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많은 사람

따뜻한, 뜨거운, 시리고 아린

by 테우리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답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눈물이 많은 나에 대해 써본다.



오늘도 울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때 회사에서 상사한테 혼나다가 울었을 때는 눈물이 많은 스스로가 부끄럽고 못나게 느껴졌었다.


그때 울음을 참고 눈 맞춤을 피하려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비상구 계단에 혼자 가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신입사원처럼.



석사 졸업논문 쓰는 과정에서도 교수님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린 적이 있다. 아유 참… 애기 같은 눈물은 어쩌면 나 못하겠어요, 저 부족한 사람이에요- 하고 애 같은 나를 보이려는 몸의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눈물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영화든 조금만 감동 포인트가 있으면 울어버리는 사람, 바로 나다.



이번에 위키드2가 혹평을 받았으나 나는 울었다. 마지막에 두 사람의 진한 우정,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나오는데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나.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엔딩크레딧을 봤다.



오늘도 엄유진 작가님의 <외계에서 온 펀자이씨>를 보다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이 늘어가면서 서로를 사랑해 나가는 과정이, 아껴주는 마음들이 너무 따뜻했다.


어쩌면 내가 정말 바라는 건 명성이나 지적체험, 감탄과 부러움보다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남편과 딸의 뒷모습을 사랑이 담긴 눈길로 그려냈다는 게 와닿았다. 그림에 사랑이 담기면 느껴진다. 그런 그림들이 있다. ‘아, 나는 그 사람을 이런 눈길로 볼 수 없을 텐데.!’하는 느낌을 주는 그림.



따뜻한 눈물이 흘렀다.





때로는 슬픔에 젖어 푹 꺼질 때도 눈물을 터뜨린다.



최근에 외로움이 사무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질 않아서, 부족하고 못난 내가 괴로워서, 쏟아 엎지른 시간들이 후회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이 SNS를 헤매이다 순간, 뿌엥!! 하고 울어버렸다(영유아가 따로 없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소용없었다. 그냥 이건 안 되는 거다! 그냥 난 외로운 거다! 그냥 이건 막힌 거고! 난 힘든 거다! 삶에 그런 순간도 있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그냥 울어버렸다. 꺼이꺼이.



꺼이꺼이 울다가 ‘아 맞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살다가 울면서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순간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그게 없나, 그래 있을 수 있지’ 하면서 묘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 뒤에 시간이 지나면 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때 즐거웠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다가도, 이젠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나의 세상과 그의 세상에서 서로는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그 갭에 슬픔을 느끼게 되고 만다.


어느 퇴근하는 밤, 버스 차창을 보며 혼자 갑자기 눈물이 또르륵 또르륵 떨어지는 날이 그랬다. 그럴 땐 모자를 쓰든 남들 시선을 살짝 피하고 그냥 운다.

이건 그리움의 눈물, 떠나보냄의 눈물이다.


슬플 때는 우는 게 더 마음이 좋았다.



울지 못할 건 또 무언가. 나는 내 눈물이 싫지만은 않다.




누군가 슬픔과 우울은 수용성이라 했는데,

정말 울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다.


우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일 리가 없다.


아기가 태어나면 먼저 하는 게 우는 거고

우는 순간은 살면서 접하기 드문 경험도 아니다.


다만 눈물은 감정을 동반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양하기에


이 눈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할 수는 있겠다.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나의 감정을 더 선명하게 느낀다.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좋은 순간이다.


방금 마음이 어땠어? 뭘 느꼈니? 그리고 뭘 원하니.






가장 뜨겁고 힘든 눈물은,

엄마한테 오래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전할 때 나오는 눈물이다.



그때는 불가항력적으로 눈물이 난다.

이때만큼 뜨거운 눈물이 없다.

마그마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눈물이다.



엄마한테 맨 정신으로 대화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


웃긴 건 엄마도 대답할 때 눈물을 흘리신다.

난 역시 엄마를 닮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엄마 그때 나 서운했어,

엄마 사실 나 이러이러길 바랬었어,


엄마, 나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

죽음에 대한 얘기, 난 무서워,


엄마 그냥 한 번은 미안하다고 해주면 안 될까?


엄마랑 사실 잘 지내고 싶어

나도 좋은 딸이고 싶어








어쩌면 평범하고 누구나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감정을 과하게 느끼는 사람일 테다.


내 내면의 프리즘은 작은 자극도 크게 펼쳐 확대해 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나는 많이, 자주, 여러 가지로 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때로는 과하게.

때로는 이해되지 않게.

대개는 아이처럼.



분화되지 않은 감정들은 눈물이 되어 나오고,


감정을 스스로 읽어주고 생각해 주는 내면의 힘은 아직 성장 중이다.



할머니가 되면 조금 달라질까?

아마 내가 얼마나 마음을 닦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나는 사랑받기 위해 더 목소리를 높이고,

관심받기 위해 과장되게 이야기를 꾸미고,

이해받기 위해 호소하던 아이였으니,

나의 눈물들은 과거에 쌓아온 나의 생존 그 자체만큼이나 내 삶에 켜켜이 새겨져 있을 테다.




상황에 의미를 더하고 눈물을 짓는 나라는 사람은

지금의 내 모습의 일부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고 이해하기 위해

눈물 많은 나의 모습을 남겨본다.



눈물은 아직 아기 같은 스스로의 내면을 만나는 통로.



세상에 수없이 많은 눈물 동지들에게도 응원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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