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표 세우는 법을 아직 배우는 중이다.

리모델링미

by 감정 PD 푸른뮤즈


무엇을 시작하는 일은 언제나 쉬웠다.

깨끗이 다린 새 옷을 입고 외출하는 날처럼,

출발점 앞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였다.

새하얀 백지는 머릿속에서 이미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었다.

초반에 과하게 분비된 기대와 흥분은 금세 더 강한 자극을 요구했고,

나는 그 속도를 끝까지 감당하지 못했다.


한참을 그리다 고개를 들면, 백지는 작품이 되기엔 이미 어수선한 상태였다.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도 분명하지 않았고,

더 그린다고 해서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 순간, 원동력은 쉽게 빠져나갔다.

나는 그런 식으로 자주 멈췄다.

내 인생에서 ‘꾸준히 하는 것’은 몇 번 되지 않는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꾸준히 못하는가.”


이 질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그 근처를 오래 맴돌았다.

처음에 도달한 곳은 늘 자책이었다.


게을러서 그렇다거나,

원래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식의 결론들.


하지만 자책은 원인을 말해줄 뿐,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향으로 파기 시작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이번엔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책을 뒤졌다.

의외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많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잠시 숨이 놓였다.



책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계획을 세워라. 잘게 쪼개서.

루틴을 만들어라. 뇌는 효율을 좋아한다.

보상이 필요하다. 동력이 있어야 간다.

기록하라. 지치지 않기 위한 이정표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말들이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없는 것들만 정리해 놓은 목록 같기도 했다.

그중에서 유독 마음에 걸린 말이 있었다.


‘목표를 정해라.’


목표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자주 멈췄다.

마음먹는다고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쉽게 생긴다.

입김만으로도 켜지는 스위치처럼.

하지만 그 마음을 문장으로 바꾸는 일은,

산 정상에 올라가 깃발을 꽂는 일처럼 버거웠다.


왜 이걸 하고 싶었을까.

이걸 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아이에게 놀고 싶은 이유를 묻지 않듯,

나 역시 그냥 하고 싶다는 감정에서 출발했을 뿐인데

그 감정에 이유와 방향을 붙이려는 순간, 발이 묶였다.

그리고 실패가 반복되자 스스로에게 하나의 이름표를 붙였다.


‘목표를 세우는 게 어려운 사람.’


자격증을 따겠다는 목표는 비교적 쉬웠다.

시험 날짜가 있고, 범위가 있고, 방식이 정해져 있었다.

단기 목표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러 개의 단기 목표를 넘어,

그 너머의 시간을 바라봐야 할 때.


예를 들어,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쓴다.

1년이면 최대 360개의 글이 쌓인다.

그렇다면 1년 뒤의 목표는 360이라는 숫자인가.

그 숫자는 나에게 무엇이 되는가.

그 질문 앞에서 목표는 다시 힘을 잃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꾸준히 멈췄던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

처음에 만들어낸 기대를 끝까지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목표를 세우지 못한다는 말은

왜 가야 하는지를 아직 언어로 붙잡지 못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의 나는 목표를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목표를 연습하고 있는 단계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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