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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집에서만 만나기를

by 자몽


(2장은 일부 <CEO와 한 집에 삽니다>와 내용이 중복됩니다. 왜냐하면 2장은 남편과의 이야기고, 이 글들을 올리게 될 줄 모르고 연재를 하면서 좀 가져다 썼거든요. :)


간극, 사실 그건 부부간에 흔한 일이다. 원래 사람은 자기랑 반대 성향에게 끌린다지 않던가. 성격이 반대여도 다들 잘 산다. 한쪽이 똑똑한 게 뭐 대수라고. 그래. 적어도 우리가 따로 일했다면, 남들처럼 직장과 가정이 분리되었다면, 그가 내 상사가 아니었다면 그까짓 거 별 문제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했어야 했다. 앞으로의 날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예상을 했어야 했다.




언제나처럼 사무실에는 바쁘게 타자 치는 소리만 들린다. 한남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원목 느낌의 책상을 새로 들였지만 딱딱한 분위기가 누그러지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이너가 이쁘게 포장을 입힐 수 있도록 화면을 설계하는 게 내 일이다. 이 페이지에는 어떤 버튼이 들어갈지, 중요한 게 뭔지, 어떤 이미지가 들어갈지, 버튼을 클릭하면 어디로 연결될지 등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
‘하......’ 한숨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일을 하다 보면 개발 쪽 확인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하필이면 까칠한 개발자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다른 개발자들은 괜찮은데, 이 사람에게는 물어보기 싫다.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알아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도 있으니까.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다시 심호흡을 한다. 발을 옮기는 게 유난히 무겁고 느리다. 작은 사무실이라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도 그의 뒤통수가 보인다. 뒷모습만 봐도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의 리듬에 따라 까만 화면에 알 수 없는 코드들이 쌓인다. 지금 얼굴이 얼마나 구겨져 있을지 안 봐도 훤하다. 내 남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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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톡 쳤다. “지금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목소리에서 '조심'이 묻어있었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그때, 그가 나를 향해 휙 돌아본다. 슬프게도 구겨진 정도가 아니라 분노가 섞여있다. ‘아니구나, 물어보면 안 되는구나. 지금 물러나야 할까? 그래도 나는 기획자잖아, 알려만 주면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입에서 차마 나오지 못한 문장들이었다. “하나씩 물어보지 말고 모아서 한꺼번에 물어보세요.” 내가 뭐 그리 자주 물어봤다고. 그거 말할 시간에 대답을 해주면 될 것을. 부글부글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알아야 진행을 하는데, 언제 물어보라는 건가요?”

“매시 50분에 알람 맞추고 질문하세요.”


어이가 없다. 이제까지 수많은 개발자들을 만났고, 기획자가 질문하면 늘 친절히 알려줬다. 회사는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 필수인데, 다 본인에게 맞추라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싫으면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개발을 하시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영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개발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맥을 끊으면 다시 거기까지 들어가는데 오래 걸린다는 사람이니까. 그런 부분에 예민한 걸 잘 아니까. 문제는 저 사람의 말하는 태도였다. 늘 저 표정과 말투 때문에 화가 난다. 날카로운 말투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고, 미간의 찌푸림은 ‘너 짜증 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일하지 않았을 거다.


남편은 결혼 직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첫 창업을 했다. 그사이 나는 '엔씨소프트(NCsoft)'라는 게임 회사로 옮겼고, 복지 혜택을 누리며 잘 다니고 있었다. 오래 준비했던 남편의 창업은 실패했고, 곧 우리는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가 직장을 일본에 잡았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도 포기하고 갔으니 그곳에서 자리 잡고 살 줄 알았다. 그래서 막 일본에서 라인 서비스를 준비 중이던 네이버에 면접도 봤었다. 첫 아이 임신 8개월 때였는데, 출산하고 와서도 일 할 마음이 있으면 다시 연락 달라는 말에 찬란한 미래도 꿈꾸었다. 어린이집도 알아보고 있었고, 더 큰 집으로 이사 가야 하나 찾아보던 중이었다.


