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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xit May 27. 2022

다시는 만들지 않을래

텍시트 비하인드 #차완무시 #교쿠 #판전



날 봉은사에서 ‘판전’(板殿)을 살펴보고 길을 잃었다. 같은 날 저녁에는 함께 독서모임을 준비하는 친구놈과 뒤숭숭한 취중의 일이 있어서, 다음날 여지없이 다른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해장도 채 하지 못했는데, 가족이 뜬금없이 차완무시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에 전자레인지로 빠르게 시장기를 달래줄 계란찜을 제하고 손이 많이 가는 차완무시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뒤에 서술할 당혹감을 고백하기 전에 이 간단한 식전 요리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간략히 기술해보자면


1) <전제> : 앞뒤 전후 음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음식이기에, 계란을 조심스럽게 사용한 음식이라는 정체성을 소심하게 드러내야만 한다.

2) <향과 간> : 단일 재료로 정체성을 만드는 계란찜과 다르게 차완무시는 가쓰오부시를 우린 물을 곁들이며, 따라서 우려 논 육수를 미리 식혀 놓아야 한다. 간은 알차릴 수 없는 정도의 간장을 가미하며, 미세하게 존재하는 계란의 비릿함은 술로 잡는데, 완벽한 계란물 : 간장 : 술의 비율은 알 수 없었다.
아마 나는 한참 뒤에도 이 비율을 알 수 없을 것이다.

3) <식감> : 남녀는 물론 노인과 심지어 어린아이의 입맛도 해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식감의 저항은 허락하지 않는다.
찜기에서 낮은 불로 기포가 생기지 않게 몽근하게 익히며, 불에 취약하기에 식기는 불에 직접적으로 닿아선 안된다. 또한 계란의 알끈은 조금이라도 용납하면 안 되기에 알끈은 모두 풀고 체에걸러 준비한다.

4) <익힘> : 증기를 통해 계란을 익힌다. 따라서 식기 속 계란물은 고루 익어야 하며, 이를 숟가락으로 퍼서 확인할 수 없기에 툭툭 쳐보아 떨리는 계란의 탄력으로 익힘 정도를 확인하고 조리를 끝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외국요리는 실패했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다양한 재료와 조미를 제외하기에 부족함을 숨길 수가 없다. 무엇보다 음식을 준비하며 걸린 시간에 의해 허기가 고개를 쳐들어 차완무시를 버려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벌린 일을 갈무리하지 못한 무책임이 가장 크다. 이 빈약함에는 달걀비린내가 채워져있었다.


먹고 퍽 속이 쓰렸는데,
이 단순한 맛 하나를 재현시키지 못하나.

그렇게 맛을 자부하고, 분석하고, 으름장을 내놓았는데, 계란 하나도 마음에 맞게 다루지 못하는구나.





교쿠(ぎょく) - 판전(板殿)


이 사태를 마주하니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초밥 만드는 행위를 배우기 위해, 약 8년동안 차완무시나 계란초밥(교쿠)에 들어가는 달걀만 다루도록 시킨다고.


이는 어떤 최종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전, 기술적단순노동이 아닌 마음을 다 잡는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재료의 배신(이색)에 경거망동하지 말 것

그 본질에 다시 힘쓸 것, 대개 부귀로 야단스럽게 꾸미는 일은 숨김을 위한 일이니 처다도 보지 말 것.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말 것.

 

그 마음을 다 잡는 일이라면 8년이라는 시간도 긴 시간은 아니지 않나.

 

8년의 시간이 어떤 시간인가. 비가 와도 계란을 풀고 눈이 와도 계란을 푼다. 슬플 때도 기쁨이 넘칠 때도 계란을 푼다. 끈덕지게 늘어지는 알끈처럼 인생이 제멋대로 되지 않을 때도 푼다. 종국엔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하게 되었고, 어떻게 빠지게 되었으며 누구를 위한 일이었는지마저 의심이 들 때에도 풀어낸다.


마지막으로 흘러간 세월과의 이별을 탄식하지 말고,
오래 지나지 않아 새로운 세월과도 이별해야 한다.


교쿠는 미각적 충격, 맛이 있고 없고를 따져보는 음식 아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보통의 것에 힘쓰는 행위이다. 무를 위한 수련과 같기도 하며, 서예와도 그 모습이비슷하다.



‘판전’(板殿)

추사가 사망하기 사흘 전에 썼다는 글씨. 만년에 완성한 글씨. 파란의 생애를 지냈는데 김정희의 글씨는 더 순수해지구나. 획이 살지고 혹은 가늘기도 하고 얼핏 보면 옆으로 삐쳤는데 자세히 보면 종횡으로 비비고 바른 것 같기도 하다.

 

봉은사 김정희서판전현판(奉恩寺金正喜書板殿懸板)


복잡하지 않기에 혼란하지 않고, 솔직하다. 깊이는 아득하다. 되려 잔재주를 사용해 치장한 형용사가 넘치는 글, 갖은 색깔과 맛이 들어간 음식이 깊이가 없다. 주체의 빈곤함을 자신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 그 모자람을 빌려서 채워 넣기에 그런 것일테다.


교쿠와 판전에 비춰본다. 부르튼 손과 데인 상처, 칼밥, 흐르는 먹과 벼루의 세월. 긴 시간의 대목들을. 그리고 아주 상상해본다 전혀 무해한 음식과 글씨를 담은 소박한 식사와 겸손한 얼굴을.

닭알과 선생께 배운 것은 글 쓰는 기교가 아니라 삶을 궁리하는 방법인데, 탐내어 결과만 얻기를 힘쓰고 사냥하듯 살았다.


나는 다시는 차완무시는 만들지 않으련다.
길은 잃었고 바람은 이는데, 올 여름에는 내 내력이나 비춰보아야겠다.





#texit #폭풍벤야민 #텍시트비하인드
#독서모임모집중! texit.co.kr(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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