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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Oct 04. 2024

왜 하필 이 시기에, 이게 터지고 난리인지

미국에서 집 팔기 02 


삑삑-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문이 살아있는 것처럼 다급함이 느껴진다. 현관문 가운데의 투명한 유리 뒤로 남편이 보인다. 미간이 살짝 찌그러진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뭘까? 보통 때는 차고로 들어오는 그가, 대체 왜, 저렇게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까? 내가 뭘 잘못했나?'

남편의 저 표정을 볼 때마다 늘 긴장된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문이 벌컥 열린다. 가만히 첫마디를 기다린다. 그가 나를 똑바로 본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 물 터진 거 못 봤어?" 


물이 터졌다니? 일단 내 잘못이 아니라 다행이다. 적어도 물을 내가 터트리진 않았으니까. 못 본 게 잘못이라 할 수는 없으니까. 

"아니, 1시간 전에 들어올 때는 못 봤는데" 

"지금 밖에 난리야" 


물론 이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랬다. 밖은 난리였다. 집을 바라보고 왼쪽 구석에 있던 수도가 터졌다. 콸콸 쏟아지는 물이 경사진 잔디를 거쳐 도로를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하필, 집을 내놓기로 한 이때에. 쇼잉(아마도 구매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보여주는 일)을 3일 앞둔 지금 말이다. 

아니다. 누가 집을 보러 왔을 때 물이 터졌으면 정말 곤란할 뻔했다. 그래, 그거보다는 낫다. 그래도... 조금 더 버텨주지. 왜 꼭 이런 시기에 문제가 터질까? 


남편이 급히 찾아낸 플러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그는 집의 수도부터 잠그고 남편에게 잠깐 뭐라 설명하더니 땅을 파헤쳤다. 오래 걸리지 않아 물은 멈췄다. 


남편은 미팅 중이었고, 인상 좋아 보이는 그 아저씨는 나에게 740불(98만 원)을 요구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랬길 바랐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럴 리가 없다. 그간 플러머 부른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아무리 긴급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배가 쓰리다. 역시 미국에서는 기술자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주기 싫다. 좀 억울하다. 카드를 꺼내는 속도가 한없이 늘어진다. 한숨도 폭 나온다. 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 그리워진 슬픔은 가려지지 않는다. 이 슬픔을 알아주길 바랐다. 할인 그런 거 좀 해주라고. 안 통한다. 차라리 울걸 그랬나 보다. 어쩌겠는가. 달라면 줘야지... 




집을 내놓기 한 달 전부터인가, 전자레인지가 돌아가지 않았다. 뜨거워는 지는데, 뱅글뱅글 돌질 않으니 어디는 차갑고 어디는 뜨거웠다. 그 유행한다는 트레이더조 김밥을 겨우 하나 건져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레인지에 넣었지만 이건 뭐.. 난리였다. 한쪽은 뜨거워서 만질 수가 없는데, 한쪽은 꽁꽁 얼어있다. 어쩔 수 없이 내 손이 뱅글뱅글 회전을 대신할 수밖에. 30초 돌리고 꺼내서 뒤집고, 다시 30초 돌려서 방향을 바꾸는 식으로 겨우 입에 넣을 수 있었다. 고생스러웠다. 그래도 그냥 참고 살았다. 


이렇게 잘 돌면 좋았을것을



집을 팔기로 결정했으니, 이제는 고쳐야 했다. 진작 고치고 살 것을.... 하아. 


가전 수리 기사를 불렀다. 출장비가 80불(10만 원)이었다. 괜찮은 금액이다.
그는 도착한 지 3분여 만에 나를 부른다. 활짝 웃으며 말을 던진다. "이건 못 고쳐.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부품이 비싸. 그러느니 그냥 새로 사" 명쾌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순간 혼란스러웠다. 
"부품 교체하면 얼만데?" 
"200불(26만 원) 넘을 거야"
"..." 

이미 80불에 200불이 추가라... 그가 쿨하게 떠난 후,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부품만 교체하는 게 싼 거 아닌가? 머리가 삐걱삐걱 계산을 시작했다. 
이 전자레인지는 가스레인지 위에 달린 형태였다. 그래서 공기를 빨아들여야 했고, 바닥에는 공기를 빨아들이는 필터도 달려있다. 필터. 사실 요 녀석 상태가 좋지 않았다. 청소로 해결하기엔 너무 멀리 왔고, 새 거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부품을 바로 교체해 줄지도, 작은 부품을 간다고 다 해결될지도 의문이었다. 한두 번 당했던 게 아니니까. 이런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없었고, 나는 집을 파는 일, 새 집을 세팅하는 일, 이사 등으로 머리가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점점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자꾸 돈이 나가면 내 머리가 이렇게 된다



코스트코 사이트를 찾아봤다. 350불(46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배송과 설치비가 포함된 가격이고, 기존 것도 다 수거해 간다. 그래, 지금은 빠른 해결이 중요하다! 

리얼터에게는 전자레인지 교체를 할 예정이라 고지하고 일단 쇼잉을 진행했다. 집은 팔렸고, 새 전자레인지는 새 주인이 사용하고 있을 거다. 


억울하지는 않다. 지금 이사 온 집은 모든 주방 가전이 새 거다. 냉장고, 오븐,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가 말이다. 벽에는 새로 칠한 페인트가 발라져 있고, 카펫도 새거라 뽀송하다. 심지어 5개의 변기도 모두 새 거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참 한 거 없이 잘 팔았다. 

먹고 먹히는 관계랄까. 

그나저나, 진짜 살 때 잘해놓고 사는 게 이득이다. 누릴 거 다 누리고!




예상하지 못한 비용

- 물이 터질 줄은 몰랐다. 이렇게 비쌀 줄도 몰랐다. 어쨌거나 터졌고, 돈은 나갔다. 740불(98만 원)이. 


진작 들어갔어야 하는 비용

미리 고치고 살걸 그랬다. 아니, 진작 새 거를 살걸 그랬다. 

- 가전 수리 기사 출장비 : 80불(10만 원)

- 전자레인지 교체 비용 : 350불(46만 원)


그 밖에 또 뭐가 들었냐면요

-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인스펙션을 했다. 창문이 이상하단다. 살면서 몰랐지만, 정말 이상한 거란다. 창문 견적을 받고 1,000불(130만원)을 줘야 했다.

- 이번에는 에어컨 바람이 약한 것 같단다. 인스펙션 업자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엉터리로 체크하는 것도 꽤 많다. 에어컨 전문 업체를 불러 다시 재야 했다. 100불(13만원)이 나갔다. 

- 이번엔 수영장 히터와 등이 안된단다. 이건 좀 큰 문제라 좌절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히터는 설정을 잘못한 거였고, 수영장 안에 등은 리셋 버튼을 찾아 누른 후에 들어왔다. 수영장 안의 조명은 하나에 1,200불(160만 원)이 넘는다. 등은 두개였다. 히터는 10,000불(1,330만 원)쯤 한다. 다행이다. 

- 물론 이사와 집 사는건 다른 문제다. 이사는 2,900불(386만 원) 정도가 들었고, 새로 들어가는 집의 인스펙션은 1,600불(213만 원)이 나갔다. 기타 등등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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