하지만 남편 대학교 선배라는 사람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이 바뀐다. 같이 스타트업을 해보자는 선배의 말에 남편은 긴 고민 없이 승낙했으니까. 그렇게 첫째가 7개월이 되던 무렵 우리는 다시 짐을 싸야 했다. 이번에도 나는 함께 짐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 취업의 기회는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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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 남편의 두 번째 스타트업이 시작되었다. 아직 아이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 선배는 대표였고, 남편은 CTO(Chief Technology Officer, 기술 총괄책임자)였다. 학교 후배 두 명도 곧 합류했다. 카이스트 공대생 네 명이 강남역 한 아파트에 모였다. 그곳이 회사였다.


어느 날 아파트로 남편이 나를 불렀다. 아이는 친정에 맡긴 채 오랜만의 외출에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조심스럽게 아파트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어수선했다. 텔레비전과 소파가 있을법한 거실에 책상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작은 방에도 책상이 차지했다. 안방에는 큰 테이블과 의자 여러 개가 보였다. 한 구석에 앉아 대표를 처음 만났다. 그 자리에서 회사에 합류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남편은 옆에서 “원하면 커피숍에 가서 일해도 돼”라며 거들었다. 커피숍이라니! 역시 스타트업은 다르구나 생각했다(실제로는 단 한 번도 커피숍에 가서 일하지 못했다).

우리는 4년 반을 함께 일했다. 사람들이 늘고, 사무실을 여러 차례 옮기고, 서비스와 사명이 바뀌고, 일본 회사로부터 투자받고, 미국 회사에 회사가 팔리는 동안 나는 그의 옆에서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일은 재미있었다. 작은 회사이기에 내 의견이 바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수많은 답지 중에서 집중할 한 가지를 정하고, 빠르게 만들고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남편은 후에 새로운 회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꾸려가고 있는데, 함께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경험 덕에 (안타깝게도) 남편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함께 일했던 걸 후회한다. 회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스타트업에 부부가 함께 일하는 건 모험에 가깝다. 스트레스가 많았고, 둘 다 예민했다. 덕분에 우리는 참 많이도 싸웠다. 회사에서 싸우면 집에서도 냉랭한 기운이 이어졌고, 집에서 싸우면 회사 일에도 지장을 줬다. 이 까칠하고 불편한 상사는 출근하면 회사에, 퇴근하면 집에 버티고 있었다. 여느 집 남편은 상사 흉을 보면 같이 욕도 해준다는데 나는 그럴 수도 없었다. 회사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는 남편의 선배와 후배만 있었고, 나는 동료 이상 가까워지기가 어려웠다. 중간에 남편이 대표로 바뀌고 나자, 행동하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혼자가 된 듯 외로웠다.


스크린샷 2025-10-25 오후 1.42.51.png 어차피 인생 혼자 가는 거긴 하지


거기에 아이를 친정에 맡긴 죄책감도 더해졌다. 같은 회사에,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는데도 남편은 본인이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 듯 말을 뱉었다. 대표니까, 책임감이 더 클 테니까, 일이 더 바쁘니까,라는 이유로 그를 이해해보려 했다. 눈치를 살피다 먼저 퇴근해 친정으로 달려가는 것도, 친정 엄마의 지친 표정을 보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졸려하는 아이가 집에 갈 때까지 잠들지 못하게 긴장하며 말을 계속 걸던 것도 내 몫이었다. 매일 미안했다. 차오르는 눈물을 매일 구겨 넣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힘들다 말할 곳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넘었다. 다시 부부관계로 돌아간 세월이 강산도 변할 만큼 길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엔 모자란 시간인가 보다.


나는 지금도 남편이 “자기야!”라고 부를 때마다 긴장된다. 순간적으로 그의 목소리 톤을 살피고, 단순하게 내가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판단한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자라면 ‘나는 남편이 필요할 때 온 집을 찾아다니는데, 왜 남편은 늘 나더러 오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고, 후자라면 분명 나에게 뭐라고 할 테니까. (가끔은 남편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 멀리 도망갈 때도 있다.)


가장 편해야 하는 게 부부사이 아니던가. 아직까지 마냥 편하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4년 반을 상사로 모신 기억이 우리의 상하관계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가 같은 회사(특히 가족의 생계가 달렸는데 미래가 진흙물처럼 뿌옇기만 한 작은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면 진지하게 뜯어말리고 싶다. 부부는 집에서만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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