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집 팔기 01
집을 사는 게 힘들까, 집을 파는 게 힘들까?
그러면 집을 파는 게 힘들까, 이사가 힘들까?
미국에 사는 9년 동안 다섯 번 집을 샀다. 캘리포니아에서 한 번, 텍사스에서 네 번. 그리고 그중 두 곳을 팔았다. 남은 세 곳 중 하나는 지금 살고 있으며, 두 곳은 에어비앤비를 돌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첫 집을 살 당시에는 셀러 마켓이었다. 사려는 사람은 많았고, 때문에 웃돈을 얹는 건 기본이었다. 집에 하자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고 사야 했으며,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따로 편지까지 써야 하는 시대였다. 나오는 족족 사라졌다. 그래서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고, 그중 꽤 여러 번은 오퍼를 넣었지만 내 집 사기가 쉽지 않았다. 지역도 정하지 못한 터라 범위도 넓어 무척 지쳤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는 말이다... 파는 게 더 힘들다.
오늘은 집 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것도 두 번째 살던 집 판 이야기를.
첫 번째 집을 팔며 했던 뻘짓들을 되풀이하기 않기 위해 했던 나의 작은 몸부림에 대해서.
내 몸 하나 움직여서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게 된 방법들을 말이다.
그러려면 첫 번째 집을 팔았던 배경을 잠깐 이야기해야겠다.
미국에서 집을 판다는 건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대략적인 시세는 있어도 정해진 가격이 없다. 눈치싸움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어느 회사의 어떤 사람과 집 파는 일을 함께할지,
어느 시기에 시장에 내보낼지,
싸게 올려서 경쟁자를 모을지,
혹은 적당한 가격으로 올려서 진짜 사려는 한 놈을 공략할지,
비싸게 받기 위해 집을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
오픈하우스는 할지 말지,
부동산 사이트에 무슨 요일에 올릴지,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떤 액션을 취할지 등
모든 게 그렇다.
그러려면 충분한 여유 시간이 필요한데, 첫 번째 집은 그게 없었다.
짐을 차고로 옮기고, 페인트를 칠하고, 집을 세팅하고, 청소를 부르고, 포토그래퍼가 사진을 찍고, 서류를 정리하고, 부동산 사이트에 올리기까지 단 11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너무 갑자기였고, 나는 아는 게 없었다. 도와줄 사람도, 시간도 없었다. 서둘렀고, 무리한 덕에 쓸데없는 돈은 줄줄 샜고 내 허리는 주저앉았다.
이번엔 그걸 되풀이하지 않기로 했다. 내 돈과 허리를 보호해야 했다.
두 번째 집은 색이 다양했다. 거실 전체에 쓰인 메인 컬러는 하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9가지 색이나 쓰였다. 대부분은 유광이었고, 덕분에 지저분해지는 속도는 느렸다. 그래도 3년 살다보면 더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걸 없애야 한다. 그런 작은 부분들만 깨끗해도 집은 훨씬 좋아보기에 마련이니까.
집 차고에 있는 페인트 파악이 우선이었다. 빨강, 파랑, 옅은 회색, 진한 회색, 하얀색, 진한 보라색..... 하나 빼고 다 찾았다. 그 하나가 중요했다.
딸 방의 기본 색은 연보라였는데, 거긴 예전에 다른 집 아이가 펜으로 박박 그어놓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살 때는 귀찮아서 그냥 두었지만 이제는 그걸 없애야 했다. 흉물스러운 그 자국을 말이다.
하지만 집에 페인트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없는 페인트는 만들면 된다.
첫 번째 집은 페인트공이 엉뚱한 색을 칠해서 집 전체를 다시 칠해야 했지만! 벽을 일부 뜯어갔음에도 색을 맞춰오지 못했지만! 더 간단한 방법을 이제는 안다.
1. 카메라로 일단 벽을 찍는다. 빛이나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찍히기에 기억에도 저장한다.
2. 홈디포 페인트 코너에 가서 비슷해 보이는 샘플카드를 다 집어온다. 가면 손바닥만 한 종이 카드가 회사별로 진열되어 있다. 당연히 무료고 마음껏 집어가라고 둔 거니 일단 다 가져온다.
3. 칠해야 하는 벽에 샘플카드를 올려본다. 거의 똑같은 게 분명 있을 거다.
4. 다시 홈디포 페인트 코너에 가서 샘플카드를 내민다. 유광인지 무광인지를 말하고, 샘플 페인트를 원한다고 말하면 된다. 샘플이지만 양이 꽤 된다.
5. 그러면 직원은 어딘가로 사라질 거다. 하얀색 작은 페인트통을 들고 나타나는데 그 안에는 하얀색 페인트가 담겨있다. 뚜껑을 열고, 기계 위에 살포시 올려두고, 샘플카드에 있는 바코드를 찍으면 알아서 색이 쭈르륵 나온다. 보라색은 파랑과 빨강이 비율에 맞게 나오는 식이다.
6. 뚜껑을 닫고 마구 흔든 다음 위 스티커에 물감을 살짝 찍어줄 거다. 계산하고 나오면 된다. 혹시 모르니 페인트 오프너도 달라고 한다. 무료다.
7. 집에 아무 붓이나 집어 들고 더러운 부분만 콕 찍어 바르면 된다. 급하면 손가락을 써도 된다. 바로 씻기만 하면 지워진다.
집에 남아있는 페인트가 있다면 7번만 하면 된다.
그러면 굳이 페인트공을 부르지 않고도 해결된다.
적어도 2천 불은 아끼는 셈이다!
