아냐.

그게 나중에 나한테 정말 파라다이스가 돼줄지,

다른 결의 디스토피아가 될지 어떻게 알아.


돌다리도 두드려보랬다고.. 돌다리 두드리듯,

'나중에' 목록을 두드려보는 거야.


그리고 딱 하나만 남겨둬야지.

정말 정말 나중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돼줄 무언가를,

지금을 버티게 해 줄 나만의 판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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