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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Oct 06. 2024

내가 게임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몹시 피곤하냐면

배드민턴 토너먼트장에서의 생각 07 


사람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까?
토너먼트장에 앉아 노트를 펴고 메모를 시작했다. 

하루 동안 스쳐간 무수한 생각 중 23개가 노트에 담겼다.
잊힐 수밖에 없는 '생각'들을 메모로, 다시 글로, 붙잡아 두기로 했다. 


엄마, 너무 피곤하다
왜? 엄마가 게임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아침에 도착해 저녁까지 종일 한 일 중 90%는 가만 앉은 채로 먹거나, 게임을 지켜보거나, 책을 읽었을 뿐이다. 나머지 10% 시간 동안 조금 움직이긴 했다. 화장실을 갔고, 앉아있는 자리를 이동했으며, 중간에 아이들 점심을 사러 나갔다. 


반면에 첫째는 아침에 도착해 5개의 경기를 했다. 

한 세트에 적어도 10분에서 길게는 20분까지도 하는데, 어떤 경기는 3세트까지 갔다. 어림잡아 생각해 봐도 120분에서 180분 정도는 계속 뛰고 있었던 거다. 고도의 집중을 해가면서. 


경기 때만 뛰는 것도 아니다. 경기 시작 전마다 최소 15분 정도는 웜업 시간도 있다. 이 아이들은 노는 게 배드민턴이라 중간에 코트가 비면 애들끼리 공을 치면서 놀기도 했다. 
그 나머지 시간에는 다른 경기의 주심을 보기도 했고, 그 나머지 시간엔 먹거나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거나 친구들과 놀았다. 


고양이가 배드민턴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고양이가 좋아서;;;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지 가만 생각했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생각이라도 했다. 

아이와 나의 운동양을 비교해 보면서 일단 놀랐다. 3-4시간 뛴 아이와, 가만 앉아있던 내가 똑같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니! "엄마도 운동 좀 해!"라던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직접 뛰는 아이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사실 내 귀와 눈과 뇌는 바빴다.
나는 주변 자극이 클수록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다. 그래서 산에서 4시간 걷는 것보다 쇼핑몰에서 30분 걷는 게 더 피곤한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있고, 온갖 소리가 섞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지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 지친다. 

그래서 고속도로보다 조금 느려도 한산한 샛길이 좋고, 여러 사람보다는 한 사람과 대화하는 걸 선호한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보다는 덜 맛있어도 한산한 곳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렇게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곳에서 맛까지 느낄 감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토너먼트장은 어떤가.
여기선 한 번에 10개 이상의 게임이 동시에 진행된다. 내 눈은 여기로 저기로 옮겨 다니기 바쁘다. 점수는 몇 점인지 세고 있고, 그들의 공격과 수비를 지켜본다. 누군가의 성장에 기쁘고, 누군가의 좌절에 같이 마음이 아프다. 간혹 친한 엄마를 만나면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같이 응원도 한다. 쥐 죽은 듯이 진행되는 경기는 없기에 수십 개의 소리가 엉켜서 내 귀에 담긴다. 이미 포화상태다. 


그런데 만약 내 아이가 경기를 한다? 내가 집중할수록, 내 감각은 더 예민해진다. 첫째의 다섯 경기와 둘째의 세 경기. 그걸 보는 것만으로 내 에너지는 고갈된다. 마이너스다. 


그래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감각을 차단하고 책을 들여다본다. 메모도 한다. 

하지만 주변의 경기는 너무 흥미진진하고, 나는 이내 책을 덮는다. 


그게 내가 가만 앉아있어도 피곤한 이유다. 

이만하면 설명이 되었을까, 아들아?! 

(여기에 쓰면 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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