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적 사랑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by 테우리

드문 기회가 생겨 오전에 강남구 비싼 아파트 앞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사치를 부려봤다.



주중이라 넓고 잘 가꿔진 카페는 한적한 편이었다. 옆 테이블 대화가 잘 들릴만큼.


옆자리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애와 엄마가 앉아있었는데 아마 수학 숙제를 푸는 중인가 보다. 남자애는 눈썹이 짙고 피부가 하얀 게 참 미소년이었다.



요즘 저 나이에 이 동네 살면 밖에 나가 놀 일이 없을 성싶긴 해서 괜히 짠한 마음이 들면서 그 모자가 하는 대화가 괜히 더 편견 있게 들리게 되었다.



처음엔 다정하게 모르는 문제에 답해주던 엄마가 점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압박을 주면서 - 아마 실제로 그런 거겠지만 - 아이가 점차 집중력이 떨어지자 왜 딴짓을 하냐, 그러니까 아직 다 못 푼 거 아니냐, 야! 이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내 마음속 시나리오.


밖에서 야- 할 정도면 집에서는 더 큰 소리를 내지 않을까. 애는 불안해지니까 더 집중 안되지 않았을까. 딴짓하는 거 할 수도 있는데 너무 뭐라 하는 거 아닌가. 저 애도 장래희망을 의사로 써내고 이 동네에서 개업해서 여러 예쁜 여자들 만나며 다시는 성공한 집안의 미남 의사가 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 무렵 아이가 눈물을 터뜨렸다. 막 서럽게 우는 건 아니고 못하겠다 찡찡 거리는 느낌. 엄마는 단호했다. 아주 막 호통치신 건 아니라 충분히 엄마라면 그럴 수 있지 싶긴 했지만 몸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거 다 안 풀면 재미없을 줄 알아.’


울지 마! 시간 안에 다 풀어야지. 집중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네가 딴짓해서 그렇잖아. 엄마가 몇 개 틀려도 봐준다고 했잖아 오늘. 다 풀어봐. 노력하면 할 수 있어.



그래서 결국 다 해냄.

바로 채점하는데 앞에 다 맞아서 엄마가 매우 기분 좋은 목소리로 다 맞았네~ 해주는 소릴 들으며 나는 이 장면에서 떠났다.





사실 너무 흔한 장면이다.



예전에 과외학생은 이보다 더한 환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는 8살이었고.



뉴스 조금만 찾아보면 이보다 더 한 스케줄 속에서 공부에 매진하는 강남구 청소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난 그 엄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진짜 위하는 걸 수 있고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아이도 엄마를 매우 사랑하는 걸로 보였다.



아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어딘가.



그 엄마도 열심히 살아내서 좋은 집안에서 나고 자라 본인 성취도 하고 결혼도 잘해서 그런 좋은 아파트에서 잘생긴 남편 닮은 아들 낳고 행복하게 살아보니 내 아이에게도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걸 수도 있다. 또 주변애들 다 잘하는데 우리 애만 기죽일 수 없지 않나!



그 아이도 잘 버텨내고 잘 따라간다면 과업들을 달성해 내 자랑스러운 아들, 명예로운 사회인이 되어 부와 명예, 미인을 상으로 얻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강남구에 개원하여 또다시 부모님이 그러신 것처럼 작은 왕국을 만들어 자식 교육을 열심히 시킬지도 모른다.





마치 게임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공부 열심히 하고 그만한 지위와 인기를 얻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삶의 공식, 법칙, 원칙처럼 느껴지는 도식이다. 아니면 나만 그런가?




그래서 그만한 성취를 해냈는데 보상이 내 맘대로 따라오지 않을 때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그만한 지위를 가지면 남들을 내 뜻대로 부려도 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자기 성취는 자기 스스로 애써 이룩해 낸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감정은 하찮게 여기기도 하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내가 그 옆테이블에서 읽고 있던 건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정신분석가가 쓴 책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아무리 관심과 찬사를 받아도 구멍 뚫린 독처럼 채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아이는 오늘의 퀘스트를 깨서 엄마의 칭찬을 얻었고 아마 열심히 주어진 과업을 달성해야 보상이 주어진다는 행동 회로가 뇌의 전전두엽피질에 깊이 새겨져 왔을 것이다. 인간은 보통 그러면 미래에도 그 회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회로는 대개 사회적 동물로서 수치심을 피하고, 몸과 마음의 안정을 지키려 하며, 애착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이는 엄마가 날 사랑한다는 안심을 얻고 오늘의 보상을 달성했다! Yay!








근데 말이다. 오늘 들은 칭찬이 정말 진정한 사랑과 관심일까?




그 애가 어떤 마음에서 하기 싫었는지, 하기 싫었는데도 참고 애썼는지, 우리는 듣지 못했다. 그 애 엄마는 알고 있을까.





처음 심리상담 이론을 접하게 되는 학생들은 누구나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상담은 빠지지 않고 배우게 된다.



로저스는 무-조건적 사랑의 태도를 지향하자고 하며 사랑을 받는 사람이 fully function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조건적 사랑은 내가 -를 해야지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는 전제가 붙는 반면, 무조건적 사랑은 내가 -를 하든 안 하든 나는 사랑받는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백 프로 이런 사랑만을 받기란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녹록지 않은 곳이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또 노력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요새의 가정들을 보면, 조건적 사랑만이 존재하는 나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게임에서의 보상이 주어지듯, 사랑도 그렇게 내가 뭔가를 해야 주어진다.