성격상 '여기 더 닦아줘' 라든가 '여기 아직 안 됐어'라는 말을 잘 못한다. 나 편하자고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건데도 미안해서 그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첫 번째 집을 팔 때는 600불에 팁까지 120불 얹어주고도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다. 상대는 둘이었다. 아줌마 한 명, 아저씨 한 명. 둘은 7시간인가 일했지만 음악을 틀어놓고 아주 즐겁게 일했으나 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 마음만 타들어갔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싶다가도 그러려면 안 불렀지 싶어서 참았다.
오픈하우스 전에 집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고, 가스레인지 쪽의 꾸덕한 기름들과 샤워부스에 새겨진 석회 자국들은 내가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전문가'를 부른 거다. 프로는 다 해결해주겠지 싶어서.
하지만 결과물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참 아래에. 누가 봐도 아직도 더러운 상태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720불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서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 수도꼭지 주변을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 좀 깨끗해졌다. 자신감이 상승하자 샤워부스에 도전했다. 석회가 문제였다. 그것도 수세미로 문질렀더니 한결 나아졌다.
그걸 보니 더 화가 났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안 한 둘과, 한 마디 못하고 내보낸 나에게.
그래서 이번엔 내가 하기로 했다. 때로는 사람을 쓰는 게 더 스트레스니까.
에어비앤비 청소도 내가 했는데, 우리 집이라고 못할까 싶었다. 사진 찍기 전에 어느 정도 치워두었기에 크게 할 일은 없어 보였다. (사진에는 더러운 게 잘 나오지 않는다)
리얼터도, 남편도 사람을 쓰라고 했지만 "그럴 거야"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었다. 이사를 한 후, 사다리와 청소 도구를 챙겨 예전 집으로 갔다. 쓰레기를 모으고 청소기를 돌리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720불을 아꼈다.
미국에서는 집을 팔 때 이쁘게 보이기 위해 꾸미는 작업을 한다. 일명 스테이징. 첫 집을 팔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꾸미는 소품 하나 없이 대충 살았다. 하지만 그때 처음 집을 꾸며보고서 깨달았다. 액자 하나, 소품 하나, 이불 하나가 집 분위기를 얼마나 다르게 바꾸는지.
그래서 텍사스 온 뒤로는 그래도 조금은 꾸미고 살았다. 액자도 종종 바꿔주었고, 집에 가짜 화초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이불도 세트로 샀고, 쿠션들도 있었다.
물론 제대로 꾸미는 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나는 굳이 뭘 더 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쁘게 보이기 위해 무거운 책을 나 혼자 옮기는 짓도 하지 않았다. 내 에너지와 허리를 지켜야 했으니까.
이불속 보이지 않는 시트는 굳이 깔지 않았고, 또 굳이 침대 하나에 베개 4개와 쿠션까지 두지는 않았다. 휑한 곳이 있어도 굳이 채우지 않았다.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니까. 그저 집 구조가 잘 보이게끔 잔짐을 최대한 가리고, 깨끗하게 보이기만 하면 기본은 되는 걸 이제는 아니까 말이다.
물론 스테이징 업체를 이용해 완벽해 꾸밀 수도 있다. 덕분에 집값을 더 잘 받을 수도 있을 거다.
혹은 아예 포기하고 이사를 먼저 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신경 쓸 일은 더 줄어들 테니까. 그래도 나는 있는 거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짐이 들어있는 집이 더 넓어 보이기 마련이고, 빨리 팔기 위해 너무 급하게 이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꾸미는 데 쓴 비용은 없다. 집 앞 화단의 꽃만 좀 심었을 뿐.
집을 팔 때 들어갈 수밖에 없는 비용
집을 팔 때는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 6월까지만 해도 파는 쪽에서 양쪽(집을 사는 사람이 고용한 중개인 비용까지) 리얼터에게 중개 수수료로 집 값의 6% 정도를 내야 했다. 나는 5.5%만 냈는데(사는 쪽 중개인 3%, 파는 쪽 중개인 2.5%), 10억짜리 집이면 5,500만 원이 나가는 셈이다. (지금은 법이 바뀌었다는데 아직 과도기로 보인다)
- 타이틀 컴퍼니(에스크로 회사)에도 6천 불(790만 원) 정도가 나갔다.
- 살면서 무시했던 자잘한 수리도 해야 한다. 심지어 내가 몰랐던 문제까지도.
집을 세팅한 후 마켓에 올린다고 끝이 아니다.
살 사람이 정해지기 전까지 매일 깨끗한 집을 유지해야 한다. 오픈하우스라도 하면 여러 사람이 신발 신고 들어온 덕에 바닥 청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언제 보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냄새나는 요리는 할 수도 없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깨질 수도 있다. 쉽지 않다.
게다가 사는 집을 바꾼다는 건, 판매뿐 아니라 '이사'와 '다른 집 구하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걸 의미한다. 평소 1,2불 아끼던 것이 무색하게 큰돈들이 뭉텅이로 쉽게 나간다. 돈에, 그 액수에 무뎌진다. 하지만 그 또한 돈이다.
나중에 올 현타를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이사한 새 집에 조금이라도 더 돈을 쓰려면, 아낄 수 있을 때 아끼는 게 좋다.
이번에 아낀 비용
- 페인트 : 집 전체 페인트를 칠하는데 6천 불(79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물론 집 사이즈마다 다르다. 어쨌든 터치업만 하면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 청소 : 이번에 알아봤을 때도 무빙아웃 청소가 600불이었다. 팁을 보통 20% 주기에 720불(95만 원)을 아낀 셈이다.
- 스테이징 : 예전에는 적어도 600불(78만 원)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실내 꾸미기에 쓴 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