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토너먼트장에서의 생각 06
사람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까?
토너먼트장에 앉아 노트를 펴고 메모를 시작했다.
하루 동안 스쳐간 무수한 생각 중 23개가 노트에 담겼다.
잊힐 수밖에 없는 '생각'들을 메모로, 다시 글로 붙잡아 두기로 했다.
사실 앞서 올렸던 엄마 때문이라고? 에서 첫째가 단식 준결승 경기를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둘째의 경기도 진행되고 있었다.
둘째는 본 경기가 아닌 패자부활전 비슷한 consolation 경기였고, 상대를 보니 가망이 보이질 않아서 나는 첫째 쪽에 있던 것. 게다가 첫째 쪽 경기에서 라인 심판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끔 멀리서만 봐야 했다.
만 11살인 둘째는 또래 중에서도 키가 작다.
안타깝게도 보고 있자면 '좀 커야 하는데...'라는 마음부터 든다. 성격은 까칠한데 웃기만 하면 눈웃음이 베여있어 사람들에게 호감을 산다. 그래서 유독 둘째를 귀여워하는 어른이 많다.
경기의 상대는 어른이었다. 빨간 티를 입은 키 큰 인도 아저씨. 아마 내가 옆에 서도 나는 어린이로 보일 만큼 멀리서도 유독 덩치가 도드라져 보였다. 성인 남자는 아무리 배드민턴을 못해도 힘을 당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덩치도 컸으니...
토너먼트에서 모든 경기는 꽤나 긴장감이 흐르기 마련이다. 이미 진 사람들끼리 하는 경기라도, 동네 토너먼트라 할지라도 똑같다.
하지만 둘째의 경기는 달랐다.
슬쩍슬쩍 둘째가 하는 경기를 볼 때마다 활짝 웃는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둘만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공기부터가 달랐다. 의아해서 시선이 자꾸 꽂혔다.
가만 살펴보니 이 아저씨, 아이 공격이 잘 들어가면 엄지 손가락도 척 올려가며 칭찬해 준다. 뿐만 아니다. 아이가 받기 쉽도록 공을 넘기는 게 아닌가?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어른이건 아이건 토너먼트장에서는 봐주는 일은 없었다.
모두 최선을 다했다. 이기기 위해. 상대가 어리든, 작든, 못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었다.
하. 지. 만....
분위기가 너무 화기애애하다.
가르쳐주며 하는 경기라니.
나중에 본 스코어는 첫 판이 21대 19. 아들이 졌다.
두 번째 판은 21대 15. 또 아들이 졌다.
그래서 세 번째 판은 없었다.
얼핏 비등해 보이는 점수지만, 아들이 잘해서가 아닐 거다. 이건 그냥 그 어른의 배려일 뿐이다. 조금 더 기회를 주고, 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수에서 전해졌다. 따뜻했다.
어른이 과연 뭘까?
만 19세가 되면 누구나 성인이 된다. 내가 아무리 거스르고 싶어도 매일 해는 뜨고, 살아만 있다면 19세가 되고, 그렇게 성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라고 모두 '어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사전에서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을 어른이라 칭하던데, 나는 그보다는 더 복잡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포함되어야 하며, 그게 스며들어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가만있어도 성인은 되겠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생각한다. 배려 없이 자기만 아는 옹졸한 60세를 무조건 어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이유다.
저 인도 아저씨를 보면서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보다 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내뿜는 배려와 따뜻한 미소가, 아이를 대하는 자세에서 그걸 느꼈다. 덕분에 아이의 편안한 미소가 번져 나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일까? 나도 그런 배려를 품고 살고 있을까?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뭐든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