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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필사 3일째

[브런치입문러의 글쓰기연습장]

by 감정 PD 푸른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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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3일째,

필사는 글씨를 따라 적으며 마음을 정리하는 일,

단순한 행동이지만 묘하게 안정감을 주는 작업이다.


신기하다.


오늘 하루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하루 종일 생각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했다.

그래서 무작정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를 하다 손을 멈추고, 한참 동안 같은 문장을 바라봤다.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략)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필사를 하다가 문장에서 멈추는 순간이 있다.

어떤 단어나 표현이 가슴에 스며들어,

순간적으로 손을 멈추고 의미를 곱씹게 되는 순간.

오늘이 그랬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앞두고 불안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이렇게 겁이 많지?'

'진작 했으면 지금쯤...'


하루 종일 이런 생각에 휩싸여있다가 만난 문장은 더 깊게 파고들었다.


나는 얼마나 자주 뒤를 돌아보고 있었을까.

지나간 시간, 손에 닿지 않는 순간,

이미 사라진 것들을 바라보며 멈춰 서 있던 건 아닐까.


새가 고개를 꺾어 과거를 되돌아보는 순간,

날갯짓은 멈추고, 추락한다.

뒤돌아본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문장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나는 어떤 기억에서 멈춰 있었을까.

손짓하며 사라진 것들을 끝없이 붙잡으려 했던 건 아닐까. 그러다 결국,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던 건 아닐까.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이 문장이 마음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필사는 단순히 글을 베껴 적는 게 아니라, 나를 마주하는 과정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간 동안만큼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우연히 시작한 필사가,

오늘도 나를 가만히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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