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Email)과 SMTP
1971년, 네트워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엔지니어였던 레이 톰린슨(Ray Tomlinson)은, DARPA에서 시작된 ARPANET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장난처럼 프로그램 하나를 끼워 넣는다.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메시지를 건네는 방법.
톰린슨은 ‘주소’라는 개념을 적당히 갈라놓을 기호가 필요해서 고민하다가, 키보드 한쪽에 있었지만 거의 쓰이지 않던 @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놀랍게도 그 선택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제 @는 이메일 자체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정작 톰린슨은 기념비적인 첫 이메일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세상을 바꿀 일을 하면서도, 본인은 그 무게를 몰랐던 셈이다.
게다가 ARPANET의 목표는 값비싼 컴퓨터를 멀리서도 ‘빌려 쓰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이 '장난스러운 기술'은 처음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연구자들은 이메일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업무 파일을 보내는 것뿐 아니라 농담을 주고받고, 근황을 나누고, 논쟁을 벌였다.
1973년이 되자 ARPANET 트래픽의 상당 부분이 이메일로 채워졌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결국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재였다.
이메일이 ‘기술’에서 ‘일상’으로 넘어가려면 표준이 필요했다.
그리고, 1982년 8월, SMTP(Simple Mail Transfer Protocol)가 등장.
이름에 포함된 '심플'처럼 상호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단순한 방식을 채용하여,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고, 어떤 주소로든 보낼 수 있었다.
당시 네트워크에 연결된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과 연구소의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연구자들은 사기꾼이 이 통로를 악용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순진한 믿음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스팸, 피싱, 사칭 메일. 이메일 보안의 고질적 문제는 결국 SMTP의 출발점에서 비롯된다.
1978년 5월 3일, 개리 튀어크(Gary Thuerk)라는 마케터가 약 400명에게 컴퓨터 광고 메일을 보냈다.
결과는? 1,300만 달러 매출!
하지만 사람들 반응은 최악이었고, 그는 "다시는 안 하겠다"라고 약속해야 했다.
그리고 1994년, 피닉스의 두 변호사가 등장한다.
칸터(Canter)와 시겔(Siegel)은 "그린카드 추첨" 광고를 모든 주소에 무차별적으로 뿌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 고속도로에서 부자 되는 법"이라는 스팸 메일을 통한 마케팅 책까지 쓰게 된다.
이 둘은 스팸 컨설팅 회사를 차리려 했지만... 다행히도 실패했다고 한다.
이렇게 스팸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1996년, 핫메일(Hotmail)이 등장. 웹 브라우저만 있으면 누구나 '무료'로 이메일을 쓸 수 있었다.
2004년에는 구글이 지메일(Gmail)을 공개. 1GB(=1000MB) 무료 저장공간은 당시로서는 ‘이 정도까지 줘도 되나’ 싶은 충격이었다. 야후 메일이 1997년 출시 당시 4MB를 제공하던 시절이라는 비교는, 그 충격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이메일을 정기적으로 지워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삭제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거의 철학에 가까운 전환이었다.
슬랙이 나오고, 팀즈가 나오고, 온갖 협업 도구가 쏟아졌지만 공식적인 소통은 여전히 이메일이다.
이메일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지메일 사용자가 네이버 메일 사용자에게 보낼 수 있다.
반대로 팀즈 사용자가 슬랙 사용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다.
이메일은 인터넷의 오래된 약속이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어떤 기계를 사용해도, 누구나 연결될 수 있다는 약속.
2026년, AI가 이메일을 다시 ‘발명’하려 하고 있다.
Gmail의 스마트 리플라이는 2017년부터 시작됐다.
이제는 구글 제미나이가 이메일을 요약하고, 답장을 제안하고, 일정까지 잡아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에 이메일의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스팸도 AI가 쓴다.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피싱 메일은 맥락까지 파악하며,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AI 필터를 속이려고 노력한다.
AI가 이메일을 쓴다면, 인간이 이메일을 읽어야 할까.
곧 기계가 기계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인간은 더 이상 이메일을 직접 읽지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1965년 - MIT에서 컴퓨터 사용자들이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최초의 '메일' 시스템 아이디어 제안
1971년 - 레이 톰린슨이 ARPANET을 통해 서로 다른 컴퓨터 간 메일 전송 방법을 개발하고 '@' 기호 도입
1976년 -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HME2' 계정으로 최초의 '로열' 이메일 발송
1978년 - Gary Thuerk가 컴퓨터 마케팅을 위해 최초의 스팸 이메일을 발송하여 1,300만 달러 매출 달성
1988년 - Microsoft가 최초의 상업용 이메일 클라이언트 'MSMail' 출시 (Hotmail의 전신)
1992년 - MIME과 WYSIWYG 에디터 도입으로 텍스트 이외의 서식, 색상, 이모지, 첨부파일 지원 시작
1993년 - 웹메일 서비스 등장으로 PC 앱 없이 브라우저에서 이메일 접속 가능
1997년 - Microsoft가 Hotmail 인수
2002년 - Blackberry 5810 출시로 모바일 기기에서 이메일 사용 대중화
2003년 - 미국에서 CAN-SPAM 법안 통과로 수신거부 기능 등 스팸 규제 시작
2004년 - Google이 Gmail 출시 (검색 기능과 1GB 저장공간 제공으로 혁명적 변화)
2011년 - Microsoft가 Hotmail을 Outlook으로 교체
2018년 - Gmail 플러그인 생태계 확장 및 EU GDPR 시행으로 이메일 개인정보 보호 강화
2021년 - Apple의 Mail Privacy Protection 기능 출시로 이메일 추적 차단
2023년 - Yahoo와 Gmail이 스팸 제한, 원클릭 수신거부, 인증 요구사항 등 새로운 발신자 규정 도입
레이 톰린슨이 장난처럼 만든 프로그램.
이메일은 웹보다 10년 먼저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매일 그가 장난처럼 만든 위대한 기술을 사용해 소통한다.
아무도 쓰지 않던 @ 기호를 가장 유명한 기호로 바꾸어 놓은 이메일.
엑스트라가 주연이 된 극적인 기술의 역사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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