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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와 독서, 생각이 멈춘 자리에서

우연히, 필사

by 감정 PD 푸른뮤즈


필사 책 두 번째 챕터.

말맛 체험하기: 언어적 직관을 터득하기.



챕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의 말이 먼저 들어온다.

꼼꼼히 눈에 담아본다. 이 책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저자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기록해 둘 겸 마음에 와닿은 내용을 요약했다.


<요약>


어휘력은 단어 그 자체보다 서로 다른 낱말이 어우러졌을 때

새롭게 생기는 제3의 의미를 느끼는 능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립다'라고 표현하면 되는 것을 왜 '눈에 밟힌다'라고 말할까?

유희적 인간, 호모 루덴스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미를 넘어서 '맛'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뜻 '', 맛 ''.


의미는 단지 뜻만이 아니라, 감정과 분위기, 상황까지 어우러진 맛이다.

사람은 아무리 뜻(쓸모, 가치, 중요성)이 옳아도 감각적인 맛,

즉 '미'에 끌리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가장 통하는 맛은 '아는 맛'이다. 상상할 수 있어야 반응하고, 연결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긴장했다'보다 '피를 말린다'는 표현이 더 와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관용어구는 말로 담기 어려운 감각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것이 말맛의 힘이고, 어휘의 진짜 힘이다.


어휘의 뜻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맛을 알기 위해선 체험이 필요하다.

모든 어휘가 나와 관계를 맺으며 쌓인 경험들이 많아질수록 말맛도 깊어진다.

말을 듣거나 글을 읽을 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문장이 몸에 스며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언어적 직관이 통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 책은 세 가지 단계를 추천한다.

첫째, 눈으로 읽기.

둘째, 입으로 소리 내 읽기.

셋째, 손으로 옮겨 쓰기.


어감이 몸에 배도록 먼저 익히고, 생각은 그다음이다.


눈길을 잡은 마지막 문장은 그대로 옮겨본다.


책 읽기와 필사에 필요한 마음가짐은 자기 생각(에고)을 버리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진짜 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주어원 잣대인
그것으로 평가하려 하지 마세요.
그래야 문장의 빗장을 열어젖혀 문장 안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몰라서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중


이 문장은 마치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하는 행위는 원래 내 생각을 더해야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


이 말이 아주 잠시 낯설고 꺼끌 거렸다.

곰곰이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책을 읽으며 미리 결론을 짓고 넘겼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필사를 하면서도 "이건 뻔하네"라고 속으로 평가하던 마음.

그때 나는 정말로 문장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결국 이 말은 이렇게 들렸다.


책을 읽거나 필사할 때 처음부터 내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말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자기 생각'은 진짜 내 생각이 아니라, 세상에서 주입된 기준이나 잣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잣대를 앞세우면, '이건 별로야', '나랑 안 맞아', '이건 틀렸어' 같은 판단으로 문장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렇게 되면 문장 속에 숨겨진 선물, 즉 뜻밖의 배움이나 통찰을 놓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더하는 행위는 언제 필요한 걸까?


처음엔 판단 없이 마음을 비우고 문장을 있는 그대로 느껴본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묻는다.


'나는 왜 이 문장에서 멈췄을까?'

'이 말이 왜 내 마음을 흔들었을까?'


평소 자주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모든 걸 재단하려 한다.


비판이나 평가를 잠시 멈추고 열린 마음으로 읽은 후에,

문장 안에서 새로 피어난 내 생각과 마음을 더해보는 것.


그게 더 자연스러운 순서 아닐까?


필사는 결국 내 생각을 더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말이 되려면, 먼저 문장에 한참 머물러야 한다.

마음이 문장에 스며드는 시간,

그게 없이 생각만 앞서가면 말맛은 빠져버린다.


비우고, 들여다보고, 느끼고, 그다음에 내 식대로 말해보기.


아마 그런 식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이렇게 나만의 결론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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