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아끼기 어려워서요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먹는 데에 얼마나 쓸까?
예전에 식비에 대해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5인가족 1,500불(208만원) 정도 예산을 잡으면 어떠냐는 '질문' 글이었는데 참 다양한 답이 달렸다. 대부분은 너무 적다 말하고, 일부는 충분하다 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꽤 예민했고, 공격적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댓글은 애들 매일 시리얼만 준다는 댓글이었다. 1,500불로는 제대로 먹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어떤 분은 친절하게 계산도 해줬다. 저 예산은 한 명당 한 달에 300불을 쓴다는 이야기인데, 그럼 인당 하루에 10불, 한 끼에 3.3불(4,600원)이기 때문에 말이 안 된다는 거다.
실제로 댓글에는 본인 가족의 식비를 공개한 사람이 100명이 넘었는데, 어떤 4인 가족은 매달 4천 불(555만원)을 쓴다고 했다. 적게 쓰는 사람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식비에 돈을 많이 쓰고 있었다.
처음엔 질문 글이었지만, 나는 구구절절 변명을 해야 했다.
"한국 마트와 코스트코 자제하고, 로컬 마켓만 다니면 일주일에 375불로 사는 건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그날 밤, 남편과 마주쳤다. 화장실로 향하던 남편이 말한다.
"1,500불은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뉘앙스가 거짓말하지 말라는 투다. 예전에 쓴 가계부 내역이 다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격당하는 건 그렇다 치지만, 함께 사는 사람은 그러지 말아야지.
사실 우리 집은 전체적으로 돈을 많이 쓰는 편이다. 이 중 내 손으로 줄일 수 있는 품목은 식비가 거의 유일하다. 때문에 그간 식비를 줄이려 노력했건만, 같이 사는 사람은 그걸 모르고 있었나 보다. 짜증을 꾸욱 누르고 가계부의 내역을 말해줬다.
"자, 3월은 마트에서 쓴 거 913불이랑 외식비 244불 해서 1,157불을 썼어. 4월은 다해서 1,300불 정도 썼고. 2월이랑 5월은 1,600-1,700불 정도 썼네"
남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다시 묻는다. "그럼 대체 어디 돈이 그렇게 많이 나가는 거야? "
기본적으로 나가는 것도 많거니와, 매달 새로운 이벤트가 있다. 그러니 이유는 매일 다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 집 전체 지출에 식비가 대단히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시고, 아빠는 보쌈 한 번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한국 마트에 가자고.
한국 마트에서 잘 다듬어진 삼겹살 고기는 비싸다. 나는 거기서 고기는 사지 않는다. 코스트코도 아니다. 내가 고기를 사는 곳은 그냥 동네 마트다.
1. 고기는 소분해서 씁니다.
마트에 가면 돼지고기 덩어리를 판다. 목과 어깨까지 이어지는 부분이다. 두꺼운 비닐에 싸여있는 그 한 덩어리의 가격은 20불 정도다. 조금 더 작은 건 15불도 하지 않고, 가끔은 50% 세일도 한다.
이 한 덩어리에는 결 따라 기름이 있는 부위가 있다. 우리가 삼겹살이라고 부르는 모양과 똑같다. 여기는 삼겹살이나 수육을 해 먹으면 된다. 나머지는 기름이 섞인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나는 날 잡아 이 덩어리를 소분한다. 넓적하고 길게 썰어서 칼집을 내면 돼지갈비 용이 된다. 나머지는 새끼손가락 정도로 모두 썰어둔다. 김치찌개, 제육볶음, 짜장, 두부김치 등으로 쓰인다. 이 한 덩어리면 거짓말 보태지 않고 5끼는 먹을 수 있다.
2. 식단을 짜서 생활합니다.
나는 월요일 아침이 식단을 짜는 날이다. 이면지 한 장을 비장하게 편다. 한쪽에 냉장고와 팬트리에 남은 재료를 모두 적고, 그걸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다른 한쪽에 적는다. 10개의 메뉴가 나와야 한다. 점심 도시락 5번(월요일은 이미 싸갔지만, 토요일까지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저녁 5번. 주말엔 남은 걸 없애거나, 외식을 한다. 10개가 나오지 않으면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면 된다.
