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물이 준 소소한 변화, 커피머신.

믹스커피 한 잔 할까요?

by 감정 PD 푸른뮤즈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커피머신?”


깜짝 선물을 들고 온 지인은 우리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스스럼없이 언박싱을 해버렸다.


“뜯었다. 이제 못 돌린다. 끝~!”

“아이고… 뭘 이런 걸…”


선물을 잘 받지 못하는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감사의 인사만 건넸다. 선물로 받은 기쁨만큼이나 그 뒤에 따라오는 묘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지인이 떠나고, 남편과 나는 새로운 문물 앞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img1.daumcdn.jpg

마음은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커피머신 같은 값비싼 선물을 받는 건 우리에게 부담스러웠다. 선물을 받으면 왠지 빚진 기분이 든다. 특히 생각지 못한 선물이라면 그 은혜를 꼭 갚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더해진다. 나는 선물을 고르는 데 센스도 없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편이라 최대한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 걸 선호한다. 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려 노력 중이다. 이번 커피머신 선물도 그런 연습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은 답례를 고민 중이다.


사실 몇 년 전, 우리도 커피머신을 살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집이 작고, 특히 주방이 협소해 전기밥솥, 에어프라이어도 없이 사는 데 커피머신이라뇨.. 고가의 기계를 사도 과연 잘 쓸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론은 '안 사는 게 낫겠다'였다.


대신 가끔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스틱커피’를 구입했다. 텀블러에 얼음 가득 넣은 달그락 소리.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글을 쓰는 기분에 취하곤 했다. '분위기 있군.' 스틱커피는 가격도 나쁘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다양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재미도 있다. 믹스커피에서 스틱커피로 확장됐다. 여기까지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커피의 새로운 영역의 한계였다. 커피머신은 그 한계선을 넘은 존재였다.


이왕 들어온 거 자리를 잡고 잘 써봐야 한다. 커피머신은 부엌에 건조기 위 자리를 차지했다. 알록달록한 캡슐은 예쁘긴 한데… 너무 복잡해 보였다. 중얼거리며 설명서를 차분히 읽었다.

img1.daumcdn-1.jpg
img1.daumcdn-2.jpg

'강도가 몇이고... 양이 어떻고.. 무슨 말이야?'


낯섦은 공부가 필요하다. 어설프게 커피를 넣고 뚜껑을 닫고, 물을 채우고, 버튼을 누른다. 인생 첫 캡슐커피. 집 안에 퍼지는 커피 향에 살짝 취하는 기분이다. 캡슐이 툭 떨어지며 자동으로 처리되는 모습에 우리는 촌스럽게 “오~ 신기하다!”라며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첫 시음.


“음…”


커피숍에서 마시던 커피와 또 다른 차원의 맛이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아마 같은 단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낯선 맛.


'우리가 과연 이 친구를 잘 쓸까?'


Steaming_Coffee_Cup.png

그렇게 시작된 커피머신 생활이 6개월이 지난 지금, 예상치 못한 변화가 하나둘 생겨났다. 그 변화는 소소하지만 일상에 작고 특별한 리듬을 더했다. 여름에는 아이스커피를 자주 마시다 보니 얼음 트레이 세트를 새로 구입했고, 친환경 생분해 빨대까지 챙기게 되었다. 캡슐은 네스프레소 지점에 반납해 보기도 하고, 직접 재활용을 시도하며 더 나은 소비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는 커피머신이 제법 익숙해졌고, ‘언제 다 마시나’ 했던 캡슐들은 끝이 보인다. 처음엔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급해져 숙제하듯 커피를 마셨다. 시간이 지나자 입맛에 맞는 커피만 골라 마시게 되었고, 덕분에 남은 캡슐 개수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커피머신이 생겼어도 하루 한 잔 믹스커피를 마시는 고정된 루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정된 취향과 새롭게 확장된 영역의 조화.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여전히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커피머신 덕분에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 더해졌다. 새로운 문물이 주는 낯섦과 익숙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 그거면 충분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