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월간 5개 치과에서 쓴 떼돈
나는 명품백이 없다. 다이아반지나 고급스러운 옷을 갖고 있지도 않다.
머리는 미국 살며 단 2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한 번은 파마, 한 번은 염색.
평소에 옷도, 신발도, 심지어 머리끈조차 거의 사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관심이 없을 뿐이다. 무언가를 사는 일, 즉 돈 쓰는 것은 나에게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아주. 매우. 상당히.
하지만 나에게는 돈 구멍이 하나 있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돈이 줄줄 샌다.
바로 치과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치과를 참 많이 다녔다. 이빨이 약해서도 있겠지만, 내가 치실의 존재를 너무 늦게 알아서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줄 알았다.
지난주, 오랫동안 견고하게 쌓여있던 내 생각이 와르르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다.
아는 동생 부부를 만난 자리에서, 동생 남편이 말한다.
"누나, 얘는 치실을 안 해요"
"... 치실을 안 한다고? (어떻게 치실을 안 해? 그러면 안 되잖아, 너 치과 한 번도 안 가봤다며. 썩은 적이 없다며. 그래서 치과의 그 징- 소리가 뭐지 모른다며. 치실을 안 하는데 이빨이 안 썩는다니,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아니야~ 나도 가끔 해" 동생이 웃으며 말한다. 살짝 당황한 말투다. 가끔은 아마도 상당히 가~끔 인 듯하다.
"아니에요. 얘 양치 대충 하고, 치실 안 하고, 그리고 다시 먹고, 그대로 자요"
이럴 수가.
나는 칫솔질을 하고, 치간칫솔도 쓰고, 치실도 쓰고, 가글도 하고, 가끔 워터픽도 쓰는데, 그래도 이따위인데.
막내를 낳고, 잇몸에 버블이 생긴 적이 있다. 두 번째였다. 누더기같이 온갖 곳에 치료를 하긴 했지만 결혼 후 열심히 관리하며 다른 문제도 없었다. 버블이 생겼을 때, 그때만 아팠다. 하지만 터트리고, 고름이 나오자 금방 괜찮아졌다. 난 괜찮은데, 의사는 심각하게 나를 바라봤다. 이거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 거라고. 믿지 않았다. 안 아팠으니까. 하지만 텍사스에 오고, 다른 의사마저 나를 똑같이 바라보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마침 한국에 갈 일이 있었다. 한국에 가서, 아빠의 손에 이끌려 을지로입구에 있는 한 허름한 치과에 갔다. 아빠 말로는 숨은 고수가 거기 있다고.
아주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우선 설명이 없다. 그냥 맡기라는 건가? 고수는 이런가? 입을 벌린 채 무기력하게 누워서 상상의 날개만 펼쳐야 했다. 여러 날 그랬다. 예전에 치료했던 3개의 이빨은 그의 손에 의해 다시 뽑혔고, 무언가를 하더니, 새로운 이빨로 끼워졌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잘 해냈다고, 간호사가 의사를 우러러보며 나에게 한 말이었다.
말도 없이 2개의 이빨을 브릿지로 붙여버리고, 잇몸이 부어서 치실이 들아갈 틈도 없었지만 가라앉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고수니까 어련히 잘했을 거라고 믿었다.
미국에서 다니던 치과에 갔다. 시키는 대로 치료하고 왔으니 칭찬을 기대했건만,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염증이 더 심해졌다고. 가서 뭘 한 거냐고. 대학병원에서 했냐고. 갔던 치과에 현미경 같은 게 있더냐고. 큰 병원 아니면 그런 기계가 없었을 건데 무슨 수로 다시 치료를 했다는 거냐고.
(낸들 아나요)
이제까지 미국에 살면서 정기첵업 때 말고, 다른 병원을 찾은 일은 없었는데. 그래서 신경치료하는 곳과, 임플란트 하는 곳과, 교정치과가 다 따로 존재하는 줄 몰랐다.
알려준 치과에 갔는데 다행스럽게도 토요일에만 근무하는 한국 의사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학 치과 외과에서 오래 근무했다는 그는, 현재 휴스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신뢰가 가는 인상이었다.
240불을 주고 CT부터 찍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그는 까만 화면에 떠있는 너덜너덜한 내 이빨들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상태가 다 좋지 않단다. 오래전에 치료한 것들이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나. 내 이빨인데, 내 돈이 나갈 일인데 의사는 폭 한숨을 쉰다.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그는 가장 심각한 4개를 먼저 치료하자 했다. 자기가 최대한 살려볼 거라고. 개런티는 못해주지만 경험이 많으니 믿으면 된다고. 아프지는 않지만, 만나는 의사마다 나 대신 걱정을 해주는 걸 보면 문제는 문제인가 보다 싶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사이 간호사는 종이 3장을 내밀었다. 비용이 자세히 쓰여 있는 종이다. 치료는 3번에 걸쳐 진행될 것이며, 한국과 달리 하루에 끝난다. (미국 치과는 앞으로의 계획과 비용을 먼저 알려주며, 돈을 내야 치료를 해준다)
첫 이빨은 보험에서 어느 정도 커버가 되어 463불만 내면 되었다. 하지만 1개는 1,062불, 2개 묶어서는 3,142불이 나왔다. 도합 4,667불,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630만 원이다. 신경치료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병원은 신경 치료까지만 담당하고, 그 이후 이빨에 뭘 씌우든지 말든지 알 바가 아니다.
일단 첫 번째 치료만 했다. 463불(87만 원)을 내고. 위치는 왼쪽 위 첫 번째 이빨.
첫 번째 치료는 무사히 끝났다. 아니, 할 수 있는 데까지 염증을 제거했다 들었다. 하지만 경과를 지켜보자며 오랜 기간 임시로 덮어두어야 했고, 나중에 일반 치과에 가서 씌우는 데는 1,000불(137만 원)이 들었다.