10개가 만들어졌으면 리스트 옆에 점심 도시락은 L, 저녁은 D로 표시한다. 굳이 요일을 적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주를 살 때 필요한 재료들을 적는다. 그러면 생각보다 많이 없다.
3. 마트를 자주 가지 않습니다.
적어놓은 종이를 북 찢어서 나는 바로 마트에 간다. 월요일은 나에게 장을 보는 날이다.
계란은 홀푸드에 가서 좋은 놈으로 사는데, 18구짜리 3판을 산다. 우리는 계란을 많이 먹는다. 이것만 해도 40불 정도는 나온다. 나머지는 근처에 있는 HEB라는 곳에서 산다. 많이 나와야 150불이다. 즉, 일주일에 보통 200불이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마트와 코스트코도 종종 간다. 한국마트는 유부초밥, 양념 등 그곳에서만 사야 하는 물건이 떨어질 때 가는데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다. 가면 250불이 우습게 나온다. 코스트코는 쌀이나 휴지가 떨어지면 가는데, 간 김에 이것저것 담으면 여기도 250불 우습다.
한국에서는 필요한 것만 자주 가서 사는 게 아낀다고들 하는데, 미국은 좀 사정이 다른 것 같다. 자주 갈수록 돈이 든다. 대량으로 사서 쟁이는 게 더 쌀 때가 있다. (그래서 냉장고들이 큰가 보다)
토요일은 가족 외식으로 정했다. 5명이 가면 200불 가볍게 나온다. 그래도 합해보면 한 달에 1,500불 정도라는 이야기다.
(우리 집 식비에 남편이 회사에서 사 먹는 비용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건 개인 용돈으로 본다. 게다가 남편은 평일에 저녁을 자주 먹지 않으며, 출장이 많다. 실제로는 4.5인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그렇다면 미국 평균 식비는 어느 정도 일까?
전에 찾아본 바로는 4가지 플랜으로 나누고 있었다. 검소한 가족과 많이 쓰는 가족까지다. 아래 데이터를 보면, 4인 가족은 최소 976불에서 많게는 1,584불을 쓴다. (2023년 3월 기사이고, 매년 식비가 오르는 추세이니 지금은 더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건 외식은 포함하지 않은 장보기 비용만이다. 어린 자녀 둘을 둔 경우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있는 경우라면 예산을 추가해야 한다.) 기사는 여기
Thrifty: $976
Low-cost: $1,059
Moderate-cost: $1,312
Liberal: $1,584
만약 14-18세의 남자아이를 키운다면, 거기에 주당 69.5달러에서 100달러까지 추가한다. 성인 남성보다 예산이 더 크다. 여자아이라면 평균 69달러, 9-11세 남자아이라면 평균 76달러를 추가하면 된다. (이건 다른 기사입니다)
예전에 가계부를 처음 쓸 때는 마트 예산을 700불로 잡았었다. 살아보니 가능은 했지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뒤로는 시행착오가 있었고, 지금은 4.5인 가족 기준으로 1,500불 정도를 예산으로 잡고 있다.
매번 계산하지는 않는다. 월요일에 두 군데 장을 보러 갈 때, 합해서 200불(28만원) 정도를 기준으로 잡는다. 나머지는 한국마트와 코스트코를 위해 남겨둔다.
지금은 부모님이 오셔서 양상이 좀 달라졌다. 심심하신 부모님을 위해 거의 매일 마트에 출근한다. 월요일에는 홀푸드와 HEB에 갔으며, 화요일에는 HEB, 수요일에는 코스트코, 목요일에는 크로거에 갔다. 금요일인 오늘은 한국마트와 트레이더조에 갈 예정이다. 중간에 외식도 했다.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파악도 어렵고 정신도 없다. 식구는 늘어났고, 자주 가고 있으니 당연히 돈이 더 들 수밖에 없다.
식비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양상이다. 식비만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에 대한 비용이라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 계시는 5주간, 나는 식비 계산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저 즐기기로. 그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