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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필사 5일째

우연히, 필사

by 감정 PD 푸른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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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필사 5일째.


감각이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새삼 깨닫는다.


평소 불안도가 높은 편이라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힐링 음악을 습관처럼 튼다.

특히 백지를 앞에 두고 글을 써야 할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을 때.

플라세보효과라도 좋은 걸까.

빠르게 뛰던 마음의 템포가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힐링 음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단순한 소음이 된다.

그럴 땐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낫다.


오늘 필사를 하기 전, 기분이 살짝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이 내 안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상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내 감정은 요동쳤다.

타자를 치는 손이 살짝 떨렸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상황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흔들린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 상태로 필사를 해도 괜찮을까?

글이 눈에 들어올까?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5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필사는 어느새 내 하루의 리듬이 되어 있었다.

책과 노트를 자연스레 폈다.

대신 타이머를 짧게 잡았다. 15분.

집중이 안 되면 멈출 생각이었다.

그렇게, 차분하지 않은 상태로 필사를 시작했다.


사각사각사각사각... 사. 각. 사. 각.


손끝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음의 소음보다 점점 더 크게 다가왔다.

손이 조금씩 저려왔지만, 어느새 필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은 아무리 머리로 ‘괜찮다’고 다독인다고 가라앉지 않는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도, 깊은숨을 내쉬어도, 이미 요동친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애써 잡으려 하면 할수록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뿐이다.


필사는 다르다.

저릿한 손끝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

떠다니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또박또박 문장을 따라 쓰고,

글씨로 그림을 그리듯 한 획 한 획 써 내려가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불안과 동요가 희미해진다.

결국, 오늘도 필사로 마음을 다스린다.


글씨를 써 내려가며, 나를 조용히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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