문제는 그 사이 계획에 없던 이빨에 통증이 시작됐다는 거다. 바로 지난번 치료한 이빨의 바로 아래. 왼쪽 첫 번째 이빨이다. 그간 아프지 않았는데 외부 충격을 받는 일이 있었고, 강항 통증이 덮쳤다. 가라앉는데 2주가 걸렸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야기했고, 249불을 주고 다시 CT를 찍었다. 지난번에도 찍었는데 왜? 싶었지만 그때는 한 개만 정밀하게 봐서 다시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이것도 50불 깎은 거다.
이번엔 신경과 수술을 해보자고 했다. 이빨을 뽑아 염증을 제거한 뒤 다시 끼워 넣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방식이다. 두 번째 치료 비용은 2,176불이 들었다. CT까지 하면 2,425불(332만 원)이 든 셈이다. 그리고 이 수술은 실패로 끝나, 후에 결국 다시 뽑아야 했다. 돈을 버린 셈이다.
여기까지가 2023년 6월 이야기다.
현재 2024년 10월인데, 사실 치과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후부터는 임플란트로 넘어간다. 2022년 여름부터 무려 2년 넘게 치과에 들들 볶인 셈이다.
여기부터는 기억에 의존한다. (4번까지는 블로그에 기록해 둔 게 있다)
휴스턴 북쪽에 가서 CT를 다시 찍었다. 신경치료에서 의사가 좀 더 좋은 기계로 찍어보자 했다. 그래서 다시 찍었고, 결론은 살리기 어려우니 임플란트를 하라는 거였다. 바로 한국에서 치료하고 온 3개 중 2개였다. (3개 중 1개는 다시 치료를 했고, 2000불 정도를 다시 냈다)
소개받아 간 임플란트 병원은 인도 의사가 하는 곳이었다. 2개에 대한 치료 비용은 9천 불(1,232만 원)이 예상된다고 했다. 처음 이빨 2개를 뽑고, 뼈이식 하는 것까지 대략 2,400불(329만 원) 정도를 낸 기억이 있다. 2023년 8월 중순이었다.
이날 125불이 아까워 가스 마취는 하지 않았다. 의사가 권했지만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하지만 간호사가 내 머리통을 잡고, 의사가 내 이빨에 드릴 같은 걸로 뚫어대고(내가 느끼기 그랬다) 망치 같은 걸로 두드려댈 때는 조금 후회했다. 머리가 울렸다. 문득 이빨은 뼈보다 강하겠구나도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드릴 같은 것까지 등장했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이식 후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리는 사이, 나는 여기저기서 2개에 9천 불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씌우는 것까지 하면 몇 천 불이 더 들 것 아닌가.
그래서 다른 병원을 소개받아 상담을 받았다. 여기저기 살펴보던 새로운 의사는 왼쪽 아래 이빨, 즉 위 4번에서 치료했던 곳의 염증을 알려준다. 어쩐지 치료 후 늘 아팠다. 위인지 아래인지 모르겠지만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다. 염증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고, 수술 경과가 좋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실패였다.
이 새로운 의사는 그 이빨까지 3개를 6,000불에 해주겠다 말한다. 사람도 많았고, 소개해준 분도 만족했다 했다. 가격 차이도 있기에 나는 바로 예약을 한다.
하지만 이 사이에 여러 일이 있었다.
첵업 치과에서는 두 번째 임플란트 수술을 한 의사에 대한 나쁜 평판을 알려주고, 임플란트 각도와 높이의 문제를 지적했다. 씌우는 걸 어렵게 만들었고, 후에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말했다. 첫 번째 병원은 임플란트 실패를 한 사람들을 재치료해주는 아주 전문적인 의사라고 했다. 두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이빨에 기둥은 박혔는걸.
마지막으로 임플란트 병원에 첵업을 갔을 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의사는 자기는 이제까지 문제가 없었다고, 씌우는 걸 자신 없어하는 의사에게 맡길 수 있겠냐며 다른 곳에 가라 했다. 휴.
어찌 되었든 그런 문제를 지나, 이빨 3개의 임플란트가 끝났다.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6,000불보다는 더 들었다. 아마도 6,600불(904만 원) 정도가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작업은 씌우는 거였다. 각각 1,300불이 들었다. 3개에 3,900불이 든 셈이다.
이빨이 약한 상태라 했다. 본인 이빨이면 씹는 동안 자연스럽게 위아래로 미세하게 스펀지역할을 해주지만 임플란트는 그게 아니란다. 딱딱한 건 씹지 말고, 평소에 깨무는 것도 조심하란다.
그가 권하는 대로 이빨에 끼우는 투명한 걸 맞췄다. 하나는 낮용으로 얇고, 하나는 밤용이다. 200불이었다. 안타깝게 그걸 받아온 후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낮용은 날카롭고, 밤용은 한쪽이 아프다. 전화하고 가서 다시 조정을 해야 하는지 아직 가지 못했다.
치과에 쓴 비용
26개월의 치과 대장정이었다.
처음으로 그간 내가 치과에 퍼부은 돈을 계산하면서 많이 놀랐다.
그간 총 5곳의 치과에서, 3만 불(4,100만 원) 정도를 썼을 줄은 몰랐다.
모두 예전에 치료한 곳에서 생긴 문제다.
10대, 20대에 말이다.
나머지도 좋은 상태라 볼 수는 없지만, 최대한 잘 관리해서 잘 써보는 수밖에.
그리고 내 유전자를 받은 아이들이 좀 더 튼튼한 이빨을 가질 수 있도록 관리를 잘 시키는 수밖에. 아이들이 40대 이후에 돈 구멍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