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한 변화 시작
운동효과가 눈으로 보이면 중독이 된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중독이다. 나처럼 운동과 담쌓은 사람은 절대 걸릴 수 없는 중독이었다.
정말 특별한 사람만 걸릴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
20대 때 친구가 헬스를 다니더니 운동 중독에 빠졌다. 같이 놀다가도 헬스를 가야 한다며 바삐 갔다. 서운함을 내비쳐도 소용없었다. 단호한 모습이 한편 부러웠다. 헬스만 안 했지,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친구 여럿이 운동 중독자가 됐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친구들이 몸소 증명해 준 셈이다.
운동 중독된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재밌어."
"운동 안 가면 허전해."
"아침에 운동 1시간 하고 부족해서 저녁에도 가."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운동이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나만 그 매력을 모르는 걸까?
운동과 결이 잘 맞는 사람이 따로 정해진 걸까?
나처럼 생존운동만 해서는 그 매력이 뭔지 평생 알 수 없겠지?
의문은 들었지만, 딱히 답이 궁금하지 않았다. 평생 모르고 산다고 문제 될 게 없으니까.
굳이 몰라도 되는 일이었는데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 생존운동이 습관이 잘 안 되면서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아예 운동을 안 할 때는 나와 다른 세상이려니 생각해서 전혀 상관없었는데,
지금은 보이는데도 안 잡히는 기분이었다. 아예 안 보이는 게 낫지, 그 기분이 더 싫었다.
운동에 재미가 붙는 기분을 알고 싶었다.
제일 궁금한 건,
'어느 지점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였다.
중독은 보통 빠른 보상으로 이어지는 행위에서 나타난다. 운동은 결과가 바로 보이는 행위는 아니다.
대체 그 결과가 언제 나오는 건데!
운동효과가 눈으로 보일정도면 어느 정도 강도로, 얼마나 견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인내심과 거리가 먼 운동 무지렁이는 작심삼일도 힘드니 눈에 보이는 게 있을 리 없고 악순환은 반복됐다. 마음을 내려놨다. 생존운동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 아니던가. 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운동량이 적은 만큼 식단을 조절했다.
내 기준에서 식단조절은,
평소 먹던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줄이거나 거하게 한 끼 차려먹는 일을 줄이는 것.
예를 들어 밀가루, 라면, 피자, 치킨, 인스턴트, 술 먹는횟수를 줄이고, 저녁을 가볍게 먹기.
야식 먹지 말기
이 정도다. 남들처럼 다이어트 식단을 하고 , 탄수화물을 끊고, 먹고 싶은 걸 참는 일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다이어트나 이쁜 몸매 만들기가 아니라 정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니 식단조절도 그 정도 선에 맞췄다.
생존운동을 들쑥날쑥하면서 미비한 변화가 꿈틀거렸다.
‘즐겁게 하되, 운동답게 하자'를 시작한 것.
생존운동의 문제점은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뿐, 제대로했다는 기분은 잘 안 들었다. 산책을 하면서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생각날 때 뛰었다. 걷다가 뛰다 하는 게 전부지만 운동을 제대로 한 느낌이었다. 그전엔 땀이 나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조금씩 뛰었더니 매번 땀이 흘렀다. 땀이 나고 씻으면 개운했다. 그 개운함이 좋아졌다.
운동다운 운동을 시작하고,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어느 순간 몸이 전보다 가볍다고 느꼈다. 원래 밑바닥에서 조금이라도 올라올 땐 티가 쉽게 나는 법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왠지 몸이 가벼운데? 혹시 살이 빠졌나? “
한동안 멀리했던 스마트체중계를 꺼냈다.
스마트체중게를 다 믿을 순 없지만 나처럼 결과주의자가 운동효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원래 목적이 다이어트가 아니니 체지방과 근육이 주 관심사였다.
오!!! 체지방이 떨어졌어. (최저치)
나 근육이 올랐어 (1년 만에 최고치)
기초대사량이 올라갔어!! (그냥 최고치)
그날 저녁. 라면이 당겨서 먹을까 하다가 멈칫했다.
“먹으면 오늘 효과 다 사라질 텐데?”
남편과 눈빛을 교환했다. 침을 꿀꺽 삼키고 건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건가? 시각효과의 힘이?
별로 쌓은 것도 없지만, 한 순간에 무너질 것 같은 기분
일시적으로 체지방 한 스푼 덜어지고, 근육 한 줌 붙었을 뿐인데 유지하고 싶은 욕심..
이거구나.
재미까진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운동을 계속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효과는 이어졌다. 남편과 나를 어쩌다 만난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졌다.
"살 좀 빠졌네?"
"그래? 티 나?"
"응, 티 나."
건강하게 살을 빼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의식적으로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고 결과를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노력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했구나 하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운동효과인지, 운동에 흥미를 느끼는 원동력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평생 운동과 담쌓고 살 줄 알았다. 겨우 출발선 앞에 선기분이지만, 이 출발선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기에 감회가 새롭다. 멀게만 느꼈던 운동 습관이라는 도착지점이 저 앞에 희미하게 보인다.
보이는 가, 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