노력했는데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랑을 받는다는 건 이상하고 의심할 일인 것이다.





그렇게 보상 회로만 따라가다 보면 뭔가 많이 이루고 성취했는데도 속이 공허하고, 크게 기쁘지 않고, 삶이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도파민만, 또는 기존의 방식을 더 강화시켜 더 노력하고 더 많은 보상을 좇는 대처를 하게 된다.




트럼프나 머스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보일 때가 있다. 만족이란 없고 끝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가오나시 같은 모습. 내가 너무 성공한 사람들을 열등감에 쌓인 사람 같이 보는 걸까나 ㅎㅎ





성공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고 쉽지 않은 길이다. 다만 그게 삶의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정작 그 끝에 달성하고 싶었던 진정한 만족, 관심 어린 사랑, 이런 걸 얻지 못한다면 이 보상회로는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자기만족?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사람들이 호소하는 공허감을 보고 만들어진 게 나르시시즘 - 자기애성 성격장애이며, 이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갈수록 나르시시즘은 다른 게 아니라 프로이트가 맨 처음 말했듯 어린아이의 자기애 발달 수준이 고착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내 뜻대로 세상이 따라주길 바라고, 내가 최고였으면 좋겠고, 좋은 사람들이 날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고 아껴줬으면 좋겠고, 나는 실패나 좌절을 피하고 싶고, 노력했으면 응당 보상이 따라와야 하며, 좋은 것들은 내 것이길 바란다. 책임이나 힘든 건 지고 싶지 않고 모른 채 해도 별 문제는 없길 바란다.




그게 할아버지 할머니 될 때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르시시스트의 일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세계 환생 소설이 인기 아닐까.



각박한 세상 속에 그래도 엄마아빠라도 내 편이고 ‘나’에게 관심 가져주실 때 우리는 마음이 채워지는데 그게 없이 계속해서 조건적 사랑을 받기 위해 애써 오니 그게 먹히지 않을 때 세상과 타인에게 분노하고, 그 기준이 적용되도록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겪어보면 다들 알 듯, 세상이 내 뜻대로만 되는 곳이 아니다. 천재지변, 질병, 장애, 사고, 하다못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



노력해서 사랑을 얻어내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세상이 잘못된 곳처럼 느껴지고 화가 날 수 있겠다. 만연한 분노, 평가절하, 비난과 억울함, 싸움들. 노력 없이도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았다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나르시시즘이 별게 아니고 그냥 몸만 크고 머리만 좋은 파괴적인 아이 상태라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고 있다. 문제는 그 아이가 너무 지능적이고 너무 타인 공감을 하지 못해 타인에게 주는 피해가 크다는 것일 뿐.




사실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고, 서로 조율하고 맞춰가야 한다는 걸, 노력 죽어라 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서로 불공평하게 갖고 태어난다는 것,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거 같은 게 사실 남들보다 가진 게 많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 실패나 좌절 없이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타인은 나를 안 좋아할 수 있고 떠날 자유가 있다는 것. 관계와 행동에는 좋든 싫든 책임이 따른다는 것. 그걸 누구나 그렇듯 나도 피할 수 없다는 것. 괴로움과 슬픔, 좌절도 누구나 그렇듯 내 삶에 있을 것이란 걸. 이런 당연한 것들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여야 아이는 어른이 된다.



책에도 나오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는 크나큰 실패나 상실을 경험해 그동안의 전략이 먹히지 않는 걸 깨달을 때라지 않는가. 오히려 실패와 좌절이 그들이 알껍질을 깨게 돕는 기회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나르시시스트들이 치유된다는 것은 결국 아이를 진정한 어른이 되도록 돕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너무 어렵다



한 강의에서 나르시시즘이 나아졌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여쭤보니 감사함을 느낄 줄 알 때, 그리고 사랑을 베풀고 할 수 있을 때라는 말을 들었다.




속이 비고 구멍 뚫린 항아리는 밖에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채워 물이 밖으로 쏟아지는 화수분이 될 때, 물에 푹 잠겨 사방에 물이 가득할 때 비로소 채워지는 것과 같았다.




아마 우리 윗 세대들도 조건 없는 사랑을 많이 받아본 적 없어서, 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덩어리에서 생존 외에는 사치여서 더 이런 경향이 심한 건지 난 모르겠다.



다만 돈이나 성공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도덕이나 다정함 같은 가치를 경시하기 쉬워지는 듯하다.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괴로움이 줄어들려면 이 땅에 보다 많은 사랑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사회에 사랑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덜 불안해지면 불안을 자극하는 시장이 줄어드는 게 단점이겠지만.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고 위험을 감내하는 사람들과 가치 있는 것들에 감사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나부터 어른이 되어보자. 진정한 어른이 많다면 우리 사회도 좀 더 살맛 나지 않을까.






*ps. 부와 명예를 달성한 분들 중에 오히려 속이 깊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절대 나르시시즘이랑 정비례하는 게 아니니 곡해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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